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4.04 06:00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조선 업계가 10년 만에 맞은 슈퍼사이클에 연일 수주 낭보를 울리고 있다. 하지만, 3년 치 이상의 일감을 쌓아둔 호황기 속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조선소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이다.
올해 조선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총 5건.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다. 연일 발생하는 안전사고와 임금체불이 만연한 현장에서는 수년 전부터 인력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조선업은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발주가 없는 불황기에 조선사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호황기가 돌아오면 인건비와 유지비 등 운영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를 선정해 도급한다. 이에 따라 원·하청 이중구조가 깊어지고, 다단계 하도급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국내 조선 3사가 추진한 '조선업 상생 협약'이 도입된 지 1년이 넘었다. 인력난 타개를 위해 정부는 임금 체불 방지를 위한 '에스크로' 도입부터 하청 근로자 임금 7.5% 인상, 외국인력 도입 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원청이 지급하는 금액이 충분치 않다면 이 또한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우며, 임금 인상 또한 기존에 책정된 금액이 작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인력난으로 가중된 업무와 임금 문제 등으로 한국 조선업의 핵심인 기술 직무 내 숙련공들이 이탈하고 있다. 여기에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내 조선업 종사자 수는 9만3038명이다. 역대 최대였던 2014년(20만3400명)과 비교하면 50% 이상 줄어든 규모다. 장기 불황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며 인력 이탈이 가속화된 탓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올해부터 연평균 1만2000명 이상 인력 부족이 발생하고, 오는 2027년 13만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3~4년 치 일감을 쌓은 것에 웃을 때가 아니다. 쏟아지는 일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인력의 규모와 질을 갖춰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이번 기회에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력난의 본질은 영원히 해소할 수 없다.
슈퍼사이클이 돌아온 지금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적기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 속에서 한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상생협약에 머무른 생색내기용 정책을 넘어, 다단계 하도급을 막는 구조적 장치 도입이 지금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