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5.24 12:17
ㅗ김범석(왼쪽) 쿠팡 이사회 의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제공=각사)
김범석(왼쪽) 쿠팡 이사회 의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제공=각사)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의 관심 있는 현상을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최근 유통업계 화제는 쿠팡의 1위 등극입니다. 쿠팡은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연속 흑자를 내는 동시에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이마트를 뛰어넘었습니다. 물론 연간 실적이 아닌 분기 실적이기에 확대 해석은 경계해야겠지만, 국내 유통시장에서 ‘이마트=1위’라는 불문율을 깨뜨린 하나의 사건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마트도 쿠팡의 이번 실적을 단순한 생채기 차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적 회복이 지지부진하다면 30년 동안 쌓아온 유통왕국에 균열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죠.

◆시장도 놀란 이마트의 '어닝쇼크'

올해 쿠팡과 이마트의 1분기 실적은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쿠팡의 매출은 7조3990억원으로 이마트(7조1354억원)보다 약 2600억원 많았고, 영업이익은 쿠팡이 1362억원을 기록해 이마트(137억원)보다 10배나 많습니다.

시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쿠팡이 잘한 측면도 있지만, 이마트의 ‘어닝쇼크’가 예상 밖 결과라는 것이죠. 2010년대만 해도 영업이익이 7000억원대를 넘나들었던 이마트이기에, 적자 문턱까지 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장엔 충격입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컨센서스를 살펴보면, 증권사들은 이마트 1분기 영업이익을 3월 930억원대로 제시했으나, 4월에는 820억원대로 눈높이를 낮췄습니다. 그러나 이 수정치 역시 실제 발표된 실적과 700억원에 가까운 차이가 났습니다.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이마트 측은 자료를 통해 1분기 영업이익 감소 이유로 전년 동기 코로나19 성장에 따른 역기저효과와 장바구니 부담 상승 등이 작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1분기 공휴일 수가 전년 대비 3일 감소한 것, 연수점과 킨텍스점의 리뉴얼이 조기 진행되면서 매출 공백이 생겨난 점도 꼽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런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반응입니다. 2월까지만 해도 12만원대를 바라본 이마트 주가는 이달 11일 잠정실적 발표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전날인 23일 8만7000원대로 장을 마쳤습니다.

사실 이마트 실적 부진은 마트·백화점·편의점·이커머스 등 9개 유통사업의 일시적 부진도 크지만, 온라인 사업에 대한 시장 공포를 간접 반영한 측면이 작용했죠. 이마트는 지난 2021년 3조5591억원에 G마켓을 인수,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빅딜'을 단행했습니다.

규모가 워낙 큰 빅딜이었기에 각종 재무적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는데요. 일례로 10년 동안 PPA(Purchase Price Allocation·기업인수가격배분) 상각 비용이 반영되면서 올해 1분기만 400억원대의 손실이 실적에 반영됐습니다. G마켓 인수를 위해 차입한 금융 비용도 금리인상에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SSG닷컴과 G마켓의 1분기 영업적자 지속은 실망 그 이상의 결과로 돌아왔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양사의 1분기 영업적자는 각각 156억원, 109억원을 기록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적자를 200억원 가까이 줄였지만, 시장은 이미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해석이죠

신세계그룹은 내달 7일 새로운 온·오프라인 통합 멤버십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을 선보인다. (사진제공=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은 내달 7일 새로운 온·오프라인 통합 멤버십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을 선보인다. (사진제공=신세계그룹)

◆구원 등판한 '신세계 유니버스'…킬러 콘텐츠가 궁금하다

G마켓 인수 당시 정용진 부회장은 인수대금이 적정한 수준을 넘었다는 지적에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결정의 기준"이라며 G마켓의 성공을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인수 이후 1년 반이 넘는 동안 시너지 창출이 요원해지면서 결국 ‘신세계 유니버스’라는 준비된 카드를 띄우게 됩니다.

최근 신세계그룹은 신세계 유니버스를 다음 달 7일 정식 선보이며 신세계만의 온‧오프라인 통합 유료 서비스를 본격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존의 쓱닷컴·지마켓 통합 멤버십인 ‘스마일클럽’에 이마트·신세계백화점·스타벅스·신세계면세점 등 오프라인 주요 계열사 혜택까지 얹었습니다. 여러 브랜드로 분산된 고객 경험을 하나로 묶어 고객 시간을 점유하겠다는 포부입니다. 아직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쿠팡을 겨냥한 비장의 카드가 분명해 보입니다.

그동안 정 부회장은 그룹의 미래 방향성으로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완성형 쇼핑 모델’이라고 강조해왔는데요. 이를 신세계 유니버스라 입버릇처럼 말해 왔죠. 실적 발표 직후 통합서비스 브랜드 네이밍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진 것을 보면 해당 카드를 언제 꺼내 들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다만 신세계 유니버스의 일부 공개된 내용을 보면 아쉬운 측면이 없잖습니다. 3만원이라는 연회비 방식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쿠팡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쿠팡 로켓와우는 첫 서비스 론칭 때 29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초기 회원을 끌어모으기 위해 요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한 전략인데요. 현재 회원 수가 약 1000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성공적인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G마켓의 스마일배송 1% 적립, 스마일프레시 5% 적립 혜택이 사라진 점도 아쉽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기존 스마일클럽 가입자에게 제공한 쓱닷컴 월 2회 무료 배송서비스를 종료한 점, 지마켓 스마일배송 카테고리에서 1만5000원 이상 구입 시 무제한 무료 배송을 없앤 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 유니버스가 가입비를 높게 책정한 것은 서비스 해지율을 낮추고 비용 부담을 덜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며 “중요한 것은 쿠팡 서비스가 가격경쟁력으로 승부를 걸었던 것처럼, 신세계 유니버스도 강력한 ‘한 방’이 있어야 한다”라고 진단했습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외벽에 쿠팡 로고와 태극기가 게시되어 있다. (사진제공=쿠팡)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외벽에 쿠팡 로고와 태극기가 게시되어 있다. (사진제공=쿠팡)

◆쿠팡 '왕관의 무게' 견딜까…각종 리스크 '첩첩산중'

쿠팡이 이마트를 처음으로 앞지른 상황이지만, 쿠팡 역시 순탄한 길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한 발만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리스크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선 쿠팡은 ‘만년 적자’의 꼬리표를 끊어냈지만, 외형을 불려가는 투자 방식이 불안 요인입니다. 투자 비용을 완급조절해 고정비 부담을 줄여야 할 때 아니냐는 마뜩잖은 시선이데요.

쿠팡은 지난해 3200억원을 들여 대구에 초대형 물류센터를 구축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산과 전북 완주, 경남 창원 등 6곳에 지역거점 물류센터를 추가로 지을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1조원 이상의 막대한 재원이 투입될 예정이고요.

이러한 인프라 증대는 유지‧관리를 위한 인건비의 자동 증가를 의미합니다. 지난해 쿠팡의 급여 지출은 4조7000억원대입니다. 그해 매출 대비 약 18% 수준으로, 유통업계에서는 독보적인 수준입니다. 인건비 비중이 살인적이라는 IT업계가 20% 중반대 수준인 것을 고려한다면, 나중 쿠팡의 인건비 부담은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더욱이 쿠팡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6조1000억원의 누적 적자를 내다가 이제야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자칫 흑자 행진을 짧게 마감한다면, 이런 불안 요인은 증폭될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쿠팡 주식은 35달러의 공모가로 시작한 이후, 현재 10달러대를 맴돌고 있습니다. 이번 1분기 실적을 흑자로 장식하면서 3개 분기 연속 흑자를 봤음에도 좀처럼 주가 상승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요. 이는 여전히 시장 불안감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업계 관심사로 떠오른 쿠팡과 CJ제일제당의 ‘햇반전쟁’처럼, 납품단가를 둔 제조사와의 갈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CJ제일제당은 쿠팡을 제외하고 네이버·SSG닷컴·컬리 등 다른 이커머스와 협업을 이어가 협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쿠팡은 자체브랜드(PB) 상품과 경쟁사 상품 할인, 오픈마켓 판매자 제트배송 등 CJ제일제당의 납품 없이도 독자 생존할 수 있다며 ‘강 대 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쿠팡에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입니다. 양측이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지만, 쿠팡이 거대 이커머스 채널을 앞세워 납품사를 압박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면 '이겨도 지는 싸움'이 된다는 판단이죠.

한편에서는 최근 택배노조와의 잡음부터 지난해 경기도 이천에 소재한 쿠팡 덕평 물류센터의 대형 화재사건, 새벽 배송업무에 나선 배송 기사의 사망사건 등이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된 점을 들며 쿠팡의 전반적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조언도 나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마트24 상품전시회인 '딜리셔스페스티벌'에서 음식을 시식하고 있다. (사진제공=이마트24)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마트24 상품전시회인 '딜리셔스페스티벌'에서 음식을 시식하고 있다. (사진제공=이마트24)

◆유통가는 '세계관' 전쟁…팬덤 확보가 '관건'

결국 이마트와 쿠팡의 국내 유통업계 1위 싸움은 제각각 안고 있는 다양한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중점 추진하는 신규 사업을 시장에 어떻게 안착시킬지가 관건입니다. 특히 신세계 유니버스와 같이 고객의 모든 소비 과정을 ‘신세계’ 안에서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세계관 전쟁이 1위 싸움의 향배에 큰 영향을 끼칠 전망입니다.

쿠팡 역시 오프라인 채널이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고자 온라인 채널의 극대화 전략을 중점 추진하고 있습니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하면 온라인상에서 쇼핑(쿠팡)과 외식(쿠팡이츠), 즐기는(쿠팡플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겠다는 쿠팡 유니버스를 고도화시키는 중이죠.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관 경쟁은 경험과 공유를 중요시하는 MZ세대의 특성에 맞춘 마케팅 전략으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은 기업이 소비자들의 요구에 지속적으로 부응하고 소통한다는 긍정적 이미지를 부여해 준다”며 “세계관을 통해 누가 더 많은 팬덤을 확보하느냐가 1위 싸움의 승부처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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