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11.28 09:22
김호연 빙그레 회장. (사진제공=빙그레)
김호연 빙그레 회장. (사진제공=빙그레)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에서 불거진 이슈를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과 가공유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빙그레가 올해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예약했습니다. 실적 증대의 주된 요인은 주요 제품의 잇따른 가격 인상이 지목되는데요.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가격 인상 배경에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과받은 아이스크림 ‘짬짜미(담합)’ 과징금과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세 자녀가 소유한 ‘제때’의 IPO(기업공개)를 위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냐는 시각이 나옵니다.

◆영업익 157%↑ 매출원가율 67%…가격 인상 ‘명분 퇴색’

올해 빙그레는 실적 잔치를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1~3분기 연결기준 누적 영업이익 1244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484억원보다 157% 증가했는데요. 아이스크림 비수기인 4분기 실적을 고려하더라도 연간 최대 영업이익 경신은 확실해 보입니다. 1000억원대 영업이익은 1967년 빙그레 모태인 대일양행 설립 이후 첫 달성이라는 기념비적인 쾌거입니다.

다만 실적 증대 요인을 살펴보면, 신사업의 성공적 전개와 해외 판로 개척과 같은 전통적 성장 공식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 눈에 띕니다. 농심과 삼양식품이 해외 사업을 발판 삼아 연일 ‘잭폿’을 터뜨리고 있는 것과 달리, 빙그레는 안방 시장에서 가격을 인상해 실적 증대를 이뤄낸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 사례를 들면 1974년 출시해 내년 50주년을 맞는 ‘바나나맛우유’는 2013년 1300원에서 1500원 인상까지 8년이 걸렸지만, 최근 2년 사이 300원(20%) 올랐습니다.

아이스크림 ‘투게더’는 상승 폭이 더 큽니다. 지난해 말 7000원(소비자가격 기준)에서 9000원으로 올렸고, 최근에 9800원으로 다시 인상해 이제 1만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1년 만에 값이 40% 올랐습니다. 놀라운 ‘인상 속도’입니다. 이런 가격 인상은 투게더와 바나나맛우유에 그치지 않고 ‘메로나’, ‘비비빅’ 등 전방위에 걸쳐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빙그레의 이러한 가격 인상을 두고 수익성 증대를 위한 목적이 다분하다며, 즉각적인 가격 인하를 요구했습니다. 협의회는 원유 가격 상승과 비교해 아이스크림 인상 폭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으며, 메로나는 수입산 혼합탈지분유를 사용하기에 원유 가격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식품 업계의 가격 인상 명분으로 작용하는 매출원가율을 보면 빙그레의 수익성 증대 방향이 더욱 명료해집니다. 빙그레는 올해 사상 최저치의 매출원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분기 기준 매출원가율은 67.5%로, 전년 동기 71.8%보다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식품 업계 1위인 CJ제일제당의 경우 올해 매출원가율이 80%를 웃돕니다. 이와 비교할 때 60%대 매출원가율은 기록적인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유업계 경쟁사인 매일유업의 매출원가율은 72.0%, 남양유업은 79.1%, 올해 쾌조의 흐름을 보이는 아이스크림 경쟁사인 롯데웰푸드도 70%를 상회합니다.

이러한 시선이 부담스러웠을까요. 빙그레는 지난 8월 보도자료를 통해 역대 최대 수출을 달성했다며 수익성 비결을 수출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수출이 전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합니다. 3분기 누적 빙그레 수출액은 1042억원으로 매출 8414억원의 12.3%에 그칩니다. 반면, 최근 해외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삼양식품은 같은 기간 매출 8661억원 중 수출액 5760억원으로, 66.5%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년 출시 50주년을 맞는 빙그레 '투게더'는 국내 떠먹는 아이스크림의 대표 제품으로, 최근 1년 사이 소비자가격이 40% 인상돼 98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사진제공=빙그레)
내년 출시 50주년을 맞는 빙그레 '투게더'는 국내 떠먹는 아이스크림의 대표 제품으로, 최근 1년 사이 소비자가격이 40% 인상돼 98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사진제공=빙그레)

◆공정위 ‘철퇴’ 현금유동성 악화…‘빈 곳간’ 채워라

이처럼 빙그레의 가격 인상은 소비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원가 인상분이 매우 높아 어쩔 수 없는 가격 인상이라면 소비자들도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빙그레의 ‘폭풍 인상’ 배경을 두고 지난해 공정위의 과징금 ‘철퇴’가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지난해 공정위는 빙그레를 포함한 아이스크림 제조사 5곳과 유통사업자 3곳에 담합을 이유로 총 13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공정위는 담합이 4년 가까이 이어진 점, 참여한 기업들이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을 85%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식품 담합 중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매겼습니다.

당시 빙그레는 과징금으로 388억원의 현금이 한꺼번에 유출되면서 순손실 전환과 함께 현금유동성까지 악화하는 곤란한 처지에 놓였죠. 징계를 받은 기업 중 과징금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과징금 손실을 만회할 카드가 절실한 처지였고, 가장 손쉬운 방법인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이 아니냐는 업계의 해석을 낳게 합니다.

여기에 2020년 해태제과식품의 빙과부문에서 물적분할한 해태아이스크림의 지분 100%를 1325억원에 인수한 점도 ‘빈 곳간’을 급하게 채워야 할 또 다른 이유로 작동하는 부분입니다. 빙그레 첫 인수합병(M&A) 사례인 만큼, 인수로 인한 영업망과 물류체계 효율화 등에 투입될 현금이 당분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지난해 케펙스(CAPEX, 설비투자) 비용이 크게 줄어든 점도 이러한 사정과 들어맞는 부분인데요. 빙그레의 케펙스는 2020년 484억원, 2021년 570억원으로 증가 추이를 보이다 지난해 280억원으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올해 3분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지난해 0.86%보다 더 떨어진 0.84%로,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끼겠다는 의도를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지난 2021년 6월 용산 효창공원을 찾아 백범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김 회장 뒤에는 김구 선생의 친손녀이자 김 회장의 아내인 김미 씨가 서 있다. (사진제공=빙그레)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지난 2021년 6월 용산 효창공원을 찾아 백범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김 회장 뒤에는 김구 선생의 친손녀이자 김 회장의 아내인 김미 씨가 서 있다. (사진제공=빙그레)

◆3세 승계 ‘제때’의 움직임…“내부일감 적절히 채워야”

폭풍 인상의 또 다른 배경으로, 업계 일각에서는 빙그레의 오너 가족회사인 ‘제때’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제때를 키워 경영권 승계 기반으로 활용하기 위한 밑그림이 아니냐는 추측이죠. 제때는 김호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환 씨가 올해 상무에서 본부장으로 승진하며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빙그레 최대주주로 36.75%의 지분과 함께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지분이 40.89%에 달합니다. 오너 3세들은 빙그레 주식을 1주도 보유하지 않고 있지만, 제때가 빙그레 지분 1.99%를 가진 3대 주주이기에 사실상 오너 3세들의 빙그레 주식은 약 2% 수준입니다.

제때 지분율은 김 상무가 33.34%, 장녀 김정화 씨와 차남 김동만 씨가 나머지 지분을 각각 33.33%씩 나눠 갖고 있습니다. 오너 일가의 경영승계에서 비상장 계열사가 전체 판도를 은밀히 좌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제때도 빙그레 오너 3세의 경영권 승계에 핵심 역할을 하지 않겠냐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제때는 배당 확대 기조를 매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배당 확대로 인한 3세 승계 자금의 원활한 확보로 보여지는 대목인데요.

여기에 액면분할에 나서 주식 총수를 크게 늘린 점도 향후 제때의 IPO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습니다. IPO 추진 시 비상장기업의 액면분할은 예비심사 청구 전 사전정지작업으로 통용되는데요. 주식의 주당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거래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목적으로 읽힙니다. 물론, 낮은 주가는 경영권 지분 확보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제때 물류센터 전경. (출처=제때 홈페이지)
제때 물류센터 전경. (출처=제때 홈페이지)

제때의 주요 매출원은 빙그레의 냉장·냉동 제품 운송에서 발생합니다. 제때는 1998년 빙그레에서 분리해 나왔고, 2016년에 KN물류에서 사명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제때 매출은 2014년 750억원에서 지난해 2836억원으로 9년 동안 278.1%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해당 기간 빙그레로부터 받은 내부거래 일감은 345억원에서 761억원으로 120.5% 증가했습니다. 빙그레가 인수한 해태아이스크림의 일감도 160억원으로 집계됩니다. 두 회사로 인해 발생한 내부거래액은 921억원으로, 전체 매출액 대비 32.4% 수준입니다.

일감몰아주기 과세요건(증여세 부과기준)에서는 특수관계법인에 대한 매출액이 100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매출액 대비 20% 수준에서, 그 이하의 매출액은 중견기업은 40% 수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때가 해당 규정에 근거해 일감몰아주기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때를 통한 3세 승계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면, 제때의 지속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빙그레도 제때에게 적절한 내부 일감을 꾸준히 공급해줘야 하는 상황이기에 자체 수익성 증대라는 담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박창훈 해태아이스크림 대표가 돌연 퇴임한 것과 김 회장 차남이 해태아이스크림 전무로 입사한 것은 3세 경영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졌음을 암시한다”며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빙그레가 최근 몇 년 사이 주요 제품 가격을 잇달아 인상한 것은 이런 배경 아니겠냐는 주장이 업계에서 거론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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