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5.04 17:28
국민의힘 이인선(오른쪽에서 두 번째)의원과 윤창현(세 번째) 의원이 4일 오후 2시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경제위기 극복 1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국민의힘 이인선(오른쪽에서 두 번째)의원과 윤창현(세 번째) 의원이 4일 오후 2시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경제위기 극복 1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금도 노사가 3개월 단위 탄력근로에 합의만 하면 최대 6주까지 근로시간을 주 64시간(52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늘릴 수 있지만 아무도 지금 제도를 64시간 근로제라 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 발언은 노동정책과 노동정무를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노동 관련 보좌진의 부재 혹은 부실과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을 정치적 고려없이 밀어붙인 공무원들의 매너리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한다."(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윤 대통령 취임 1년 동안) 달라진 것이 없다. 신규 원전 계획이 없고 계속운전 신청 지연에 따른 원전 6기 정지 대책도 없다. (원전) 수출은 숙제만 남았다. RE100으로 탈원전 정책을 승계했고 재생에너지 건설계획도 줄지 않았다. 탈원전에 앞장섰던 산업부도 그대로이다."(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두고 4일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과 윤창현 의원, 여의도연구원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 평가토론회'에서 나온 신랄한 비판이다. 

2018년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5쪽 (그림=김대호 사회다자인연구소장 발제문 캡처)
2018년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5쪽 (그림=김대호 사회다자인연구소장 발제문 캡처)

이날 '대한민국 경제위기 극복 1년, 성과와 과제' 를 주제로 진행된 행사에서 김대호 소장은 '고용위기, 원인과 대책' 발제문을 통해 "지금도 마차(고용)를 움직여 말(경제)을 움직인다는 발상, 즉 결과(좋은 일자리 창출)와 원인(경제 선순환 구조 구축)을 뒤바꾼 도식이 2018년 1월 18일 고용노동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거론되던 기억을 악몽처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며 "그런데 더 참담한 것은 이 희대의 경제·고용파괴범인 문재인이 무시못할 지지율을 가지고 있고 이를 뒷배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졌다'며 과거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표=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발제문 캡처)
(표=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발제문 캡처)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을 증대시킨다는 기존 틀을 과감하게 깬 소득주도성장은 문 정부 경제정책의 골간이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임금 격차 해소에 기반을 둔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생산과 투자도 증대돼 내수활성화와 경제성장이 이뤄진다는 논리는 결국 대한민국 빚만 늘렸다.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치면서 국가채무는 문 정부 출범 당시 680조원 수준에서 지난해 1068조원으로 급증했다.

(표=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발제문 캡처) 
(표=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발제문 캡처) 

문 정부가 최저임금을 '너무 빨리 크게' 올린 결과 2021년 현재 한국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은 61.3%로 2000년(28.7%)에 비해 두배 가까이 상승했다. 2016년 50.4%에서 5년 만에 이처럼 올라가면서 독일(51.1%)이나 프랑스(60.9%)보다도 높아졌다는 것이 김 소장의 분석이다. 그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이 높은 국가는 대체로 청년고용률이 저조하다"며 "높은 최저임금은 높은 평등의식, 강력한 국가개입주의, 포퓰리즘 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여파로 단시간 아르바이트생이 급증했다. 2016년과 2022년을 비교하면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448만7000명에서 802만8000명으로 79% 늘어난데 비해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2150만9000명에서 1957만8000명으로 9% 줄어든 것이 입증한다. 일자리의 질이 떨어진 셈이다.

무엇보다도 윤 정부가 지난 3월 6일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권고안을 기반으로 근로시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 반대 논평, 양대 노총과 정의당의 완전 폐기 주장에 밀려 추진동력을 잃게 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와 관련, 김 소장은 "노동개혁의 1번 타자인 근로시간 개편 정책이 '69시간제' 프레임이라는 변화구를 쳐내지 못해 삼진아웃된 현실은 깊은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정치지형과 1987년 컨센서스가 지배적인 이념지형에서 노동개혁을 하려면 관료나 학자들이 서툴거나 백안시하는 정무적 기교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적한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고용위기 진단은 경제학으로, 대안은 정치학으로, 실행은 심리학과 마케팅으로 해야 한다"며 "윤 정부의 개혁은 경제를 넘어 경세(經世)의 관점에서, 법치를 넘어 정치의 관점에서, 정책을 넘어 정무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정부가 귀담아 들을만한 주장이다. 

2016년과 2021년을 비교하면 5년 만에 공공부문에서 일자리가 47만4000개가 늘어났다. (표=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발제문 캡처)
2016년과 2021년을 비교하면 5년 만에 공공부문에서 일자리가 47만4000개가 늘어났다. (표=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발제문 캡처)

고용노동부가 내세운 '노동시간 유연화'는 69시간 근로제로 낙인 찍힌데다 근로자의 건강권이 더 중요하다는 반론에 걸려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좌초위기에 처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은 "근로시간도 법률로서 일률적으로 정해 규제하기보다는 근로자 개개인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프레임으로 갈 수 없었는지 매우 아쉽다"고 밝혔다.

노동개혁을 기득권 상실로 받아들이는 거대 노조 지도부, 대기업 및 공공부문 정규직 직원 등의 조직적인 반발을 예상하고 이들의 반대논리를 무력화시킬 만한 새로운 논리 개발에 실패한 것은 현 정권의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아마추어적 대응이 반복된다면 노동개혁은 동력을 잃을 우려가 크다.  

4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김대호(오른쪽 두 번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양준모 연세대 교수 등과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4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김대호(오른쪽 두 번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양준모 연세대 교수 등과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최근 나타나고 있는 7개월 연속 수출 감소와 14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의 근본 원인은 산업경쟁력 약화와 직결된다. 산업경쟁력 제고 해법으로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기업규모별 차별 철폐로 글로벌 기업 양산 ▲생성, 성장, 진화의 각 단계별로 규제 혁신 ▲고급 CEO·전문연구인력에 대한 획기적 보상 ▲중국에 대한 선린외교 강화로 공급망 안정화 등을 제안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한국 경제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데에는 시장주의경제와 민주주의를 비교적 충실하게 지켜온 노력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가 최근 들어 직무의 중요성이나 생산성에 비해 월등히 많은 이익을 챙기는 '지대추구 집단'의 탐욕으로 상당부분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시장의 이중성이 악화되는 가운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져 대졸 청년의 취업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세계 중심국가로의 도약은 불가능하다.    

토론회를 주관한 조동근 바른시민사회 공동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은 ‘이념전쟁’ 중에 있다. 이를 부정하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금리, 통화, 환율, 재정 등 경제변수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자유, 시장, 민주주의 그리고 국가의 역할 등에 대해 건강한 가치관과 지식으로 무장하는 것"이라며 "국정철학과 방향이 빈(貧)과 부(富)의 길을 가른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시각에서 볼 때 근로자와 사업주를 적대적으로 갈라치기하는 법률의 폐기나 수정은 불가피하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시행된지 1년이 넘었지만 건설사에서 기소된 최고경영자는 죄다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중대재해법 체제에서 CEO를 보호하려면 677개 기준과 1200개 규정에 대한 서류준비를 평소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설명이다. 대기업은 근로자 사망사고가 나더라도 CEO가 기소되지 않도록 로펌 등을 통해 미리 대비한데다 중소기업에 비해 내부체계도 복잡해 책임을 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소기업 사장이 구속되면 회사 경영도 사실상 정지되는 만큼 형사처벌 요건을 엄격히 하고 과징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동쟁의의 개념을 '현행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뿐만 아니라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한 분쟁'으로 확장한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은 위헌 소지가 적지 않다. 헌법 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조 또는 근로자의 폭력·파괴행위로 인한 직접손해가 발생하여 사용자가 노조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묻게 되더라도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면제하거나 배상액을 감면해준다는 규정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회사보다 노조를 살리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말인가.

이와 관련, 박인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이날 "노동쟁의 과정에서 불법적 폭력행위나 파괴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인데 민사책임을 면제한다는 것은 '불법의 합법화'를 도모하는 입법적 모순"이라며 "민노총을 과잉보호하고 이로 인해 선량한 노조와 근로자를 모두 무법자로 만드는 위헌적 입법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옳은 지적이다.

윤 정부는 기업 경영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물론 노조의 무분별한 발목잡기로 인한 노사관계 불안 요인부터 바로 잡는 작업에 앞장서야 한다. 기업의 투자심리를 살리기 위해 당장 풀어야할 과제다. 복합경제위기 국면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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