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6.07 17:56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취임 100일을 맞는다.
정 회장은 100일 동안 인적 쇄신과 재무 리스크의 선제적 해소 등 직면한 위기에 맞서 공격적인 해법을 들고나와 일부 성과를 냈다. 최근에는 CJ그룹과 물류‧상품‧콘텐츠를 아우른 전방위 협력을 꾀해 ‘유통왕국’ 신세계의 위상 회복을 위해 어떠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했다.
◆반등한 이마트 실적, 수익성 개선 ‘총력전’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8일 회장으로 승진한 정 회장이 오는 15일 회장 취임 100일을 맞는다. 지난 2006년 부회장이 된 지 18년 만이며, 신세계그룹의 2세 경영 시작이라는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만, 정 회장은 승진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취임 이후 산적한 과제에 직면했다. 그룹 핵심인 이마트는 지난해 사상 첫 적자라는 충격적 성적표를 받아들였고, 신세계건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파에 부도설까지 불거졌다. 국내 이커머스 왕좌를 목표로 대단위 투자에 나섰던 SSG닷컴은 최근 재무적투자자(FI)와의 1조원 규모 풋옵션 분쟁이 수면 위에 올랐다.
우선 정 회장은 인적 쇄신이란 해법을 가장 먼저 꺼내들었다. 창사 31년 만에 이마트의 첫 희망퇴직을 단행했으며, 신세계건설 대표이사를 경질해 실적에 따라 공로와 과실을 언제든지 묻겠다는 ‘신상필벌’ 인사를 구체화했다.
특히 그룹 핵심인 이마트는 이마트에브리데이와 이마트24 등의 오프라인 3사 상품·물류를 통합하면서 비용 절감과 가격 경쟁력 강화에 분주하다. 이커머스 득세에 오프라인 시장이 한풀 꺾인 상황이지만, 이마트의 본질 경쟁력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이마트는 이달부터 전국 68개 이마트 점포의 영업종료 시간을 기존 오후 10시에서 11시로 1시간 연장해 심야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일부 점포는 오전 시간대에 ‘셀프 계산대’를 운영해 인건비 절감을 꾀하는 중이다. 지난달에는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첫 무급 휴직제도를 도입, 수익성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이마트 실적이 크게 나아진 점은 정 회장의 총력전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이마트는 1분기 연결기준 매출 7조2067억원, 영업이익 47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45%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294억원으로 같은 기간 27억원 대비 11배 높아졌다. 시장에서는 이마트의 상품력과 가격 경쟁력이 일부 빛을 발했고, 이커머스 계열사들의 적자 축소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신세계건설, 유동성 위기 ‘급한 불’ 끄다
한때 부도설까지 나돌며 그룹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한 신세계건설은 최근 6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급한 불을 껐다. 레저사업부문은 계열사인 조선호텔앤리조트에 넘기는 등, 그룹 차원의 대대적 지원사격으로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 신세계건설의 올해 1분기 말 부채비율은 807% 수준에서 200%대까지 낮아진 상황이다.
지난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과 관련해 “길어도 1년 내, 바람으로는 하반기 들어 정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까지 이뤄지면서 하반기 부동산 투자심리가 살아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건설에 대한 그룹 차원의 대대적 지원은 건설 사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를 반영한다”며 “미래형 매장으로 전환 중인 이마트의 오프라인 채널 강화와도 연계돼 이마트의 반등 여부에 따라 건설 사업도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회장은 SSG닷컴의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잡음도 일부 해소했다. FI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에게 1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풋옵션 계약을 맺었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천문학적 비용을 물어야 했다. 지난 4일 양측은 극적 합의를 끌어냈고, 신세계그룹은 연말까지 해당 지분(30%)의 제3자 매도에 나설 예정이다.
신세계그룹과 CJ그룹이 대단위 사업 제휴를 맺은 것도 주목할 사항이다. 정 회장의 외사촌형 이재현 회장이 이끄는 CJ그룹과 동맹을 맺고 SSG닷컴과 G마켓의 물류를 CJ대한통운에 맡기기로 했다. 국내 이커머스 1위 사업자인 쿠팡과 동일하게 익일 배송 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류 경쟁력이 한층 높아지면 향후 이커머스 수익성 개선의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 본질 경쟁력 발휘해야”
정 회장 개인적으로도 반등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일명 ‘용진이형’이라는 애칭을 들을 정도로 손꼽히는 재계 인플루언서였지만, 회장 취임 뒤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즐겨 하던 골프도 끊고 현장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10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냈지만, 아직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있다는 관측이다. 향후 이마트 주가 부양과 함께 SSG닷컴의 흑자전환 내지 주식시장 입성,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지속성장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신세계그룹은 미래 신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천문학적 투자를 단행했지만, 신통치 않은 결과에 재무 부담이 빠르게 쌓였다”며 “정 회장이 신세계의 본질 경쟁력을 발휘하는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부진사업 재편에 속도를 낸다면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