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8.04 15:00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에서 불거진 이슈를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지난 7월부터 불거진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검찰은 지난 1일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 자택과 산하 계열사들의 압수수색했으며, 미정산 금액이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특정 업체의 탈선이 아닌, 국내 이커머스 산업의 어두운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시각인데요. 특히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국민적 공분을 산 폰지사기인 ‘머지포인트’ 사태를 겪었음에도 비슷한 사건이 재현됐다는 비난입니다.
◆칭송받던 1세대 이커머스 창업자
우선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구 대표의 행적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큐텐그룹의 수장인 구 대표는 한때 업계를 평정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추앙받았습니다. 지난 1999년 IT 광풍인 ‘닷컴 버블’이 한창일 때 서울대 선배인 이기형 인터파크 회장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이커머스 업계와 연을 맺습니다.
구 대표는 인터파크에 입사해서 사내 벤처인 ‘구스닥’을 창업하는데요. 창업 이후 구스닥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해 독립 경영에 나섰고, 2003년에는 사명을 G마켓으로 변경합니다.
G마켓은 초기만 해도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판매자들에게 과감한 인센티브 제공과 최저가격 제시가 효과를 보면서 반전을 이뤄냅니다. 적자를 각오한 외줄타기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죠.
특히 구 대표는 2006년 미국 나스닥 상장이란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합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 기업의 나스닥 상장은 언감생심이었기에, 구 대표를 향한 시선은 가히 ‘이커머스 혁신가’ 그 이상의 수준이었습니다. G마켓은 나스닥 상장 이후 2007년 옥션을 제치고 업계 1위까지 등극합니다.
그렇지만 구 대표는 승승장구하던 G마켓을 미국 이베이에 넘기는 ‘기행’을 저지릅니다. 2009년 이베이에 주식 공개매수까지 포함, 최대 12억1000만달러(당시 환율 약 1조6000억원)에 매각한 것이죠. 구 대표가 매각으로 손에 쥔 금액은 700억원 상당으로 알려졌는데요. 얽히고설킨 지분 관계로 인해 돌아간 몫이 작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목할 점은 G마켓의 성공적 매각에 자극되면서 국내 이커머스 업계가 우후죽순 생겨나게 됩니다. 2010년 쿠팡이 등장했으며, 위메프와 티몬도 비슷한 시기에 설립되며 신생 이커머스 업체들의 경쟁과 함께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G마켓을 매각한 구 대표도 이러한 시장 분위기가 못내 아쉬웠을까요. 2010년 싱가포르에서 이커머스 업체 큐텐을 창업하며 두 번째 도전에 나섭니다. G마켓을 매각할 때 국내에서 10년간 동종업종 겸업 금지라는 조건에 싱가포르에서 창업한 것이죠.
다만, 구 대표의 큐텐은 동남아시아 시장의 태생적 한계에 부닥치며 10년 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어찌어찌 회사 운영은 이뤄졌지만 과거 G마켓의 존재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게 구 대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갔지만, 겸업 금지가 풀린 2022년에 깜짝 등장합니다. 티몬을 시작으로 인터파크 쇼핑부문과 위메프까지 3개 업체를 순식간에 접수하며 왕년의 명성을 회복할 것처럼 보였죠.

◆돈 없는 M&A…나스닥 상장 ‘올인’
현시점에서 뒤돌아보면 티몬‧인터파크쇼핑‧위메프의 현금 없는 M&A(인수‧합병)이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큐텐 자회사 지분을 상대 회사와 교환하는 방식의 M&A는 이해관계가 맞물리지 않으면 쉽게 이뤄질 수 없는데요.
구 대표는 티몬과 인터파크쇼핑, 위메프 모두가 재무적 어려움이 심각한 점을 파고듭니다. 티몬의 경우 2021년부터 완전자본잠식에 들어갔고 지난해는 감사보고서도 미제출했습니다. 위메프 역시 지난해 영업손실이 1000억원을 넘어선 완전자본잠식 상태며, 인터파크쇼핑은 같은 기간 영업손실이 157억원으로 집계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빚을 떠안겠으니 나한테 넘겨라’는 유인책이 통한 것이죠.
올해 상반기 업계 이슈였던 11번가 매각에 큐텐그룹이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도 이와 연계됩니다. 큐텐그룹은 11번가 최대주주인 SK스퀘어에 지분교환 방식의 인수를 제안했고, 당장 현금이 필요했던 SK스퀘어는 이를 단칼에 거절합니다. 만약 SK스퀘어가 큐텐그룹에 11번가를 넘겼으면 어땠을지 식은땀이 나는 장면입니다.
구 대표의 욕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경영 어려움을 겪고 있는 AK몰을 5억원 헐값에 사들였으며, 북미와 유럽 기반의 이커머스 업체인 위시까지 품게 됩니다.
그러나 위시 인수는 요행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현금 없는 ‘봉이 김선달’ 방식의 M&A가 위시에게 먹히지 않으면서 약 2300억원의 현금이 필요해집니다. 위시 인수를 위해 결국 판매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금까지 대규모로 사용해 지금의 사태로 확전됐습니다. 갈수록 불어나는 적자를 정산주기를 활용한 ‘돌려막기’로 버텨냈지만, 한계를 넘어선 연이은 무리수가 둑을 터뜨려 버린 겁니다.

지난달 30일 구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하면서 거듭된 M&A의 이유로 나스닥 상장을 지목했습니다. 과거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시킨 것처럼, 큐텐그룹 자회사인 큐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통해 모든 채무와 누적 적자를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확신에 찬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었다”며 “이번 사태로 그 부분이 불가피하게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보유한 큐텐 지분(38%)을 매각해 변제에 사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큐익스프레스의 지분(29.3%)은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나스닥 상장에 미련을 남겼습니다.
또한 구 대표는 “나스닥 상장만 되면”이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불필요한 답변은 하지 말라며 말을 끊었음에도,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과 같이 나스닥 상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벌어진 ‘SM엔터테인먼트 주가 시세조종’ 의혹도 비슷한 맥락의 사건입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나스닥 상장을 위한 무리한 몸집 불리기가 카카오 창업주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의 구속으로 이어집니다. 2019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종속기업은 6개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47개까지 늘어났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는 나스닥 상장 준비의 마지막 관문으로, 마침표를 찍으려던 찰나에 공들인 ‘모래성’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죠.
결론적으로 큐텐그룹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모두 몸집을 불려 나스닥에 상장하겠다는 ‘달콤한 상상’이 참혹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개인주주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적 피해까지 불러온 상황이기에 법적인 허술함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전방위 후폭풍 불가피…“법적장치 없으면 재발”
이번 사태는 이커머스부터 연관 산업까지 다방면의 규제 강화가 수반될 전망입니다. 우선 정부의 관련 규제 강화는 중견‧중소 이커머스 업체들을 생사기로에 서게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전자상거래법, 전자금융거래법, 여신전문금융업법 등을 개정하면서 판매자에게 돌려줄 돈을 불법 활용하지 못하게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를 도입한다고 밝혔는데요. 더욱이 이번 사태가 판매자에 대한 이커머스의 우월적 ‘갑질’이 근본적 문제라는 곱지 않은 시선입니다. 차후 보이지 않는 규제가 겹겹이 둘러칠 수 있어 자금력이 약한 이커머스들에게는 시한부 선고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재무 사정이 좋지 않은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판매자들과 소비자 이탈 행렬까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23~29일까지 11번가 일평균 이용자는 99만명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7월 첫째 주의 121만명 대비 약 20%나 줄어든 수치입니다.
11번가는 지난해부터 매각 작업이 한창이라 대규모 방문자 이탈이 치명적입니다. 일명 ‘계획된 적자’로 포장한 컬리도 불안한 재무구조가 수면 위에 오를 처지입니다. 패션 분야 이커머스인 에이블리 역시 수천억원의 결손금에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형적으로 거래액만 클 뿐, 안으로는 누적된 적자가 심장까지 파고든 이커머스들에게 ‘죽거나 살거나’를 택하라며 조만간 수술칼을 건네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치권에선 내친김에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다만, 해당법은 시장의 독과점 플랫폼 기업들의 폐해를 방지하겠다는 법이라 이번 사건과는 성격이 다른데요. 정치권의 확장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정치적 논리가 작동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습니다.

유통재벌들도 고민이 큽니다. 롯데그룹의 롯데온과 신세계그룹의 G마켓, SSG닷컴은 그룹의 자금 동원력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지만, 누적적자가 갈수록 커지면서 이번 사태의 이해득실에 따라 방향성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신규 방문객이 증가하고 판매자들이 대거 몰려드는 반사이익이 뚜렷하면 투자 확대에 나설 수 있겠지만, 별다른 효과 없이 적자가 심화되면 사업의 고강도 구조조정 내지 헐값 매각이 급류를 탈 수 있습니다.
금융권도 초비상입니다.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들이 티몬·위메프에 대한 지급보증보험조차 미가입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규모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PG업체들은 주요 이커머스 거래액이 수조원대에 이르는 점, 간편결제사인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 등이 합세한 출혈경쟁 구도라는 점이 이커머스 업체들에게 지급보증보험 가입을 의무로 내세울 수 없었다고 항변합니다. 정부가 관련법의 미비점을 뜯어고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PG사와 이커머스의 거래 조견을 엄격히 제시하는 매뉴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해피머니’ 등의 상품권까지 연루된 것으로 파악돼 상품권 업체들의 줄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티몬은 모바일 쿠폰과 상품권에 5~10% 수준의 높은 할인율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보통 상품권 할인율은 많아야 3% 수준이지만, 상품권 업체들마다 티몬의 파격적인 인센티브에 혹하면서 이러한 할인율을 적용한 것이 아니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경찰은 해피머니 상품권이 휴짓조각이 되자 발행사인 해피머니아이앤씨의 류승선 대표의 공모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의 그릇된 욕망과 법적인 허술함이 결합하면서 천문학적 피해로 이어졌다”며 “정치권은 기업에 책임을 묻기 전에 법적 보호망을 만들지 못한 직무유기를 돌아봐야 하며, 3년 전 머지포인트 사태를 겪고도 같은 사건을 반복한 금융당국의 허술함도 문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사후약방문이지만, 근본적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동일한 사건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한편으론 그동안 제한장치 없이 급성장을 거듭한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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