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5.25 17:09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세계 시장이 여러분의 시장이 되고 80억 인류가 여러분의 고객이 되도록 세일즈 외교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인들을 만나서 약속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3일 중소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중소기업인대회'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개최했다. 중소기업인대회는 2022년 윤 대통령 취임 이후 3년째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리는 유일한 행사다.
이날 행사에서 윤 대통령은 "저와 정부는 우리 중소기업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계속 구축해 나가겠다"며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넘지 못할 산도, 건너지 못할 바다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좋은 상품을 갖고도 수출길을 열지 못하거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 도움이 필요한 중소기업, 벤처기업, 그리고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오는 2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올해 첫 단독 회담을 갖는다.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라인야후 사태'가 이번 회담에서 의제로 오를지 주목받고 있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 23일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하면서 "의제를 미리 정하고 회담에 임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윤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꺼낼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라인은 일본에서만 약 9000만명, 동남아시아까지 합쳐 약 2억명이 이용하는 메신저 앱이다.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일본 규제당국으로부터 지분 매각 압박을 받고 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와 접촉하고 원활한 해결을 당부했다. 하지만, 라인야후 사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 외환 위기(IMF) 당시 한국 기업들이 외국 자본에 사냥을 당한 것을 떠올린다면 이번 라인야후사태는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1997년 12월 27일 뉴욕타임즈는 '한국 기업들이 외국 바이어가 먹기에 알맞게 익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부가 손을 놓은 한국 자본시장의 처절한 상황을 헤드라인으로 장식했다. 한라그룹의 한라제지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보워터에 매각된 것을 비롯해, 한화그룹의 정유부문이 네덜란드의 로열 더치쉘에 팔려나간 사례, 두산그룹이 코카콜라에 음료 생산공장을 내놓는 등 명줄을 붙이기 위한 한국 기업의 악전고투를 다뤘다.
정부가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알짜' 기업들이 팔려나가는 것을 지켜만 본 쓰디쓴 역사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정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지분 매각과 관련해서 당사자인 네이버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정부는 국가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해외에서 크게 성공한 기업이 해외 정부로부터 지분매각 압박을 받는 억울한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파운드리 후발주자인 인텔에 천문학적 보조금을 책정하고 경쟁자들을 직접 견제하는 실정이다. 라인사태가 단순한 갈등이 아닌, 첨단기술패권의 문제와 맞닿아있음을 명심해야겠다.
윤 대통령이 우리 중소·벤처·스타트업이 80억 인류의 선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업들의 '든든한 뒷배'가 돼 줄 것이라고 믿는다. 외교가 강점인 윤 대통령이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라인야후 사태 '믿을맨'(야구에서 미들맨·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사람)이 돼 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