[K-적폐 ⑫] 독일, 가업상속공제 연간 1만3000여건…한국은 고작 84건
[K-적폐 ⑫] 독일, 가업상속공제 연간 1만3000여건…한국은 고작 84건
  • 이한익 기자
  • 승인 2020.12.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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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이상 가업 유지하면 '상속재산 100% 공제' 덕분…'자산 20% 이상, 7년 매각 금지', 국내 中企의 신산업 진출·사업전환 막아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의 존립이 높은 상속세와 까다로운 공제 조건으로 위협받고 있다.

창업주인 아버지로부터 문구·사무용품 유통업체 드림오피스를 승계 준비 중인 김소희 대표는 뉴스웍스와의 통화를 통해 "최근 재택근무 확대에 따른 사무용품 사용량 감소, 학교 개학 지연에 따른 문구·학용품 사용량 감소로 오프라인 문구점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며 "상속세를 내고 회사를 승계해도 '회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얼마 전 암투병을 하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 김 대표는 매일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 뿐 아니라 앞으로 납부해야 할 세금 걱정과 부모님이 40년 동안 피땀 흘려 일군 회사를 더 크게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2세 경영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지속적인 인건비 증가와 고정비 상승까지 더해지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소기업들은 매출이 급감했다. 유능한 인력, 기술력, 자본력 등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현실은 막막하기만 하다.

◆"과도한 상속세, 중소기업 기업자산 매각 등 부작용 초래"

중소기업연구원은 최근 '국내외 가업승계지원제도의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투자 대신 기업자산을 매각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상속세 부담으로 가업승계가 어려워지면서 흑자상태에서 폐업하거나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에 노출되는 기업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사업주의 가업승계 성공 여부는 일자리 문제로 직결된다. 단순히 예를 들어 50억원 가치의 제1공장과 50억원 가치의 제2공장 등 총 100억원 가치의 기업을 상속받는 경우 50억원(100억원의 50%)의 상속세를 내야한다. 피상속자는 상속세를 내기위해 공장 1개를 매각하거나 폐업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매각된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의 일자리는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김희선 중기연 연구위원은 "많은 국가들이 자국 기업들의 지속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상속·증여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하고 있는 추세"라며 "상속증여세 부담 완화를 통해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경영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경제 활력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를 내세우며 상속세제도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2000년 이후 20년째 유지된 상속세 과세표준구간과 세율구조는 1억원 이하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다. 1997~1999년까지 '50억 초과'에 부과하던 최고세율(50%)은 '30억 초과'로 기준이 강화돼 사업주의 상속세 부담은 더 커졌다. 또 1996년 이전 최고세율은 40%로 현행 최고세율 보다 낮았다.

상속세가 중소·중견기업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부담이 큰 반면 정작 국내 세수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한 수준이다. 2018년 기준 국세청 소관 세수는 283.5조원으로 소득세 86.3조원, 법인세 70.9조원, 부가가치세 70.0조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신고된 상속세는 3조9754억원으로 전체의 약 1.4%를 차지했다.

아울러 상속세 등 부담으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절반은 가업을 승계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업력 10년이상, 매출액 1500억 미만 중소기업 대표 및 임원, 가업승계 후계자 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019년 조사한 결과 전체 66.8%는 '가업승계가 중요하다'고 응답하면서도 전체의 50.2%는 '승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가업을 승계할 계획이 없는 이유로는 77.5%(복수응답)가 '막대한 조세 부담 우려'라고 답변했다. 이어 '가업승계관련 정부정책 부족(49.0%)', '가업승계 이후 경영악화(26.1%)'가 뒤를 이었다.

◆독일 가업상속공제 연평균 1만3169건…한국, 연평균 84건

물론 중소·중견기업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원활한 가업승계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자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가업상속공제'를 지원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제도는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과 자산 5000억원 이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1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하면 최대 500억원(30년 이상)한도까지 상속세를 공제해주는 제도다.

다만 가업영위기간, 지분율 등 요건과 사후관리가 너무 엄격하다보니 적용 대상인 중소·중견기업의 활용이 저조한 실정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연간 공제 건수는 40~50여건에 그쳤으며 지난 2015년 67건, 2016년 76건, 2017년 91건, 2018년 84건으로 이 공제제도 이용은 미미하다.

2011~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 이용실적은 연평균 84건이며 총 공제금액은 2365억원에 그쳤다. 이에 비해 독일의 경우 연평균 1만3169건의 공제가 이뤄졌고 총 공제금액은 36조5000억원이다. 건수로는 약 157배, 액수로는 약 154배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에는 663만여개의 중소기업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0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18년 기준 중소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663만9000개로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한다. 중소기업 종사자는 1710만4000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3.1%, 매출액은 2662조9000억원으로 전체 기업 매출액의 48.5%에 이른다.

중기연에 따르면 2017년 독일에 등록된 전체 348만개 기업 중 346만개(99.5%)가 중소기업에 해당하며 독일 전체 고용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매출액은 2017년 기업등록부 기준 2조3315억 유로(약 3073조원)로 전체의 35%에 기여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중소기업(SME)보다는 ‘미텔슈탄트(Mittelstant)'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며 피고용자수 500명 미만, 연매출 5000만 유로 이하의 기업을 가르킨다.

독일에 비해 한국의 가업상속공제 이용실적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작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까다로운 요건과 사후관리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업승계공제제도와 관련해 김소희 한국가업승계협의회 회장은 "가업승계기업협의회 회원 가운데 가업승계공제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분도 있고 앞으로 이용할 계획을 갖고 있는 분도 있다"며 "사후관리 요건이 예전보다 완화됐지만 여전히 버겁다는 목소리가 아직은 더 많다"고 강조했다.

까다로운 요건과 관련해 김 연구위원은 "최대 500억원의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3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해야 한다는 제한적인 요건은 중소기업 평균 업력이 11.3~12.6년(2016년 기준)이라는 점에 비추어볼 때 비현실적"이라며 "사후관리요건 중 자산유지(20% 이상 처분 금지) 요건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을 감안할 때 신산업 진출이나 사업 전환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고 꼬집었다.

한국, 독일, 일본, 영국의 가업상속공제 제도 비교. (자료제공=한국경제연구원)
한국, 독일, 일본, 영국의 가업상속공제 제도 비교. (자료제공=한국경제연구원)

현행 기준상 피상속인은 10년 이상 가업 경영을 영위하며 해당 기간의 50% 이상을 대표자로 종사했어야 한다. 또 발행주식 전체의 50%(거래소 상장법인 30%) 이상을 보유해야만 한다. 상속인은 가업 상속 개시일 전 2년 이상 가업에 몸담아야 한다. 또 상속세 신고기한부터 2년 이내 대표이사 등으로 취임해야 한다. 또 7년의 사후관리 기간동안 업종을 유지해야 한다. 7년간 가업 자산 20% 이상 처분할 수 없고, 7년 평균 고용 100%로 유지해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독일은 기업 규모의 제한없이 가업승계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공제 한도도 5년 이상 가업을 유지하면 85%를, 7년 이상 유지하면 상속재산 100%를 공제한다.

OECD 국가중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일본의 경우에도 2018년부터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비상장 중소기업 소유주가 가업승계자에게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발생하는 상속세의 100%를 2027년까지 유예하는 특례제도를 도입했다.

영국의 상속세는 사망자의 재산에 대해 부과하는 유산세 방식이다. 32만5000파운드(한화 약 4억8100만원) 이하는 0% 세율이, 32만5000파운드 초과는 40%의 세율이 적용된다. 또 가업상속공제와 유사한 '사업자산공제제도'를 보유하고 있다. 공제액은 자산유형별로 50%나 100%가 제공된다. 모든 기업이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상속인 자격, 사후관리 요건도 없다.

김소희 대표는 "한정된 24시간을 세금·승계문제로 고민하기보다 기업의 역량을 키우고, R&D(연구·기술개발)에 투자하고, 마케팅, 수출 등의 시장 판로를 개척해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도 중소기업의 가업승계가 해결돼야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말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웍스와의 통화에서 "과도한 상속세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경제의 허리인 중소·중견기업에도 부담을 준다"며 "대한민국 경제를 구성하는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인 만큼 중소기업의 존속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장도 "기업승계 문제가 선결돼야 경영 의욕도 높아지고 기업의 존속을 통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며 "지금 상속세제 하에서는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들이 승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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