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11.15 16:17
박현종 전 bhc그룹 회장. (사진제공=bhc)
박현종 전 bhc그룹 회장. (사진제공=bhc)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에서 불거진 이슈를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bhc의 ‘성공신화’를 일궜던 박현종 회장이 최근 이사회를 통해 해임되면서 그 이유에 대한 뒷말이 무성합니다. 통상 대표이사급의 해임 사례는 흔치 않은데요. 보통은 해임이 가진 부정적 파급력을 고려해 스스로 그만두었다는 ‘사임’ 형식을 빌려 좋게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bhc는 보도자료를 통해 박 회장의 해임을 공식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해임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할 모종의 이유가 있지 않겠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합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박 회장의 해임 이후 ‘IPO(기업공개)’ 추진부터 사모펀드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10년 ‘치킨 전쟁’ 끝내자…유화적 메시지?

bhc그룹의 지주사인 글로벌고메이서비시스(이하 GGS)는 지난 6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박현종 GGS 대표이사 회장의 해임안을 가결했습니다.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 전원이 만장일치 찬성할 만큼, 안건이 일사천리로 처리됐다는 후문입니다. 여기에 박 회장의 ‘오른팔’인 임금옥 bhc 대표이사도 동시 해임되는 등 두 경영자의 ‘불명예 퇴임’을 공식화했습니다.

우선 박 회장의 ‘벼락 해임’의 맥락을 파악하려면 전후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요. 박 회장은 25년 동안 삼성전자에서 인사, 마케팅, 영업 등을 두루 경험한 ‘삼성맨’ 출신입니다. 지난 2012년 윤홍근 제너시스비비큐 회장의 부름에 받고 외식프랜차이즈 업계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는 2012년 5월 비비큐에 들어와 자회사 bhc의 매각 작업이라는 중책을 맡습니다. 당시 비비큐는 bhc를 팔아 자금 수혈에 나설 정도로 곳간 사정이 좋지 못했죠. 매각 작업은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졌고, 2013년 6월 미국계 사모펀드 더로하틴그룹이 bhc를 1130억원에 사들이기로 합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보였던 bhc 매각은 ‘치킨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끔찍한 악몽이 됩니다. 더로하틴그룹은 bhc 매각 조건으로 박 회장을 bhc 대표로 오게 해달라며 비비큐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비비큐도 이를 수락해 박 회장은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문제는 박 회장이 이직하자마자 더로하틴그룹이 비비큐에게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비비큐가 bhc의 점포 수를 부풀려 팔아넘겼다며 매각 잔금 지급 거부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비비큐는 이 소송에서 패소해 약 98억원을 배상하게 되죠.

이후 비비큐는 박 회장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고 ‘확신’하며 전면전을 선언하게 됩니다. bhc 매각 조건이었던 물류공급계약 파기부터 임직원 영업비밀침해 고소, 정보통신망법 위반 고소, 주식매매계약 관련 배임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합니다.

bhc도 맞대응에 나서면서 윤홍근 회장의 배임 혐의 고발로 전장을 키우게 됩니다. 양측의 ‘이판사판’ 진흙탕 싸움은 올해까지 1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미뤄봤을 때 이번 박 회장의 해임은 GGS가 오랜 법적분쟁을 끝내기 위한 유화적 메시지가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bhc는 지난해부터 치킨업계 매출 1위로 올라서 대외적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쌍방 득 없는 싸움을 이어갈 명분이 퇴색된 상황에서 박 회장 해임을 ‘희생타’로 삼았다는 분석이 하나의 유력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집니다.

비비큐 전산망 불법 접속 혐의를 받고 있는 박현종 bhc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스1)
비비큐 전산망 불법 접속 혐의를 받고 있는 박현종 bhc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스1)

◆방어권 스스로 포기…경영성과는 해임 사유 불충분

그럼에도 박 회장의 해임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상법에서는 대표이사를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게 한 보호장치가 작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박 회장의 경영 성과는 흠잡을 곳 없이 출중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상법에서는 대표이사의 지위를 보호해주고 있습니다. 상법 제385조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대표이사를 해임하면 손해배상의무가 발생합니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주주와 이사의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관계 상실만으로 대표이사 해임이 어렵다고 규정합니다. 대표이사가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하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직무를 감당하기 힘든 경우, 회사 경영을 크게 훼손하는 경우 등, 해임이 가능한 정당한 이유를 한정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회사 실적을 따지고 들면 박 회장의 해임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박 회장은 지난해 교촌치킨의 10년 아성을 허물고 치킨업계 매출 1위 자리를 빼앗았는데요. bhc는 지난해 매출 5075억원에 영업이익 1418억원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영업이익률은 무려 30%에 육박하며, 지난 4년 간 주주들에게 안겨준 배당금은 4200억원대에 이릅니다.

그의 성과는 bhc에 머물지 않고 ‘창고43’, ‘큰맘할매순대국’,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등 다양한 외식브랜드들의 성공적 인수와 운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bhc를 1조원대의 종합외식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이기에 경영 성과를 이유로 해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주목할 점은 박 회장이 자신의 해임안이 처리된 이사회에서 별다른 ‘반발’ 없이 해임안을 받아들인 건데요. 보통 이사회가 소집되기 최소 일주일 전에는 안건을 통보해주기 때문에 박 회장과 GGS 측이 사전에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냐는 추측입니다. 박 회장은 14일 비비큐와의 항소심 4차 공판 참석을 위해 법원에 모습을 보였지만 해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등, 모종의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bhc가 내놓은 신메뉴인 '마법클'. (사진제공=bhc)
올해 bhc가 내놓은 신메뉴인 '마법클'. (사진제공=bhc)

◆MBO 성공과 입지 축소…‘IPO’ 추진 가능성도 

한편에서는 박 회장의 해임 시나리오를 두고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사정 칼날’을 휘둘러 경영진을 물갈이한 후, bhc의 IPO 또는 투자금 회수를 뜻하는 ‘엑시트’에 착수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박 회장은 2018년 더로하틴그룹으로부터 프랜차이즈서비스아시아리미티드 지분 100%를 인수하는 경영자인수(MBO)를 시도합니다. 당시 프랜차이즈서비스아시아리미티드는 bhc의 지주사로, 박 회장은 MBO 성사를 위해 엘리베이션에쿼티파트너스 펀드, NH투자증권, MBK파트너스 스페셜시추에이션펀드(SSF) 등의 여러 파트너를 유치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요. 이를 위해 특수목적법인 글로벌레스토랑그룹(현 GGS)를 세웠고, 인수자금 6392억원을 마련하게 됩니다.

다만 박 회장은 인수를 위한 압도적인 외부 차입금 조달에 발목이 잡히면서 초반에 꽤 가지고 있던 지분이 현재 약 8%대까지 낮아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MBK파트너스는 bhc 최대주주의 위치를 활용해 2020년 말 보통주 전환 및 추가 투자를 단행, 최대주주의 지위를 더욱 견고히 다집니다. GGS의 지분은 MBK파트너스 40%대, 캐나다연금 펀드 2곳 50%대 비중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박 회장 입장에서 MBO 성공과 별개로 자리 보존을 위한 버팀목이 갈수록 취약해짐을 의미합니다. 즉, 최대주주의 입김이 더욱 거세진 상황이라 이번 해임안처럼 돌발상황에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앞서 MBK파트너스는 올해 9월 bhc의 재무책임자로 이훈종 부사장을 인선한 바 있습니다. 이에 박 회장 등 기존 경영진은 최대주주의 측근을 기용한다며 반대 의견을 내놓았는데요. MBK파트너스 입장에서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박 회장에게 최후의 보루인 인사카드를 휘두른 격입니다. 어찌 보면 인사카드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bhc는 2018년만 해도 기업가치가 68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약 1조8150억원으로 가치가 두 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이런 체력으로 자본시장에 뛰어든다면, 어쩌면 치킨업계 유일한 상장사인 교촌에프엔비보다 더 좋은 시장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제공=MBK파트너스)
(사진제공=MBK파트너스)

또한 적절한 시점에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해 엑시트를 진행해도, 몇 배 이상의 차익을 남기고 손을 털 수 있는 최적의 시기입니다. 물론 bhc가 더 성장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엑시트보다 IPO 가능성에 무게를 싣겠죠.

IPO 정황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인선 움직임에도 나타납니다. 통상 IPO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상장 준비에 적합한 CFO 발탁에 매우 신중한데요. 내부에서 유능한 CFO를 찾지 못하면 거금을 들여서라도 외부 스카우트를 진행하는 게 통례입니다. 상장 성패는 바로 CFO 역량에 좌우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죠.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의 경우, 재계의 ‘스타 CFO’로 자리매김한 사례입니다.

박 회장이 물러난 자리에는 MBK 측 인물로 알려진 차영수 사내이사와 이훈종 사내이사가 대신했습니다. GSS 대표에 선임된 차 이사는 삼성물산과 삼성증권, 삼성생명 등을 거쳐 삼성선물의 대표직을 역임한 후 2019년 MBK파트너스에 합류한 ‘재무통’입니다. bhc 대표에 선임된 이 이사 역시 재무통 출신이며, 안진회계법인과 KB국민은행, 위니아만도, 지오영 등을 거쳤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사회가 박 회장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사내이사직을 유지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과정을 용인했다”며 “여러 사정을 종합해볼 때, 이번 박 회장의 해임건은 최대주주와 박 회장 사이에 복잡한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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