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4.11.24 08:00
대전에 본사를 둔 선양소주는 '선양에 빠졌다'는 슬로건의 광고로 소비자 인지도 제고에 나섰다. (사진제공=선양소주)
대전에 본사를 둔 선양소주는 '선양에 빠졌다'는 슬로건의 광고로 소비자 인지도 제고에 나섰다. (사진제공=선양소주)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지방소주업체들이 연말 대목에도 불구하고 판매량 하락에 신음하고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의 공격적인 영업을 비롯해 '하이볼' 인기와 같은 주류시장의 다변화, '혼술(혼자 마시는 술)' 트렌드의 지속, 지방 인구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4일 주류 업계에 따르면, 지방소주업체마다 판매량 하락이 두드러지면서 올해 수익 개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전망이다. 몇몇 업체는 적자경영이 가시화돼 사업 존폐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실적 저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좋은데이'의 무학은 최근 공시한 3분기 연결기준 매출 364억원에 영업이익 2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10년 전 실적과 비교할 때 절반 이상 깎여나간 결과다. 2014년 3분기 매출은 702억원, 영업이익은 183억원으로 10년 동안 뒷걸음질쳤다.

무학은 그나마 처지가 나은 편이다. 대구에 본사를 둔 금복주는 지난해 영업이익 2억원을 기록해 전년 64억원 대비 95.7% 급감했다. 전남이 본거지인 보해양조는 지난해 28억원의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으며, 대전을 기반으로 한 선양소주 역시 같은 기간 16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지방소주업체들의 이러한 침체는 다각적 요인이 결부된 결과다. 우선 국내 소주 시장을 양분하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의 전방위적 영업에 이렇다 할 대응을 못 하는 상황이다. 양사는 자본력을 앞세워 지방 유흥시장에서 취급 매장을 늘리고 있으며, 가정시장에서는 대형마트 할인과 광고 등으로 소비자 인지도 제고와 판매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다변화된 주류 트렌드도 한몫한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하이볼과 같이 과거와 같은 소주, 맥주 중심의 주류 소비 패턴이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혼술과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저도주 열풍 등은 2030세대에게 지역소주를 소비해야 한다는 애향심 마케팅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지방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어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부산시는 광역시 중 올해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진입했으며, 전체 228개 시군구 중에서 소멸위험지역은 130곳으로 파악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방 소주업체들이 마케팅과 연구개발(R&D) 등 여러 방면에서 열세에 놓였기에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진단이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최근 소주 시장에 진출한 오비맥주 등에 매각을 타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주장도 제기되나, 향후 독과점 논란에 휘말릴 수 있어 대기업들이 선뜻 인수에 나서기 쉽지 않다.

지난 5월 편의점 CU는 지방 소주 할인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제공=BGF리테일)
지난 5월 편의점 CU는 지방 소주 할인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제공=BGF리테일)

한편에서는 과거 지방소주에게 활로를 열어준 '자도주 의무구매' 제도의 부활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도주 의무구매란 지난 1973년 정부가 소주 시장의 과열 경쟁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도입했다. 주요 시도별로 1개의 소주 제조업체에게만 생산권을 주면서 생산량의 50%를 반드시 해당 지역에서만 소비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였다. 제도가 시행되자 당시 250곳이 넘는 업체가 11곳으로 크게 줄었고, 지금의 지방소주 명맥을 잇게 했다.

그러나 자도주 제도는 지난 1996년 헌법재판소가 '자유경쟁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하면서 사라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역 독점권을 부여한 자도주제도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다시 살려내기가 어렵다"며 "지방소주업체들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거나, 공정거래법을 활용한 가격 보조금 책정, 주류 관련규제 완화, 수출과 마케팅 지원 등,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을 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질적으로 지방소주업체들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활로 개척이 뒤따라야 한다"며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시장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제품 출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K-푸드' 열풍에 합류할 수 있는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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