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가 남은 선거운동을 중단한 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합동유세를 진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케네디의 지지가 이번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장담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케네디와 사실상 단일화에 성공했는데,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막판 대결에서 '박빙 열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로이터·AFP 통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TY)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서 유세 연단에 오른 케네디에 대해 "그의 출마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 나라에서 오랫동안 무시된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케네디의 지지 선언에 대해 "바비(케네디 애칭)와 나는 부패한 정치 체제를 물리치기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케네디는 이에 앞서 글렌데일 유세 현장에 도착하기 불과 몇 시간 전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더 이상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며 남은 선거 운동을 중단하겠다고 알렸다.

케네디는 또한 해리스 부통령이 공식 경선 없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점을 비판하며 한때는 자신이 몸담았던 당에 불만이 많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게 됐다고 밝혔다. 

케네디는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만났으며 상당수 현안에 이견이 있었지만, 국경 안보와 표현의 자유, 전쟁 종식 등 주요 현안에선 견해가 같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선거운동을 중단하는 것이지 후보 등록을 전면 철회하는 것은 아니라 10개 경합  투표용지에서만 자신의 이름을 삭제하고, 나머지 주에선 이름을 남겨둘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가 후보 등록을 마친 주는 50개 주 중 절반에 불과하다.

케네디는 1963년 재임 도중 총격으로 피살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의 삼남으로 '정치 명문가'란 타이틀을 등에 업고 올해 상반기 열린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려 했지만, 지난해 11월 그 계획을 접고 대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로이터·입소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0%의 지지율을 확보하며 미국 대선 역사상 드물게 '3자 구도'를 만드는 기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백신·코로나19 음모론을 적극 주장해 온 데다 갖은 기행으로 구설에 오르며 지지율은 이달 들어 5%까지 추락했다. 특히 지난달 현지 연예매체 '베니티 페어'를 통해 30여 년 전 베이비시터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케네디는 "내 옷장에는 해골이 너무 많다"며 기괴한 해명을 내놓았다. 또 지난 5일에는 케네디가 직접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뉴욕 센트럴파크 한복판에 10년 전 나타난 곰 사체는 자신이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유세 도중 총기에 피격되고,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같은 달 21일 대선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케네디를 향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이를 두고 전·현직 대통령의 '리턴 매치'와 민주·공화 양당 후보자 모두 '고령'이란 점에 피로감을 느꼈던 유권자들이 케네디란 새로운 얼굴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과 민주당 후보 교체를 계기로 해리스-트럼프 양강 구도가 굳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케네디 표'가 5%대로 확인되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해리스 박빙 우위' 상황이 계속되면서 케네디 지지자들이 특정 후보에 몰표를 행사할 경우 본선 결과를 가를 '캐스팅 보트'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돼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케네디 지지자들을 향해 선물 보따리를 내놨다. 그는 이날 글렌데일 유세에서 당선 시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대통령 위원회를 설립해 관련 기밀 문건을 모두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또 비만을 비롯한 미국인 만성질환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 패널을 케네디와 함께 만들고, 케네디의 패널 활동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케네디는 이에 대해 "우리 음식에서 화학물질을 없애고 싶다"면서 "이번 합의는 한 번 믿어보겠다"고 화답했다. 

케네디의 트럼프 지지 선언에 민주당은 날 선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메리 베스 카힐 수석 고문 명의 성명을 내고 "트럼프는 지지층 확보에 도움이 되는 지지를 얻은 게 아니라 실패한 '변두리 후보'의 짐을 물려받았다"고 비하했다.

케네디 5남매는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오늘 트럼프를 지지하기로 한 동생 바비의 결정은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대한 배신"이라고 규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