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3.19 15:29
현대차그룹 美자동차 관세 후폭풍 가시권
신성장동력 마련과 지배구조 강화도 과제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퍼펙트 스톰'(대내외 복합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당장 4월 초부터 미국발 자동차 관세 부과 타격이 가시화되면 수출에 비상이 걸린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대주주 의결권 제한 내용의 상법 개정안도 대응해야 한다.
정 회장이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수소 ▲소형모듈원전(SMR) ▲도심항공교통(UAM) 등은 당장 과실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정 회장 본인도 이를 의식한 듯, 올해 초 직원들에 닥쳐올 위기 대응을 위한 변화와 혁신을 주문한 바 있다.
◆가장 두려운 미국발 '車 관세' 후폭풍
현시점에서 정의선 회장이 직면할 가장 큰 위협은 미국에 수출되는 자동차 관세 문제다. 그룹의 핵심인 자동차 사업은 지난해 판매한 자동차 4대 중 1대를 미국에서 팔았을 정도로 대미 수출 비중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확히 언제부터, 수입 자동차들에 대한 관세를 몇 % 적용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예고대로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현대차·기아는 현지에 파는 자동차 가격을 관세 인상분만큼 인상할 수밖에 없다.
미국 주력 판매 차종인 '투싼'(현대차)이나, '스포티지'(기아)는 가성비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가격을 인상하면 수출 전선에 큰 차질을 빚는다. SK증권 분석에 따르면 현대차·기아가 관세 인상으로 인한 손실분을 그대로 떠안고 갈 경우, 미국 판매 손실액 추정치는 10조원 규모에 달한다.
관세 후폭풍은 이미 예고된 사안인 만큼 현대차그룹도 대응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미 중국에서 사실상 철수한 만큼, 미국을 대체할 만한 대형 시장이 없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은 지난해부터 현지를 수시로 방문했고, 트럼프 주니어와는 골프 회동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과 가장 친숙한 국가인 캐나다나 멕시코도 관세 적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관세 제외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남은 것은 미국 현지 공장을 증설하거나 가동률을 늘리는 방법뿐이다. 현재 현대차·기아는 연 생산 120만대 규모로 미국에 3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지난해 현지에서 170만대를 판매한 만큼, 나머지 물량은 GM과 공급망 동맹을 체결해 조달할 계획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GM이 생산 물량을 어떻게 조정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불투명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내수에 소홀해지는 문제점도 있다. 국내 생산을 줄일 경우 6년간 잠잠했던 자동차 노사 갈등이 재점화할 수도 있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계열사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된 구조다. 현대모비스나 현대제철 등 소재 계열사들은 물론 수천 곳에 달하는 하청업체들도 내수·수출 모두 관세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신성장동력, 단기 대안 아냐…변수도 상존
정 회장이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수소, SMR, UAM은 말 그대로 중장기적 신성장동력일 뿐, 당면한 관세 후폭풍 대안을 삼기는 어렵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초 양산형 수소 SUV ‘넥쏘’를 앞세워 이 분야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고, 하반기 후속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다. 오는 20일 현대차 주주총회에서는 수소사업을 정관에 포함한다.
다만 전기자동차와 함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맞아 2022년 정점을 찍은 뒤 글로벌 판매량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국 수소충전소는 386기에 그치는 등 고질적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수소사업 드라이브가 절실하나, 적어도 연말까지 정치권은 산업계를 돌볼 틈이 없는 상황이다.
SMR이나 UAM도 상황은 비슷하다.
SMR의 경우 탄소 배출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대형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미국 뉴스케일파워 등 해외 유수 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상황이다. 더욱이 핵심 원료인 우라늄 가격도 날로 증가하는 지정학적 위기 고조로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당장은 신규 수주를 해도 큰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셈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로 각광받는 UAM도 정거장 등 인프라 구축 설계 내지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 SMR이나 UAM 모두 민간기업보다는 정부 지원이 열쇠다.
결과적으로 미국발 관세 후폭풍 등에 따른 위기를 헤쳐가기 위해서는 정 회장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지배구조 구축이 필수다.
그러나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상법 개정안은 단기적으로 현대차그룹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개정안에는 ▲이사 충실의무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이중 감사위원 분리 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제한 조치다.
과거부터 오너 책임경영이 굳어졌고 배당 성향 제고로 주주 만족도가 높은 현대차그룹의 경우 당장 큰 변화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과거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외국계 감사위원 선출 및 주주환원 확대 등을 요구했던 트라우마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 전문가는 “물론 상법 개정안 공포 후 엘리엇 같은 외국계 자본의 경영권 간섭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주주환원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인 데다, 상법 개정안은 상속세율 인하 내용도 담겼기에 장기적으로 정 회장의 계열사 지분 확대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