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6.20 15:48
한반도 유사시 러 개입 길 열어…1961년 '조·소 동맹조약' 제1조와 거의 동일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북한과 러시아가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상대에게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해당 내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평양에서 서명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제4조에 반영됐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을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 관계 및 동아시아 정세에 큰 파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총 23조로 이뤄진 조약 전문을 보도했다.
제4조에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해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조항은 1961년 북한과 소련이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조·소 동맹조약)' 제1조와 거의 동일하다. 조·소 동맹조약 제1조에는 "체약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됐었다.
조·소 동맹조약은 소련이 1990년 한국과 수교를 맺고 1991년 해체된 뒤 1996년 이 조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 폐기됐다. 북러는 2000년 '우호·선린·협조 조약'을 다시 체결했는데,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빠지면서 '유사 시 즉각 접촉한다'는 내용으로 대체됐다.
북러가 이번에 새로 체결한 조약의 제4조에 등장하는 '유엔 헌장 51조'는 유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조항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를 근거로 이 조항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북러는 3조를 통해 "한 나라에 무력 침략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이 조성되면, 위협 제거를 위한 협조 조치를 합의할 목적으로 협상 통로를 지체없이 가동"하기로 했다.
6조에는 "다극화된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 7조에는 "유엔과 그 전문 기관들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테두리 내에서 쌍방의 공동 이익과 안전에 대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도전으로 될 수 있는 세계와 지역의 발전 문제들에서 호상 협의하고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8조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 지역적 및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위 능력을 강화할 목적 밑에 공동 조치를 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추후 별도의 군사합의 재도출을 시사해 주목되는 부문이다.
16조는 "쌍방은 치외법권적인 성격을 띠는 조치를 비롯해 일방적인 강제 조치의 적용을 반대하며 그러한 조치의 실행을 불법적이고 유엔헌장과 국제법적 규범에 저촉되는 행위로 간주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쌍방은 국제관계에서 이러한 조치의 적용 실천을 배제하기 위한 다무적 발기를 지지하기 위해 노력을 조율하며 호상 협력한다"고 했다.
조약의 효력은 무기한이며, 효력 중지를 원할 경우 상대 측에 서면 통지하면 1년 뒤 효력이 중지된다.

한편 북한과 러시아가 이번에 맺은 조약에는 과거 조약에 공통으로 등장했던 한반도 통일과 관련된 조항이 담기지 않았다. 이는 남한을 더는 통일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겠다며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북한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러시아 역시 이를 용인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새 조약 체결로 양국 경제협력은 대폭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즉각 유감의 뜻을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고 안보리 결의를 정면 위반하는 군사기술 협력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러·북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등 금번 방북 결과 전반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평가에 따라 동맹과 우방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함께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해 엄중하고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북 간의 조약의 구체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정부 차원에서 검토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그 이후에 (공식적인) 정부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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