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10.31 17:38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명예 공학박사 학위수여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명예 공학박사 학위수여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에서 불거진 이슈를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국내 최대 컨테이너 해운사이자 글로벌 규모 8위인 HMM의 매각 본입찰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본시장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인수후보 중 ‘언더독(이길 가능성이 적은 약체)’으로 평가받는 동원그룹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HMM 인수는 꿈의 정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공식석상에서 강한 애착을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동원그룹은 적격인수후보 선정 때부터 현재까지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히든카드’가 잘 보이지 않는 실정입니다.

더욱이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적격 대상자가 없으면 HMM 매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동원그룹 입장에서는 자금력의 절대적 열세에 최대주주의 회의적 시각까지 더해지면서 인수 가능성이 더욱 옅어진 상황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동원그룹의 인수합병(M&A) 참여가 다른 노림수를 내포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HMM 인수, 영구채 부담 안으면 최소 6조 시작

지난달 HMM의 적격인수후보에는 동원산업,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 LX인터내셔널 등이 선정됐습니다. HMM 최대주주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삼성증권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11월 23일 HMM 본입찰에 나설 예정입니다.

본입찰 이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연내 주식매매계약까지 체결할 방침이지만, 산업은행은 최근 국감자리에서 HMM 매각을 강행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후보들의 자금력 문제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간접 인정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매각 대상인 HMM 주식은 3억9879만주 규모입니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주식은 각각 1억120만주, 9759만주를 기본으로, 1조원 규모의 영구 전환사채(CB‧만기를 계속해서 연장할 수 있는 채권)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의 주식 전환분 신주 2억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산은과 해진공은 영구채 1조원을 보통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다음 달 10일 신주 상장이 마무리되면 산은의 HMM 지분율은 40.6%에서 57.9%로 높아질 예정입니다. 자연스레 HMM의 전체 발행 주식이 늘어나 후보들의 인수자금 부담이 커지게 되는 구조입니다.

HMM의 4600TEU급 컨테이너선 운항 모습. (사진제공=HMM)
HMM의 4600TEU급 컨테이너선 운항 모습. (사진제공=HMM)

HMM 주식은 31일 종가 기준으로 1주당 1만4570원입니다. 영구채의 보통주 전환 이후 시장에 물량이 쏟아지면 주가 하락을 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만약 1만4000원대의 가격 방어가 이뤄진다고 가정한다면, 산은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약 5조6000억원대로 추정됩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외했기 때문에 후보들이 마련해야 할 실탄 규모는 최소 6조원부터 시작할 것 같습니다.

더욱이 산은은 내년 전환권 행사가 가능한 잔여 영구채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영구채 문제는 변동 요소가 많아 차후 협상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남은 영구채의 전량 보통주 전환(산은 총 지분율 약 71.7% 증가)이라는 시나리오는 현 인수후보들에게 매우 벅찬 과제입니다.

복잡한 전후사정은 차치하더라도 산은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먼저 HMM의 ‘제값받기’가 가능해야 하며, 두 번째로는 후보들의 인수자금 마련이 최대한 자기자본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후보 중 누군가가 무리한 빚을 내 인수에 성공한다면, HMM의 유동자산이 빚 갚기에 사용될 여지가 있겠죠. 매각 이후 HMM의 경영실적이 내리막길로 치닫는다면 산은에게 ‘졸속 매각’이라는 매서운 비판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시장에서는 인수후보 세 곳이 자기자본만 가지고 평가할 때 ‘함량 미달’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입니다. LX그룹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조5000억원대, 하림그룹은 1조6000억원대, 동원그룹은 이보다 한참 못 미치는 6000억원대로 파악됩니다. 시장에서 이번 매각을 유찰시키고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을 등판시켜 재매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한 동원F&B빌딩 전경. (사진제공=동원그룹)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한 동원F&B빌딩 전경. (사진제공=동원그룹)

◆동원그룹, 유동자산 긁어모아야 2조…해외자본 유치도 쉽지 않아

한편에서는 현금성 자산이 6000억원대에 불과한 동원그룹이 무엇을 믿고 HMM 인수전에 뛰어들었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지난 19일 한양대학교 명예공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HMM 인수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글로벌 해운사 HMM 인수는 (글로벌 해양 기업을 목표로 한 동원그룹의) 꿈의 정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HMM 인수를 통해 해상물류와 육상물류를 아우르는 종합물류체계를 구축해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으로 읽힙니다.

다만 김 명예회장의 원대한 꿈과 달리 동원그룹에 놓인 현실의 벽은 넘기 힘든 수준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동원그룹의 자산 규모는 약 9조원으로 재계 54위며, HMM은 약 28조8000억원으로 19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단순 자산 규모만으로도 3배 이상 차이나 ‘새우가 고래를 먹으려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동원그룹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 6000억원을 제외한 내부 자금 조달이 약 2조원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지주사인 동원산업을 비롯해 자산 1조원을 확보한 해외 우량 자회사 스타키스트, 식음료 대표 계열사 동원F&B와 이차전지 신사업으로 잘 나가는 동원시스템즈 등 주요 상장 계열사의 유동 가능한 지분을 전부 긁어모아야 합니다. 여기에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동원F&B빌딩 매각과 같은 부동산 자산 처분도 뒷받침해줘야 2조원 정도를 마련할 수 있는데요.

지난 3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투자증권)
지난 3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투자증권)

문제는 동원그룹보다 현금 보유량이 많은 LX그룹과 하림그룹도 비슷한 방식으로 2조원 이상의 자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LX그룹은 범LG가 일원으로 LG그룹이라는 막강한 ‘뒷배’가 존재합니다.

결론적으로 동원그룹의 자체 인수자금 마련은 쉽지 않고, 경쟁후보들보다 크게 밀리는 처지입니다. 남은 카드로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등 재무적투자자(FI)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그룹의 낮은 부채비율과 높은 신용도를 활용한 인수금융(M&A 대출) 시나리오가 거론되는데요. 인수금융은 고금리 장기화에 선택하기 쉽지 않은 카드고, 김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회장이 이끄는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지원사격에 나서준다면 상황을 조금이나마 반전시킬 것이란 ‘희망 회로’를 돌려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지원군을 자처한다면 직접적 지원보다 재무적투자자를 연결해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기자본잉여금의 일부분만 투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금융사들의 태생적 한계에 직접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죠.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자본잉여금은 6081억원에 그쳐 동원그룹의 실탄 마련에 큰 도움이 되는 수준이 아닙니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한다면 대형 사모투자펀드 운용사와 해외자본 유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최근 대형 사모펀드들은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국부펀드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의 해외 큰손도 투자처 물색에 혈안인 상황이죠. 최근 사우디 국부펀드 더퍼블릭인베이스먼트펀드(PIF)와 GIC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1조2000억원대를 투자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대변합니다.

모두 다 가상 시나리오지만, 재무적투자자 한 곳에 1조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해 4곳 정도를 끌어모으면 얼추 동원그룹의 인수자금 마련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악몽’이 여전히 남은 상황에서 산은이 이러한 시나리오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겠죠.

동원산업 최근 주식 시황 추이. (출처=구글 주식 차트)
동원산업 최근 주식 시황 추이. (출처=구글 주식 차트)

◆증여세 목적 혹은 ‘불쏘시개’ 추측도…“자본시장 신뢰 잃을 수도”

이처럼 다양한 시나리오를 모색해도 동원그룹의 실탄 마련은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동원그룹 측은 사모투자펀드 운용사 등 재무적투자자와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보다 자력으로 인수전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요. 동원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한국투자금융지주의 HMM 인수전 파트너 참여 여부에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단독 완주를 자신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원그룹의 인수전 참여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시장에서는 기업의 M&A 참여가 다른 의도를 내포하는 유형으로 주가 하락에 따른 지분 매수, 증여세 절감 등을 꼽고 있습니다. 즉, 주가 하락기에 주식을 증여하면 증여세 절감효과가 있으며,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어 2세 경영을 위한 지배력 강화를 노릴 수 있는 것이죠.

현재 동원산업의 주가는 상전벽해 수준입니다. 최근 상승세로 전환했지만, 이달 20일 종가 기준 2만7450원으로 내리막길을 타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3만4000원과 비교해 88.2% 폭락인데요. 물론 지난해 말 동원산업이 기존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합병해 동원그룹 지주사로 바뀌면서 액면분할 신주발행에 나선 영향이 큽니다. 그래도 하락세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명예 공학박사 학위수여식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명예 공학박사 학위수여식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1935년생으로 올해 88세인 김 명예회장은 지주사 동원산업의 지분을 15.5% 보유하고 있습니다. 차남인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43.2%)을 비롯한 특수 관계인 지분율이 91.14%로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가 확고한 상황이지만, 김 명예회장이 고령인 점을 고려할 때 차남에게 지분을 증여하거나, 혹은 동원육영재단으로의 지분 증여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증여세를 낮추기 위한 ‘주가 누르기’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지금은 적절한 시점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단정할 수 없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국내 자본시장에서 과세제도의 맹점을 파고드는 사례들은 흔하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 M&A 큰 장이 섰을 때 이목을 집중시키는 ‘불쏘시개’ 목적도 다분하다는 해석입니다. 국민적 관심을 받으면서 홍보 효과를 제대로 누리겠다는 것이죠.

앞서 동원산업은 올해 4월 맥도날드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가격과 운영방식 등 이견차가 있다며 철회 의사를 밝혔고, 3월에도 보령바이오파마도 비슷한 이유로 인수를 포기했습니다. 두 인수전 모두 초기에는 인수 의사를 강하게 어필한 것으로 알려져 언론에 숱하게 오르내린 바 있죠.

업계 한 관계자는 “동원그룹의 HMM 인수전 참여는 객관적인 측면에서 진정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조금 더 경과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최근 일련의 행보들을 살펴봤을 때 이번 HMM 인수전이 별 의미 없이 끝난다면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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