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08.29 08:00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한때 '청각장애' 두 아이와 아파트서 뛰어내릴 생각…인공와우 장착한뒤 조용한 곳에선 잘 들어"

정재은(가운데) 씨가 두 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가운데) 씨가 자신의 두 아들인 배석진(오른쪽) 군과 배석민 군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인공와우'(人工蝸牛)는 와우 질환으로 양쪽 귀에 청각장애가 발생한 환자가 보청기를 착용해도 청력이 나아지지 않을 때 이식하게 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어떠한 이상도 없음에도 고도이상의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청취능력의 제한으로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인공와우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제안되는 대안 중의 하나이다. 청각장애의 심각성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것에 못지 않게 청각장애를 넘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통해 타인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뉴스웍스는 오는 9월 9일 '귀의 날'을 전후한 시기까지 총 3회에 걸쳐 '청각장애'를 넘어 행복을 찾은 스토리를 게재한다. 이번 기획의 첫 번째 이야기를 소개한다.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대구광역시에 거주하는 배석진·배석민 학생은 애초부터 '청각장애 환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온갖 고통을 겪어왔다.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그 부모의 어려움도 컸다. 배석진 학생은 현재 대학교 1학년생이고 동생인 배석민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배석진·배석민 학생과 그 가족이 청각장애를 넘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과정을 보면 '인공와우 시술'의 필요성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 같다. 청각장애로 고통을 겪어오던 배석진·배석민 학생이 인공와우 시술을 받고 살아온 과정을 어머니인 정재은 씨(54세)로부터 지난 23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아래는 정재은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배석진·배석민 학생이 '인공와우'를 장착하게 된 계기는.

"두 아이가 '인공와우 시술'을 받은 상태다. 큰 애(배석진) 같은 경우에는 당시 제가 노산(老産)이기는 했지만 행동 발달이 모두 빨랐다. 옹알이도 많이 잘했는데 돌도 되기 전인 생후 9개월에 걸을 정도로 모든 게 다 빨랐던 반면, 언어는 늘지 않더라. 내 주변에 어린 아이들이 난청이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청각장애일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신생아 청각장애 검사가 없는 때였다. 혹시나 해서 어느날 아이와 같이 문화센터로 '음악 치료'를 갔는데 눈에 보이는 도구를 활용하지 않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면 아이가 음악에는 전혀 반응이 없고 딴 짓을 하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후 병원으로 진료를 갔는데 병원에서는 '아이가 진지하고 집중력이 좋아서 그렇다'고 말을 하더라. 대구의 큰 병원의 제휴 병원이었는데 거기에서 그렇게 말하니 어이가 없더라. 

생후 16개월이 된 상태에서도 아이가 구사하는 단어가 전혀 늘지 않아서 이상한 마음이 들어 대구의 큰 병원에 갔더니 아이가 전혀 못 듣는 청각장애라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저희는 이걸 인정하기가 어려워서 서울 청담동에 있는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도 해보고 서울대병원에서도 해보고 그랬다. 결국, 청각이 굉장히 안 좋은 걸로 나와서 와우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보청기로는 전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인공와우 시술을 한 상황이고 둘째 아이 같은 경우는 첫째 아이의 경험을 통해 최대한 빨리 수술을 시켰다. 둘째 때는 신생아 청각장애 시범검사가 처음으로 시작된 해였다. 첫째 아이가 맨 처음에 병원에 가서 인공와우 시술을 받게된 게 2005년 정도였고, 작은 아이는 2007년에 간 것으로 기억한다."

정재은 씨가 두 아들인 배석진(당시 초3) 학생과 배석민(당시 초1) 학생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 씨가 두 아들인 배석진(당시 초3) 학생과 배석민(당시 초1) 학생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아이들이 '청각장애 판정'을 받게됐을 때의 심경은.

"신생아 청각장애 검사를 받으러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계속 병원을 다녔을 때 아이 아빠에게도 이런 상황을 얘기도 못했다. 왜냐하면, 산부인과에서는 '애가 문제가 없다'고 두 번째 판정을 받고 나와서 퇴원까지 한 상황인데 가족이나 남편에게 말할 수가 없더라. 

게다가 '둘째 아이는 이상이 없다'고 주위에 다 얘기를 해놨는데 우선 저 스스로도 인정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큰 아이가 장애라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둘째 아이 마저 장애라고 하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병원 건물이 떠나가게 목을 놓아서 울었다.

한때 남편이라도 좀 마음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애 둘을 데리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심각했다. 산후조리원하고 같이 있는 병원이었는데 '아이가 괜찮다'는 얘기를 들어서 안도하고 나왔는데 퇴원할 때 혹시 몰라서 다시 한 번 해봤는데 아이가 청각장애로 나왔다고 하더라. 그때는 지옥과 천당을 한 달 사이에 왔다갔다하는 기분이었다. 

둘째 아이가 생후 10개월이 될 때까지 가족 아무에게도 아이가 청각장애라는 말을 못했다. 그냥 혼자서 전전긍긍하다가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생후 3개월 때 가서 검사 한번 해보고 생후 5개월 때도 또 검사해보고 그러다가는 내가 너무 죽을 것 같은데 죽을 용기는 없어서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남편에게 얘기를 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청각장애 해소를 위한 재활에 돌입한 것이다."

정재은 씨가 청각장애인용 마스크를 기증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왼쪽) 씨가 큰 아들인 배석진 군과 함께 '청각 장애학생 지도교사용' 투명 마스크를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대구영화학교에 기증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인공와우를 장착하뒤 아이들 상태가 어떻게 좋아졌나.

"저희 아이들은 한쪽 귀에만 인공와우를 장착했다. 아이들이 재활을 열심히 해서 조용한 상황에서는 잘 듣는데 소음이 섞인 환경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잘 못 듣는 편이다. 아이들이 한쪽 귀에만 인공와우를 장착한 이유는 당시에는 양이(양쪽 귀) 장착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어서 한쪽만 했던 것이다.  

이후, 저희 큰 아이 같은 경우는 대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아이 스스로가 자신이 한쪽 귀만 들리니까 좀 불리한 것 같다고 해서 다른 쪽 귀에도 인공와우를 장착하게 된 것이다. 큰 아이는 이제 다른 쪽 귀에도 시술한지 6개월 정도 지났는데 아직은 계속 재활을 해야 되는 상황이다. 

아이들이 아기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제가 결정을 해서 수술을 시켰지만 다른 쪽 귀에 대해선 아이들이 큰 후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고 싶어서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들이 인공와우 시술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성장할때까지 기다렸는데 큰 애 같은 경우에는 아이 스스로가 대학교에 가서 이제 사회생활을 하려다 보니 한쪽 귀만 들리면 불편하다고 수술을 원해서 대학 입학 전 1월에 수술을 한 상태다. 

작은 아이는 지금 고2인데 자기는 아직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해서 나중에 스스로 인공와우 수술을 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가 봤던 인공와우 수술을 한 아이들은 대부분 결과가 좋았다."

-인공와우 제품의 성능이나 가격면에서 불만스런 요소는 없나.

"저희 아이들이 제가 또박또박 얘기하지 않으면 내 말을 놓치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인공와우가 많이 개량돼서 이제는 굉장히 소리 구분도 잘 된다고 하더라. 그래도 일반인들처럼 100% 듣지는 못한다. 

그리고 제품이 아무래도 다 수입산이다 보니 비싸기는 하다. 그래도 저희 큰 아이가 수술하던 2005년도에 인공와우 수술에 보험 적용이 처음으로 시행됐다. 그래서 원래는 수술비가 3000만원 들어갈 것이었는데 1000만원 미만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한쪽 귀밖에 보험 적용이 안 됐다. 당시엔 아무리 부자더라도 양쪽 귀를 모두 건강보험으로 처리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양쪽 귀 인공와우 수술에 모두 보험 처리가 되도록 바뀐지는 몇 년밖에 안 지났다."

정재은 씨의 큰 아들 배석진 군이 인공와우를 장착한 채 창작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정재은 씨의 큰 아들 배석진 군이 인공와우를 장착한 채 발달장애인 미술치료 봉사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제공=정재은 씨)

-외국산 A사 제품을 쓴다는데 A/S는 잘 되고 있나. 

"우리 큰 아이가 세살인가 네살 때 동네 사람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갔다가 갔는데 제가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우리 아이가 동네 형들과 함께 물에 같이 따라 들어갔다가 인공와우 장착한 게 모두 침수된 적이 있었다. 아이가 말도 잘 못할 때인데 엎어져서 버둥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땡볕에서 아이를 끌어안고 정말 많이 울었다. 

다행히도 A사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에도 A/S 시스템이 상당히 잘 돼 있었다. 그때 제가 A/S를 위해 A사로 전화했더니 대구에서 제품을 관리해 주시는 분이 있었는데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서울에서 받아가지고 저희 집까지 가져다 주더라. 그래서 지금도 A사에는 너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인공와우 시술과 관련해 법적·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학령기 이후에 만약에 중도에 청각장애가 오게 돼서 수술하는 사람에게는 한 번밖에 수술비에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보청기 같은 기계 제품을 예로 들면 아무리 내구 연한을 길게 잡더라도 5년밖에 안 되는데 그것을 평생을 쓰라는 것인데 이건 불합리한 것이다.

지금 현행법에서는 19세 미만인 자에 한해서 양쪽 귀 모두에 보험처리가 양쪽 귀를 수술할 수 있고, 보험처리가 가능한 인공와우 시술은 단 한 번씩의 교체 뿐이다. 그 이상 교체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그때는 보험처리가 안 되므로 인공와우 시술 가격이 무지 비싸진다는 점이다.

그나마도 19세가 넘으면 그것도 적용되지 않는다. 뿐만아니라, 한번 수술하고 착용하고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관리를 받아야 되고 병원들도 수시로 가야 되는데 그런 것들을 쉽게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없다. 그렇다보니 해당 환자들이 병원에 갈때마다 의미 없는 특진비를 내야 된다.

나이 들어서 사고가 생겨서 청각장애인이 되면 수술해야 하는데, 멀쩡하게 잘 듣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못 듣는다는 것은 굉장한 공포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평생 한 번만 수술비에 보험 적용이 된다면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같은 경우에는 5년 주기로 수술과 기기교체를 해준다. 그리고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이를 5년 마다 지원해주고 네델란드, 캐나다, 벨기에 등은 3년마다 지원해 준다.

게다가 인공와우 수술을 한다는 것은 이미 '이 사람은 중증 청각장애인이다'라는 것을 인정 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19세가 돼서 기초 검사를 다시 해서 제출해야만 장애인 연금 신청이 가능하게 돼 있다. 그래서 내가 보건복지부에 전화해서 '아이가 이미 뼈를 깎아서 인공와우 시술을 한 것인데 왜 또 다시 초기 검사를 다시 해서 제출하라고 하는거냐. 당신들이 생각할 때는 병원 가서 검사 한번 하는 것일지 몰라도 우리는 당신들의 그런 조치에 피눈물이 난다'고 항의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