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6.02 19:24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재계가 이달 중순부터 잇따라 '하반기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공격적인 경영 전략 수립에 나선다. 전략회의의 주제는 새 정부 출범 후 정책 변화에 대한 대응책,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에 따른 대응 전략, 중국·인도 등과 어떤 관계를 구축해 나갈지 등을 주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자동차·GS 등 국내 주요 그룹들이 사업 경쟁력 회복과 관세 대응을 위한 하반기 전략회의를 이달 중순부터 다음 달까지 잇따라 개최한다.
미국 연방 국제통상법원 재판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발표한 상호관세의 발효를 차단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관세 부과가 어떻게 될지 아직 불확실하다. 현재는 1심 판결이 나온 것에 불과해, 백악관의 항소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만약 법원이 예상과 다르게, 우리의 관세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다른 나라들이 '반미 관세'로 우리나라를 인질로 잡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며 "이는 미국의 경제적 파멸을 의미할 것"이라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관세 리스크에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새 정부까지 출범하면서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재계는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플레이북 등 시나리오를 만들어놓은 상황이며, 각 지역 생산량을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체계 등을 갖추고 있어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에 주요 경영진과 해외법인장이 참석하는 글로벌 전략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며,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 등 계열사들도 잇따라 전략회의를 연다.
삼성전자는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의 전략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하반기 전략회의에서는 지역별 이슈와 사업 부문별 현안을 공유하고 경영전략 수립에 나서게 된다. 6월 회의에서는 하반기 전략을 수립하고, 12월 회의에서는 다음 해 사업 방향을 정하게 된다.
이번 전략회의에서는 현재 SK하이닉스에 뒤져 있는 차세대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 승부를 걸기 위한 전략과 7월에 출시되는 폴더블폰 판매 전략 등에 대해 집중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바이스경험(DX)과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전략회의 일정은 현재 막판 조율 중이다. DX부문은 지난 4월부터 부문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노태문 MX사업부장이, DS부문은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회의를 이끌게 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7일, 삼성전기는 23일 전략회의를 개최한다.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사장과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이 이 회의를 주재한다.
무엇보다 중국 업체의 OLED 추격에 대비해 패널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6년까지 4조1000억원을 투자, 8.6세대 OLED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8.6세대 OLED는 기존 패널 대비 대량 생산할 수 있어 원가 절감에서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또 트럼프 정부가 스마트폰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세트 업체로부터 부품 단가 인하 압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대응 전략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기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카메라 모듈, 반도체 패키지 기판 등 기존 사업부터 글라스 인터포저(유리기판) 등 차세대 성장동력까지 사업계획을 일괄 점검한다. MLCC는 최근 전장 수요가 확대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 공급을 위한 전략 마련이 요구돼 대응전략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개발 중인 유리기판 사업도 점검하고, 신사업으로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가속기용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사업 전략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SK그룹도 이달 13~14일 SK그룹의 3대 회의 중 하나인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개최한다. 이 회의는 8월 이천포럼, 10월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등과 함께 회사의 핵심적 회의로 자리 잡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경영전략회의에서 반도체 사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주로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SK텔레콤의 유심 정보 유출 사고로 훼손된 고객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리밸런싱 방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하고, 진행 방향에 대해 점검할 계획이다.
이 회의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물론 SK 주요 계열사들의 CEO가 총출동해 사업 방향을 정하게 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달 중 해외 권역 본부장 회의를 연다. 이 회의는 상·하반기 각 한 차례씩 열리는 정례 회의로, 권역별 실적 분석과 향후 전략을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관세 등 통상 환경이 악화함에 따른 대응책 마련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GS그룹은 다음 달 주요 경영 현안을 다루는 하반기 임원 회의를 연다. 허태수 회장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사장단, 전무급 이상 임원진 및 신규 임원이 대거 참석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불확실한 대내외 경영환경 대응 전략, AI 및 디지털 혁신, 그룹 재무 안정성 강화 성과 공유, 중장기 성장 동력 확보 방안 등을 주로 다룰 전망이다.
특히 GS그룹은 지금까지 진행해 온 M&A에서 결실을 내는 만큼, 관련 성과를 공유하고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GS그룹은 최근 3년 동안 영업이익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 재무 레버리지를 줄이고, 자본 구조를 개선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반면, LG그룹은 통상 5~6월에 진행하던 전략보고회를 이번에는 건너뛰기로 했다.
LG그룹 관계자는 "전략보고회는 4~5년 정도의 중장기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한다. 지난 3년 동안 6개 계열사가 전부 전략보고회를 개최했다. 지금까지 진행한 전략보고회는 너무 자주 진행돼 중장기 회의라 볼 수 없었다"며 "올해 한 해를 쉬고 계획을 제대로 짜, 내년에 진행하기로 했다. 더 실용적으로 회의체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재계에서 진행하는 하반기 전략회의가 신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바뀌는 경제정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미국 관세에 대응해 생산방식에 어떤 변화를 줄지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고 분석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관세 정책은 유동적이고, 트럼프 집권 6개월이 지나면서 동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며 "오히려 하반기 전략회의는 정권 교체기에 방점을 찍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 또 상법 개정에 따른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대응책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은 워낙 불투명하다. 러시아와 문제가 해결되면 중국과 관계를 어떻게 만들지, 인도를 생산지로 가져갈지, 소비지로 설정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이라며 "이재명 후보자가 당선될 경우, 52시간제·노란봉투법·상법 개정안 등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관행처럼 유지하다가는 큰코다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미국 관세에 대한 대응 방안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산업별 정부 정책 변화, 환율 및 국내외 불안정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 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