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5.11 10:00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명확한 로드맵을 가지고 사업을 전개해야 하는데, 아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는 21일 취임 1주년을 앞둔 삼성전자 반도체(DS) 수장 전영현 부회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 SK하이닉스에 뒤졌고, 파운드리 사업은 1위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올해 1분기에도 비메모리 부분이 2조원 안팎 적자를 기록해 우려를 안겼다.
이에 전 부회장 취임 이후 DS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아직은 가시화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DS 1분기 영업이익, 8000억원 줄어…HBM 주도권 되찾아야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는 7조4405억원의 영업이익으로 분기 기준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을 거뒀지만, 삼성전자 DS 부문은 기대치에 못 미쳤다. 매출은 25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8000억원 감소했다.
메모리 사업은 D램·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세에 3조원가량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파운드리 사업의 부진이 반도체 전체 실적을 끌어 내린 것으로 분석됐다.
전 부회장은 여러 차례 'HBM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라고 약속한 바 있다. 특히 지난 3월 개최한 주주총회에서 '빠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에는 12단 HBM3E 제품 시장에서 성과를 내겠다'라고 밝혀 2분기 실적에서 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HBM 시장에서 42.4%의 점유율로 시장 2위를 기록했다. 단, 이전 세대인 HBM2 매출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HBM3 점유율은 더 낮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2.5%, 미국 마이크론 5.1%다.
전 부회장에게는 엔비디아에 12단 HBM3E를 공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삼성전자는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12단 HBM3E 개선 제품을 알린 바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HBM3E 개선품은 엔비디아를 포함해 모든 고객이 쓸 수 있는 제품을 의미한다. 설계를 변경해 새롭게 개발한 모델"이라며 "반도체도 고객사와 퀄테스트를 진행해 보고, 설계 변경이 요구되면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실적 개선 영향에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12단 HBM3E 퀄테스트를 통과한다고 해도 소량에 그칠 것"이라며 "매출에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미 삼성전자는 차세대 제품인 'HBM4'의 주도권 확보를 목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더 빨리 하이브리드 본딩을 적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SK하이닉스는 16단 HBM4에서부터 이 기술을 적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접착제를 이용하는 기존 방식 대신, D램을 직접 연결해 수율을 높이는 '고난도 공정'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TSMC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컨퍼런스콜에서 다른 파운드리 업체와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 TSMC가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칩 의뢰를 거절했다고 하더라도, HBM4는 전혀 다른 공정"이라며 "TSMC가 삼성전자의 HBM4 베이스다이 제작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GAA 3나노 적용했지만…수율 격차 줄이기 숙제
전영현 부회장은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고질적 적자를 탈피하고, 점점 늘어나고 있는 TSMC와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점유율 8.1%를 기록했다. TSMC가 점유율 67.1%를 기록하면서 양사의 격차는 59%포인트에 달한다. TSMC는 점유율이 전분기 대비 2.4%포인트 상승했지만,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9.1%에서 8.1%로 1%포인트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파운드리 사업에서 11월부터 2나노 공정을 활용해 '엑시노스2600' 양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2나노 1세대 공정에 대해 신뢰성 평가를 마쳤다. 삼성전자는 2나노 2세대와 4나노 전력 최적화 공정도 고객사 설계를 지원할 인프라를 적기 구축하고 있다. 또 파운드리 사업부 산하 태스크포스(TF)팀이 2027년 양산에 돌입할 1.4나노 공정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TMSC에 앞서 3나노부터 GAA 기법을 적용한 삼성전자가 다음 공정인 2나노에서 수율 경쟁력을 확보할지도 관심사다. TSMC는 2나노 공정 초기 수율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성전자의 2나노 공정 수율은 30~50%인 것으로 전해졌다. 3나노보다 수율이 조금 높아지기는 했지만 격차는 크다.
삼성전자가 2나노 공정에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을 지도 관심사다. 대규모 수주가 없다면 아무리 양산체제가 잘 갖춰졌다고 해도 실적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본원적 경쟁력 하락이 문제'…혁신적 로드맵 내놔야
전문가들은 전 부회장의 DS 부문이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기술의 본원적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한 그 해법으로 삼성전자가 뚜렷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실적이 말해준다. 전 부회장의 계획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기술의 본원적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는 기술진들에게 전권을 줘야 한다. 현재는 전 부회장이 본인 마음대로 일하기 어려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교수는 " 엔비디아에 HBM3를 납품하지 못 하고 파운드리도 적자에 허덕이면서 삼성 반도체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며 "경쟁사 대비 우위에 있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보여줘야 한다. 올해 준비를 제대로 해 반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 반도체와 관련해) 새로운 기술 개발, 새로운 인수합병(M&A),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파운드리와 팹리스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지 대응책도 없었다. 유일하게 나온 게 임원들이 주말에 나와 일한다는 것이다. 1년이 된 만큼 새로운 비전 제시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전 부회장은 의욕과 열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과감한 조직문화 재설정 작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