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1.17 14:00
건조 전까지 기술·법·외교 차원 문제 해결해야
건조 착수 후에도 막대한 재원 및 인력부족 감내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대중국 견제 용도 등 정치·외교적 논란에도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수함) 국내 건조가 성사되면서 대한민국 경제력과 안보 부문 강화가 기대된다.
다만 핵잠수함 실제 건조에 착수해야 할 HD현대나 한화오션 같은 민간 방산 기업들은 추후 온갖 기술적·법적·국제적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물론 이는 민간 기업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정부 차원 대응 및 지원사격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주목된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17일 “한미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성명)에 핵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HEU)의 직접 제공에 대한 명시는 없고 단순 협력한다고만 돼 있기에 우선은 정부의 추가적인 실무협상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과 미국 정부는 지난 14일 공동발표한 팩트시트를 통해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고,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명시했다.
물론 팩트시트에는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내용이 있어 한국의 핵 주권 확대와 핵잠수함 건조의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기술부터 시작해 법적 문제 등 민간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기술적 문제의 경우 핵잠수함은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소형 원자로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 원자로 설계 및 소음 저감 기술은 미국이나 러시아 외에는 없다. 즉 미국 정부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핵잠수함 국내 건조 시기나 완성도 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고농축 우라늄이 아니더라도 저농축 우라늄으로도 핵잠수함 건조는 가능하다.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은 프랑스가 사용(7~8%) 중이다. 출력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저농축 우라늄 잠수함의 연료 교체 주기는 10년 정도로 짧은 만큼 안보 강화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고, 운영 중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은 핵잠수함 연료 교체 주기가 20년 이상으로 길어 잠수함 수명 동안 교체가 한 번도 필요 없다. 물론 이는 미국과 러시아만 보유하고 있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팩트시트에 명시된 협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확실한 것은 고농축 우라늄 연료를 미국으로부터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할 수 있게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최우선이고, 이는 정부의 몫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잠수함 실건조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법적·외교적 문제도 기술적 문제와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현재의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한국의 핵 물질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핵잠수함 건조를 위해서는 이 협정을 개정 또는 보완부터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국제규범에도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도 NPT 의무에 저촉될 수 있다.
아울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대한 핵연료 조달 및 기술 이전 등에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 해도, 미국 의회 동의도 사안별로 받을 필요가 있다.

천신만고 끝에 국제적인 기술·법적 문제 등을 해결한다고 해도 HD현대와 한화오션에는 국내 건조도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양사가 수중함 건조 기술력이나 수주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핵잠수함 건조는 일반 상선이나 디젤 잠수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건조하는 것도 문제지만, 원자력 공학이나 방사선 안전 관리, 특수 용접 및 비파괴 검사 등 여러 까다로운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자력 발전소 운영 경험은 풍부해도 함정용 소형 원자로 설계 및 운용에 특화된 엔지니어와 특수 노심(Core) 제작 인력이 부족하다. 또한 원자로 시스템을 선체에 통합하고, 높은 수압을 견딜 수 있는 특수 강재 용접 및 가공을 위한 최고 수준의 숙련공도 필요하다. 과거 재무부실 사태 이후 고급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HD현대와 한화오션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재원 부족 문제도 크다. 설계부터 건조까지의 전 과정에서 산업 스파이 및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핵심 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 핵잠수함은 수출이 극도로 제한되는 품목이기에, 건조된 잠수함 대수로 연구·개발(R&D)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데, 추후 한국 해군이 소요하는 잠수함 대수가 제한적이면 척당 단가가 비현실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예산 당국과 국회 설득이 힘겨워질 수 있는 것이다.
울산 소재 HD현대중공업이나 거제도 한화오션 사업장도 핵잠수함 건조를 위한 막대한 현대화 및 재배치 비용이 필요하다. 현재 양사 조선소 시설은 대부분 상선 건조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핵잠수함 건조에 최적화 된 밀폐식 도크(Dock)와 원자로 설치 및 방사선 관리를 위한 고도화된 설비와 보안 요건을 충족하면 미국 당국 인증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핵잠수함이라는 단일 초대형 프로젝트는 경쟁 관계에 있는 HD현대와 한화오션을 국가적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분담하고 협력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 확립도 시급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처럼 국내 기업 간 소모적 경쟁으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