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4.07 09:13

필자는 자동심장충격기(AED)를 직접 제조해 전 세계 40여개국에 수출하는 ㈜나눔테크의 해외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세계 각국의 바이어를 만나 제품을 소개하고 파트너십을 다지는 것이 일상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와 비즈니스 방식을 경험한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출장지가 있다. 지난 2016년 5월 방문한 몽골 울란바토르다.
그날도 평소처럼 바이어와 미팅을 마친 뒤였다. 현지 바이어는 "몽골에 대해 더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며 전통 공연장 방문을 제안했다. 처음엔 예의상 수락했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2시간 남짓한 공연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몽골의 역사와 문화, 민족적 자긍심을 무대 위에 생생히 담아냈다. 유목민의 삶과 칭기즈칸의 기상, 대자연과의 공존, 전통 악기와 의상, 춤과 노래가 하나의 서사로 엮여 외국인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몽골이라는 나라의 뿌리와 정신을 느꼈고, 현지 바이어와의 관계도 한층 가까워졌다.
공연 후 관계자의 말이 인상 깊었다. 울란바토르에 있는 몇몇 전통 공연장은 정부의 정책 지원으로 운영되며, 외국인 바이어나 관광객에게 자국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문화외교 수단'이 됐다는 것이다.
광주는 흔히 예향(藝鄕), 의향(義鄕), 미향(味鄕)의 도시로 불린다. 판소리와 국악, 민주화운동의 중심지로서 역사, 남도의 풍성한 음식문화까지 콘텐츠의 보고(寶庫)다. 하지만 이런 자산들이 외국인에게 쉽게 전달되는 체계를 갖췄는지 의문이다.
특히 기업이 바이어에게 짧은 시간 안에 광주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면 공연이나 전시, 체험 등 '직관적인 문화 소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광주가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관광이나 수출 진흥 정책 못지않게 '광주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문화외교 공간 마련이 필수적이다.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정기 공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지역 예술인과 협업해 '광주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전용 공연장에서 상설로 선보이면 좋겠다.
둘째, '기업·기관 대상 문화체험 패키지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광주를 찾는 국내외 바이어와 공무원, 교류단체들이 비즈니스 이후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공연, 체험, 식사, 전시 관람을 연계한 패키지를 구성하면 도시 마케팅 효과도 클 것이다.
셋째,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문화외교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광주문화재단, 관광공사, 지역 예술단체가 협력해 광주의 문화외교를 전담할 조직이나 협의체를 만든다면 지속 가능하고 체계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예술과 인권의 도시다. 여기에 남도의 음식문화까지 더해지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매력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 개별적인 명소나 행사만으로는 광주의 정체성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 다양한 콘텐츠를 하나로 연결한 '문화외교 무대'가 절실한 이유다.
기업인의 입장에서, 해외 바이어를 맞는 현장에서, 도시를 사랑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제안한다. 광주에도 '문화외교 공간'이 필요하다. 가장 광주다운 것이 바로 K-컬처이며, 이는 곧 비즈니스다.
[전승호 나눔테크 해외사업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