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진형 기자
  • 입력 2024.09.27 10:12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소장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소장.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소장.

정부 여당에 묻는다. 다른 나라들은 다 하는 가상자산 과세, 왜 우리나라만 못하는 건지.

금융경제연구소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사람과 투자하지 않는 사람 각각 500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상자산 과세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가상자산 과세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가상자산 투자자 중에서도 '필요하다'가 '필요없다'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데 정치권 논의는 국민 대다수의 의견과는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과세 인프라 미비가 이용자보호법 탓? 

지난 7월 14일 국민의힘이 내년 1월 1일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를 2028년 1월로 3년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기재부는 '2024년 세 개정안'에서 가상자산 과세 2년 더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정부가 밝힌 유예 이유를 보자.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과세 인프라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군색했는지 이번엔 그럴 만한 “딱한 사정”이 있었다며 더 군색한 해명을 덧붙였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사업자가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과세 시스템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과세 인프라 준비가 안 된 이유를 이용자보호법에 덮어씌우고 있다. 

2020년 기재부가 가상자산 과세 방안을 공식 발표한 지 4년이 지났다. 아직도 과세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은 과세에 반대하는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태업을 벌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를 우습게 본 것인지 아니면 기재부도 내심 과세를 반대해 동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런 상황을 기재부가 그냥 손 놓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가상자산 및 금융소득 과세 인식 조사. (자료=금융경제연구소)
가상자산 및 금융소득 과세 인식 조사. (자료=금융경제연구소)

점점 늘어나는 과세 유예 이유들 

과세 인프라 미비 핑계는 단골 메뉴일 뿐이고 과세를 못하는 새로운 이유가 추가된다. 가상자산 과세와 아무런 관련 없는 금투세와 과세 형평성 문제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과세 이전에 가상자산 법제화가 필요하고, 과세 도입 시기를 법제화에 연동해야 한다는 신박한 논리도 등장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시장 질서가 이전보다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 이용자보호법만으로는 부족하고 후속 입법까지 필요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굳이 후속 입법을 거론할 걸 보면 그게 다음 네번째 과세 유예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유같이 않은 이유들의 억지 논리   

만약 정부 여당이 원하는 것처럼 금투세 도입이 백지화되면 가상자산 과세도 덩달아 백지화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도박과 같은 불법 소득도 과세하는데 가상자산 법제화와 과세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시장 질서가 안정화될 때까지 과세를 미뤄야 하는 이유가 뭔지, 가상자산 시장 안정화 기준이 뭔지, 가상자산 시장이 안정화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과세를 안 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뿐만 아니다.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경우 현재 자진신고 이외에 거래 정보를 추적할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세상 어디나 똑같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가상자산 과세를 못 한다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만 유독 가상자산 거래정보 자동교환 시스템를 갖춘 이후로 과세를 미뤄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유예를 말하지만, 실제 속내는 과세 생각 없는 듯 

가상자산은 국경 없는 자산이고, 그런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시장도 국경이 없다. 가상자산 시장 환경은 세계 어디나 똑같지만, 가상자산 법제화에 대한 태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정권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가상자산을 법정화폐로 채택하는 나라에서부터 원천 금지하는 나라까지 천차만별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그와는 별개의 일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것일 뿐, 법제화와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나라만 유달리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를 한배에 태우고 가상자산 법제화를 과세의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다. 온갖 가지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내세워 과세를 미루고, 과세를 못하는 이유같지 이유도 같이 늘어만 간다. 겉으로 유예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과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치가 내다 버린 조세정의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정의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들에 파묻혀 자취를 감추었다. 가상자산 과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고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 몰고 가는 정치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 배후에는 불소소득에 대한 과세에 극도로 몸을 사리는 정치가 있다. 적어도 이 지점에서는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 거대 양당 모두가 한마음이다.

모두가 '실종된 정치의 복원'을 주문하는 지금,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가 아니라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정치의 본분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