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11.25 15:55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영화배우 이병헌은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의 거의 끝부분에서 "아니 그런 것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보라"고 소리질렀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아닌 '진짜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외침이다. 달리 말하면 '정면 승부 타이밍에서 비껴가려 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니 본심을 보이라'는 주문인 셈이다. 

지난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헌정 사상 초유의 직무배제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후폭풍은 사실상 국론이 양분될 정도의 파장을 낳고 있다.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명령을 내리자 여권에서는 환영의 뜻을 표하는 것을 넘어 윤 총장에게 거취를 정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국민의당은 '헌정사상 초유의 국가 권력의 폭거'로 규정하고 규탄에 나서고 있다. 

이에 더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정의당까지도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주문이라는 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임명권자가 문 대통령이라는 점 외에도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5일 윤 총장에게 검찰총장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기를 바란다"며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국민들이 체감도 하게 되고, 권력의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야권의 공통적인 목소리는 '문 대통령의 결자해지(結者解之)'에 모아지고 있다. 야당들이 왜 입을 모아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 극한적 대립의 해결자로 문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을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추 장관의 액션이지만 그 뒤에는 문 대통령의 뜻이 반드시 깔려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야당들의 요구는 한마디로 "진짜가 나와서 진짜 이유를 대고 정면 승부를 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배우 이병헌의 대사처럼 '표면에 나선 추미애 장관 말고, 진짜(문 대통령)가 나와서 답변해보라'는 것이다.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최근의 '직무배제 조치'는 그 조치의 '주연-조연의 문제' 외에도 본질적으로 '추 장관이 내세운 윤 총장에 대한 혐의가 정당한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추 장관이 내세운 윤 총장의 혐의는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 혐의 ▲재판부에 대한 불법사찰 혐의 ▲측근 비호를 위한 감찰방해 및 수사방해 혐의 ▲언론과의 감찰 관련 정보 거래 혐의 ▲대면조사 협조의무 위반 및 감찰방해 혐의 ▲검찰총장 위엄과 신망 손상 혐의 등 총 여섯 가지다. 

이에대해 대검찰청 측은 24일 추 장관이 징계 청구·직무 배제의 근거로 제시한 6개의 비위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불법사찰 문건'을 쓴 부장검사도 컴퓨터 앞에서 기존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다며 사찰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총장은 개인 변호사를 고용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여당 정치인이 추미애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윤석열 총장에 대해 추미애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몹시 거친 언사와 더불어 초유의 수사지휘권, 감찰권, 인사권을 행사했다"며 "급기야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라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야 말았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과연 이 모든 것이 검찰개혁에 부합되는 것이냐. 그러면 그 검찰개혁은 과연 어떤 것이냐"며 "공수처를 출범시키고 윤석열을 배제하면 형사사법의 정의가 바로서느냐"고 반문했다.

조 의원의 이런 언급은 추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일정한 목적을 갖고 윤석열 찍어내기를 끊임없이 시도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윤석열 검찰총장 배제가 검찰개혁이냐는 궁극적인 물음도 함께 던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도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짜 징계청구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서 "주요 사건 수사에서 정부의 뜻과 다르게 행동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여권이 주장하는 징계 사유의 상당수는 검찰총장 임명 전에 있었던 일들"이라며 "그 당시 윤석열 검사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검증을 책임진 민정수석은 조국이었고, 지금 기회만 있으면 윤 총장을 비판하는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는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검증하고 그렇게 옹호했던 사람에 대해 태도를 180도 바꿔서 공격에 나서는데 어떻게 한 마디 반성이 없느냐"고 쏘아붙였다.

금 전 의원은 여권이 윤석열 총장에 대해 내세우고 있는 혐의 자체가 대부분 검찰총장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있었던 일이라는 지적을 통해 지금 여권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통과한 사안임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 여권의 태도는 내로남불식의 '선택적 정의'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태가 이쯤됐으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문 대통령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게 순리가 아닐까 한다.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말한 것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쯤되면 문 대통령은 점잖 빼는 걸 넘어 직무유기다.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압박에 굴복해 자진사퇴하는 게 정권에는 가장 유리한 모습이겠지만 이미 실패했다"는 언급이 그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과의 진솔한 소통'도 주문하고 있다. 현실적인 여러가지 이유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이른바 '광화문 대통령'을 표방했다. 대통령 취임 전 문 대통령의 바램은 분명히 '퇴근 후 국민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소박한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소통'과 관련해 드러난 지표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의 창구로 사용하고 있는 기자회견 횟수를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역대 대통령 기자회견 횟수에서 문 대통령이 꼴찌다. 올해 8월 기준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2년 4개월 동안 기자회견 횟수가 3회에 그쳤다. 역대 대통령들의 기자회견 횟수를 보면 박근혜 7회, 이명박 9회, 노무현 45회, 김대중 20회다. 문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시도가 얼마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는지는 수치가 증명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국정책임자로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읽어내고 실천해야한다. 설사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는 시도라도 해야할 때다. 

이와관련,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25일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에 청와대와 민주당이 가야할 길에 관한 정답을 쓴 듯하다.  그는 "시민들은 검찰개혁이나 추미애·윤석열로 시작되는 소식보다는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경기가 좋아졌다는 뉴스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국민들을 좀 편하게 해드리는 집권 세력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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