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4.10.18 15:24

최동범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전 국민통합위원회 '포용금융 특위' 위원)

최동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최동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누구나 마음속으로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그리는 이상향은 완벽한 시장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적재적소에 자원이 배분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은 쓸데없는 문제를 일으킬 뿐이다. 

만약 금융시장이 이처럼 완벽하다면 세상의 돈들이 알아서 가장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당장은 갚을 돈이 없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쩐주'가 언제든지 기다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다림의 대가는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독보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조차도 사업이 자리를 잡기 전에는 자금 조달에 애를 먹으며 전전긍긍해야 했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은 누구나 일단 본인의 가능성을 과장하고 장밋빛 미래를 얘기할 것이니, 빌려주는 쪽에서 옥석을 가리고 사기꾼을 피하는 일이 중요한데 이게 쉽지 않다. 신용(credit)이라는 단어가 신뢰와 대출이라는 두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데서 알 수 있듯, 타인의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이를 잘 갚을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 조건이 된다. 

문제는 사회 초년생이나 업력이 짧은 소상공인 등의 경우 필요한 신뢰를 쌓을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애초에 돈을 빌릴 수 있어야 이를 갚으면서 상대의 신뢰를 얻는 것인데, 막상 빌려보려 하면 미리 쌓아 둔 신뢰가 필요하다 하고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인생이든 사업이든 계획의 실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니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가 원천 차단된다. 

이들의 금융 접근성을 증진해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포용금융의 목표이고, 이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정책금융이다. 

이때의 정책 목표는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위해 사회적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복지 정책과는 그 결이 다르다. 미래에 더욱 큰 가치를 가져올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금을 지원해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정책금융의 역할이다. 이것은 수혜자의 개인적 성취를 넘어서 지역 및 국가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책금융에 관한 세간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대부분의 지원 정책은 단순한 일회성 '돈 뿌리기'로 인식되고 있으며, 낭비된 세금에 대한 질타 역시 매섭다. 애초에 시장에서 포기한 옥석 가리기를 정부가 무슨 능력이 있어 더 잘할 것이며,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의 금융지원은 도리어 경제 전체의 생산성 및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 역시 타당하다. 

저출산, 고령화, 환경 등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나라 곳간은 결코 넉넉하지 못하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인 만큼 정책금융 또한 가장 필요한 영역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집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관련 정책의 구체적 효과에 관한 체계적 평가 및 이해가 이뤄져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책금융의 목표는 사회적 취약층에 대한 단순 공적부조가 아니다. 자금이 누구에게 흘러갔는지, 수혜자가 향후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 나아가 주위로의 파급 효과가 있었는지 등 정책의 도달 범위 및 효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정부가 적절한 개입 방안을 모색해 실행한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금융 지원을 통해 자신만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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