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6.02 15:12

트럼프 관세 부과 두 달째…비관세 재고 소진에 가격 인상 전망
전문가들 "잘못된 시그널 줄 수 있다" vs "원가 상승 반영 불가피"

현대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용 자동차들이 대기 중이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차 울산공장 선적부두에 수출용 자동차들이 대기 중이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트럼프 행정부의 25% 수입차 관세가 시행된 지 두 달째에 접어든 가운데, 현대자동차의 미국 판매가격 동결 시한이 오늘로 종료된다. 관세를 피하고자 비축해 둔 비관세 재고가 소진되면서 이달 중으로 현지에서의 가격 인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간 '눈치 싸움'이 치열한 상황에서 현대차의 선택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르면 이달 중 미국 시장에서 차량 가격을 일괄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현대차가 6월부터 모든 모델의 권장 소비자 가격을 1%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현재 가격 변동은 결정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그동안 이날까지 현지 권장 소매가(MSRP)을 동결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는 국내 생산 차량을 미리 선적해 현지 재고를 활용,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재고 소진이 임박하면서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HMGMA에서 '아이오닉 5'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HMGMA에서 '아이오닉 5'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자동차시장 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4월 초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재고 일수는 각각 94일, 62일로 집계됐다. 수입차 25% 관세는 같은 달 3일 발효됐다. 재고가 소진됨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는 한국과 멕시코 등에서 수입하는 차량에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 현대차(63만대)와 기아(37만대)의 미국 수출량을 고려하면 연간 관세 비용 부담은 최대 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대미국 자동차 수출은 18억4000만달러(약 2조5309억원)로 전년 동월 대비 32% 감소했다. 4월 감소율(19.6%)보다 큰 폭으로, 관세 장기화 시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미국 완성차업체인 포드는 멕시코산 3개 차종 가격을 최대 2000달러(약 275만원) 올리기로 했고, 일본 스바루도 일부 신차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아직 공식적인 가격 인상 여부를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결정이 업계 전반에 '도미노 현상'을 촉발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며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고심을 키우는 요인이다. 최근 미국 연방국제통상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시행된 상호관세를 월권으로 판단하고 철회를 명령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항소했고, 최종 결정은 연방 대법원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법원이 관세 정책을 막으면 미국 경제가 파멸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2025 뉴욕 국제 오토쇼' 현대차관에서 열린 보도발표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2025 뉴욕 국제 오토쇼' 현대차관에서 열린 보도발표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차는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선제 대응에 나선 바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당분간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승조 현대차 최고재무책임자(CFO)도 같은 달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6월 2일까지는 가격을 동결할 것"이라며 "이후에는 시장 원칙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인센티브도 경쟁사의 차종별 공급 현황과 시장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만, 비관세 재고가 소진됨에 따라 가격 인상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관세가 유지된다면 현대차의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 부담을 회사와 소비자가 어떻게 나눌지 인상 비율을 논의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GM, 포드가 아닌 도요타나 폭스바겐의 가격 조정에 따라 인상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경쟁사의 재고 물량과 유지 기간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은경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조사연구실 실장도 "원가 상승으로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 제작사마다 수익성에 따라 모델별로 단계적 인상 등 차별화된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가격 인상은 현지 딜러사에서 인센티브를 통해 조정할 수 있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며 "현시점에서 가격 인상은 오히려 잘못된 시그널을 줘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우려가 있다. 판매 전략 전반을 조정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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