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1.18 06:00
현금성 자산 125조 "총탄은 충분"…암에서 다른 기업으로 M&A 시선 넓히나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최근 회장 자리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수도 없이 많지만, '빅딜' 성사는 가장 근시일 내에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1월 4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이례적으로 "3년 내 의미있는 인수합병(M&A)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뒤 지금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은 이제 1년 남짓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그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탓에 삼성전자의 대형 M&A가 위축돼 왔다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최근 광복절 특사로 복권되기 전까지 잠행을 이어왔고, 자연히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추진해야 할 M&A 역시 탄력을 받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다방면으로 M&A를 검토해 왔으나, 최종 결정권자인 이 회장의 부재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삼성전자의 빅딜은 지난 2016년 하만 인수에서 멈춰있다.
복권된 이 회장이 장기간 미뤄왔던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형 M&A 등 대규모 투자를 흔들림 없이 집행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라는 것이 재계의 견해다. '의미있는 M&A'가 드디어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빅딜' 유력 후보 ARM, 암초 만났다…"비싼 몸값·반독점 규제"
현재 삼성전자가 쌓아놓은 현금성 자산만 125조원에 달한다. 실탄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문제는 어떤 회사를 인수하느냐다. 최근 삼성을 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안팎에서 잇따라 나온다. '삼성 위기론'은 늘 있었지만, 경쟁사·외신·내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경고음은 자못 심상치 않다. 어떤 회사를 인수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위기론'으로 끝날지, '진짜 위기'가 될지 결정된다. 이 회장 역시 취임 소회에서 "최근 글로벌 시장과 국내외 사업장들을 두루 살펴봤다. 절박하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고 경영 환경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가장 유력한 M&A 후보로는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 '암(ARM)'이 거론돼 왔으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암은 삼성전자의 부족한 팹리스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매물로 평가되나 몸값이 지나치게 높고 반독점 규제로 인수 자체가 어려운 점 등이 겹쳐 매력을 잃고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삼성전자처럼 암 인수를 추진해 왔던 경쟁사 SK하이닉스는 "암 공동 인수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공시를 지난 2일 새롭게 냈다. 지난 3월 말 "사업 경쟁력 강화 및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암 공동인수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힌 지 약 7개월 만이다.
삼성전자는 암 인수와 관련한 구체적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지난달 양측 수장인 이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직접 만난 자리에서 구체적 내용은 오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부터 바이오·통신 로봇까지"…다양한 시나리오 거론
암 인수가 암초를 만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최근에는 다른 유력한 인수 후보군이 거론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들과 외신 등은 전장사업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을 주요 후보군으로 꼽고 있다. 독일 인피니온, 네덜란드 NXP 등 차량용 반도체 시장 1, 2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해당 기업들이 M&A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전장 사업이 급성장이 예상되는 미래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세계 전장 시장 규모가 2024년 4000억달러(약 520조원), 2028년에는 7000억달러(약 91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6년 인수한 전장기업 하만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삼성전자는 약 10조원을 들여 하만을 인수했지만 예상보다 아쉬운 실적을 보이며 기대치를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도 지난 6월 유럽 출장 직후 자동차 산업 변화를 언급하며 전장 관련 사업 투자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당시 이 회장은 "헝가리 삼성SDI 배터리 공장을 방문한 뒤 고객사인 BMW를 만났고, 부품 사업을 위해 인수한 하만도 찾았다"며 "자동차 업계의 급변하는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반도체가 아닌 다른 사업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M&A가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경영 환경이 여느 때보다 불확실해지면서, 반도체에 버금가는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육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2의 반도체로 꼽히는 바이오 사업을 포함해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AI), 로봇, 메타버스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분야의 핵심 기업이 인수 대상으로 검토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