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9.25 13:00
강은식 대한아동병원협회 의무부회장 겸 행동발달위원장(대전 봉키병원장)

요즘 '환아 응급실 뺑뺑이' 보도가 연일 언론에 나오고 있다. 이것만 봐도 그야말로 의료재난 상황이다.
필자는 30년 가까이 소아 진료를 가장 근접한 현장에서 몸소 느껴왔지만 이런 위기감이 이미 수년째 지속되고, 고조되고 있었던 터라 하루하루 절망스럽다.
더 안타까운 것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이 수년 전부터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칭 '의료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소아 응급환자 뺑뺑이가 가속화하고 소아 의료 체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느 119구급대원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소아 응급환자가 발생 시 상급 배후 기관 이송 시까지 4시간이 평균 소요됩니다. 혹시 봉키병원에서 소아 응급환자 발생 시 전원해도 되나요."
이 한마디에 의사로서 가슴이 멍해졌다. 하물며 환자를 옆에서 바라보는 보호자의 마음은 오죽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가끔은 '내 능력을 넘어서는 중증의 환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응급 중증 환자 발생 시 상급병원의 전원이 가능케 되기를' 하늘에 기도하며 진료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충청남도 유일의 소아응급센터에 마지막 남은 전공의 1명마저 올해 6월 병원을 떠났다는 소식이 귓가에 들려오며, 안타까움은 짙어지기만 했다.
이처럼 전공의들이 소아 의료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2017년 발생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 탓이다.
잘잘못을 떠나, 이때부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감소율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소송 위험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하락은 매년 이어져 현재는 거의 ‘0%’에 가깝다.
때문에 의료진이 방어 진료가 아닌 소신 진료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시에 의료 소송과 관련한 정부의 안전장치를 비롯해 특별한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또 어린이는 성인보다 진료가 까다롭지만 진료비는 턱없이 낮다는 사실도 전공의들의 소아 의료 현장 이탈에 한몫했다.
저수가로 인한 필수 소아 의료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감지돼 왔다. 정부도 이를 인지한 듯 여러 정책으로 발표하고 그 고민이 엿보여도 붕괴한 소아 의료 상황을 반영하기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저수가로 인해 기존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탈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는 심평원이 발표하고 있는 각 전문 과목별 폐업과 개원 현황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설상가상 대학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교수들도 떠나고 종합병원 등에서 진료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도 소아청소년과를 포기하고 다른 진료를 선택하는 실정이다.
앞서 말했지만 초저출생 현상도 소아 의료 체계 붕괴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매년 출생률이 급감하고 있다. 지방은 물론 대도시도 상황이 비슷하다. 초저출생 시대에 살고 있는 소아청소년과는 이런 이유로 미래가 없다.
초저출생 문제를 극복해 아기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이에 따른 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아울러 의료체제 정비도 급선무가 돼야 한다.
초저출생이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한국 사회의 주역이 될 어린 생명을 지켜 양육해 가기 위해 육아 측면에서 보호자가 안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소아 의료 체계의 소멸로 대한민국 아이들의 건강할 권리는 사라지게 된다. 대한민국을 책임질 아이들이 없어지면 결국 국가는 소멸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어렵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소아 의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한 사람으로서 당부한다.
동시에 세 아이의 엄마로서 우리의 아들, 딸들을 대신해 아이 키우기 좋은 건강한 나라로 이끌어 가는 정책들이 하루속히 수립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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