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광하 기자
  • 입력 2025.08.29 18:30

"KC인증서론 기능 유무 보증할 수 없어"…기능 미비·KS 미준수 인정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사진제공=법원)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사진제공=법원)

[뉴스웍스=박광하 기자] 법원이 홈네트워크 관련 법규를 위반해 월패드(세대단말기)를 설치한 시공사의 행위가 하자라면서 입주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관련 한국산업표준(KS)에서 규정한 기능이 빠진 장비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다수 아파트 단지에서 이와 동일한 이유로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제기될 예정으로, 이번 판결이 다른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핵심 설비·기능 '실종' 책임에 억대 배상 판결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민사부는 최근 부산지역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홈게이트웨이' 장비 미시공과 관련해 시공사 책임이 인정된다며 약 1억4600만원의 손해액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판결했다.

홈게이트웨이는 세대 내에서 사용되는 홈네트워크 기기들을 유무선 네트워크 기반으로 연결하고 홈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기다. 홈게이트웨이가 다양한 홈네트워크 기기와 연동할 수 있도록 정부는 KS X 4501 등을 제정한 바 있다. 해당 KS를 준수하지 않으면 타사 제품과의 연동·호환이 어렵다.

원고인 입주자 대표회의는 아파트 단지 모든 세대에 설치된 월패드 장비가 법령에서 의무화한 홈게이트웨이 기능이 없는 '기능 미흡 제품'이어서 하자라고 주장했다. 또 시공사 측은 해당 월패드가 홈게이트웨이 기능이 탑재된 '일체형'이라고 했지만,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당 장비에는 홈게이트웨이 기능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시공사 측은 해당 제품이 동일 업체 제품으로만 교환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를 하자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또한 현재 시공된 상태로 어떠한 지장도 초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제품의 명칭이 '홈게이트웨이 내장형 월패드'로 기재된 KC인증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KC인증은 제품을 제조·수입·판매하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국가통합안전인증마크다.  다만 KC인증은 전기·전자 제품의 전파 적합성이나 안전성을 확인하는 인증이다. 따라서 홈네트워크 설비의 성능, 기능, 연동·호환성 등은 KS 표준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감정인 "KS 미준수로 특정 제조사 종속 문제"

재판부는 감정인의 의견을 종합해 시공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정인은 감정서에서 "하자 발생 시 동일 업체의 제품으로만 교환이 가능해 유지보수 등의 어려움이 있다"며 "홈게이트웨이를 별도로 설치하는 비용을 산정했다"고 감정했다. 제품이 KS X 4501 등 KS를 준수했다면, 해당 제품 제조사가 아닌 다른 회사 월패드를 교체하는 등 유지보수가 편리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어 감정인은 1차 감정보완서에서 "(설치 월패드 장비는 타사 제품과) 호환이 안 되므로 정상 시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사용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지 않으나 KS 기준에 맞지 않아 보수비를 산정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타사 제품과 호환되도록 정한 KS를 미준수한 제품 설치에 대해 비정상적인 시공이라고 본 것이다.

2차 감정보완서에서는 "현장조사 당시 홈게이트웨이 미시공을 확인했고 관련 근거에 따라 보수 비용을 산정했다"고 의견이 담겼다. 홈게이트웨이 일체형 월패드라는 제품에 대해 확인 결과 홈게이트웨이 기능이 없었다는 의미다. 관련 법령에서는 홈네트워크 설비 구축 시 홈게이트웨이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규정한 바 있다.

3차 감정보완서에는 "KS X 4501에 적합한 기능을 갖춘 경우에 홈게이트웨이가 월패드로 대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된다"며 "피고 측에서 주장하는 제품의 부품은 특허의 결합품으로 타사의 제품으로 온전한 보수가 어렵다"고 짚었다. KS 미준수 월패드는 홈게이트웨이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여기에 더해 타사 제품을 이용할 수 없는 장비 종속성 문제까지 있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감정인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시공사에서 설치한 홈네트워크 설비가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설치 및 기술기준'에서 정한 KS X 4501에 적합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시공사가 제출한 자료들만으로는 감정인의 판단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KC인증서론 기능 유무 보증할 수 없어

이번 사건에서 원고를 대리한 이나윤 법무법인 황해 변호사는 "앞서 유사 사건들에서 담당 재판부들은 시공사나 월패드 제조사들이 제시한 증거인 'KC인증서'를 근거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잘못이 있다"면서 "해당 인증서에는 제품의 명칭을 '홈게이트웨이 내장형 월패드'라고 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한 '명칭'일 뿐 실제로 해당 기능이 있는지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나부자'라는 성명의 사람이 정말 부자인지는 직접 확인해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적어도 정부에서 제정한 KS에 있는 홈게이트웨이 기능이 갖춰져 있어야 '내장형'이나 '일체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감정 결과 '홈게이트웨이 내장·일체형 월패드'에는 홈게이트웨이 기능이 미흡했고, 이번 사건 재판부도 이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사 사건 재판부들이) 명목상 판단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며 이번 판결이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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