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4.23 14:32

실효성 논란 커지는 단락 방지 조치…검색 지연에 미탑승 사례도
승객·전문가 의견 엇갈려…"불필요한 조치" vs "안전 경각심 필요"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입구에 마련된 보조배터리 기내 반입 안내 데스크에서 자원봉사자가 승객에게 비닐봉투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입구에 마련된 보조배터리 기내 반입 안내 데스크에서 자원봉사자가 승객에게 비닐봉투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국토교통부가 항공기 내 보조배터리 화재 예방 대책으로 내놓은 '비닐봉지 보관 지침'이 실효성 논란과 함께 현장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5월 황금연휴를 앞두고 공항 여객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보안 검색 지연에 따른 탑승 차질 등 '공항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지난 1월 김해공항에서 발생한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사고를 계기로 '보조배터리 및 전자담배 기내 안전관리 체계 표준안'을 수립, 3월부터 본격 시행 중이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내 전광판에서 기내 보조배터리 반입 관련 내용이 안내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내 전광판에서 기내 보조배터리 반입 관련 내용이 안내되고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해당 지침은 보조배터리를 투명 비닐봉지에 넣거나 단자에 절연테이프 부착한 뒤 몸에 소지하거나 좌석 앞주머니에 보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기내 수화물 선반에는 둘 수 없고, 100Wh 이하 보조배터리는 최대 5개까지 반입할 수 있다. 100~160Wh는 항공사 승인하에 최대 2개까지, 160Wh를 초과하면 반입이 금지된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국토부는 비닐봉지 조치가 보조 배터리 단자와 금속의 접촉을 막아 합선을 방지한다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비닐이 내부 합선에 효과가 없고 오히려 화재 확산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일회용 쓰레기가 증가하는 점도 문제다.

지난 15일 오전 김포공항 국내선 출발 층에서 보조배터리 안내 시행 전(위)과 시행 후(아래) 보안검색대 혼잡 상황. (출처=전국보안방재노동조합)
지난 15일 오전 김포공항 국내선 출발 층에서 보조배터리 안내 시행 전(위)과 시행 후(아래) 보안검색대 혼잡 상황. (출처=전국보안방재노동조합)

현장에서는 지침 시행에 따른 혼선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항 보안노조에 따르면, 지난 9일 김포공항에서 실시된 '비닐봉지 사용' 시범 운영 당시 보안 검색 시간이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11일에 진행된 테스트에서는 보안 검색 지연으로 여객기 미탑승 사례까지 일어났다. 

이상훈 전국보안방재노동조합 위원장은 "11일 김포공항에서 국토부 제2차관이 참관한 가운데 테스트에서 보조배터리 관련 단순 안내만으로도 보안 검색 시간이 30분 이상 지연됐다"며 "이에 따라 김포발 여수행 항공편에서 승객 3명이 미탑승하는 사례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비닐봉지 제공은 권고사항이지만, 실상은 보안검색 직원이 모두 확인하고 안내해야 해 업무 부담이 크다"며 "책임 소재도 불명확해 자칫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사들은 해당 지침에 따라 승객들에게 관련 안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승무원들이 권고사항에 맞춰 기내 탑승 전과 후 안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의 국내선 청사 출발 층에도 보조배터리 기내 반입 절차 안내 데스크가 마련돼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의 국내선 청사 출발 층에도 보조배터리 기내 반입 절차 안내 데스크가 마련돼 있다. (사진=정현준 기자)

전날(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앞에는 보조배터리 기내 반입 절차를 안내하는 데스크가 마련돼 있었다. 이날 자원봉사자들이 보조배터리를 소지한 승객들에게 비닐봉투를 제공하거나 단자에 절연테이프를 부착하고 있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약 1만장의 비닐봉지를 출국장 게이트 앞에서 승객들에게 배부하고 있고, 보안검색 파트에서도 약 1만장이 배포돼 하루 평균 2만장가량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에서도 상황은 유사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출국장 진입 전 보조배터리 보관 관련 비닐봉지를 배부하며, 기내 반입 요령을 안내하고 있었다. 공항 내 '보조배터리는 머리 위 선반이 아닌 앞 좌석 주머니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안내 방송도 나왔다.  

해당 조치에 승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제주로 여행을 간다는 60대 A씨는 "지금까지 하지 않던 조치를 갑자기 시행하면서 불편하다"며 "이것이 실제 화재 위험을 낮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본가인 제주로 가는 20대 대학생 B씨도 "백팩에 넣는 것과 비닐봉지에 넣는 것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불만스러워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비닐봉지는 화재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연소를 키울 수 있다"며 "배터리 내장 기기를 개인이 직접 관리하는 수준의 안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반면 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비닐에 넣어 눈에 보이는 곳에 두는 것만으로도 승객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다"며 "불편함이 있더라도 모두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면 일정 부분 감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승객이 검색대를 통과한 뒤 면세구역에서 비닐봉지나 절연테이프를 제거할 가능성도 나오면서,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인천공항공사는 ▲체크인 카운터 ▲출국장 입구 ▲보안검색장 ▲탑승 게이트 및 기내 등 총 네 차례에 걸쳐 비닐봉지를 배포하며, 보안검색장에서는 기내 반입 기준 미승인·미단락 조치가 적발된 경우에만 제공하고, 면세구역에서 버리는 경우에도 탑승 게이트와 기내에서 추가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사 측은 "보안검색 과정에서 단락방지 조치 시 승객 1인당 40~60초의 시간이 더 걸린다"며 "5월 연휴 기간 혼잡에 대비해 출국장을 오전 5시에 조기 개장하고, 보안 검색 인력 추가 및 검색 장비도 100% 가동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4건의 기내 보조배터리 화재 또는 연기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13건은 단순 권고 조치에 그치면서 실질적인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