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9.24 17:42
신규 채용도 줄여 올해 '전체 인력 구조조정' 박차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대미 관세 파장에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주요 대기업들이 희망퇴직에 연이어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신규 채용도 최소화하면서 전체 인력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올해 들어 LG디스플레이·LG유플러스·LG화학·LG전자 등에서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LG전자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MS) 사업본부및 LG마그마 등 사업부를 중심으로 먼저 희망퇴직을 시행한 데 이어, 이달부터 전 조직으로 확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오롱FnC와 11번가도 올 들어 전 사업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작했다. 이밖에 상당수 기업이 지난해부터 상시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해 10월 사무직 장기 근속자에게 최대 3년 치 연봉을 지급하는 희망퇴직을 단행했고, KT도 같은 달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현대자동차도 2022년부터 50대 직원을 중심으로 조기퇴직 지원 제도를 정례화해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희망퇴직에 앞다퉈 나서는 이유는 올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경기와 인공지능(AI) 도입으로 업무가 자동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년 연장 등이 현실화하면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 있으며, 최근 논의되는 4.5일제도 임금 보전을 전제로 한다면 비용 압박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경기 어려움과 디지털 전환·자동화·AI화에 따라 더 이상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아 대기업들이 희망퇴직에 적극 나선 것"이라며 "노동 시장은 경직돼 있어, 해고가 자유롭지 않다. 희망퇴직과 신규 채용 인력 감소를 통해 인력 구조조정에 뛰어든 것이다. 경영 비용 중 인건비 지출이 가장 많다. 미국처럼 해고가 자유롭고 노동시장이 유연하면 이럴 필요가 없지만, 안 되니까 희망퇴직을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관세 문제도 크다. 우리나라가 해외에 직접 투자를 단행해 공장 시설 이전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신규 투자나 재투자 없이 해외로 모든 자본이 나가고 있다. 미국에 기술을 전수한 뒤 결국 현지 채용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국내 고용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경기 불확실성이 크고, 관세 영향도 이제부터 본격 반영되고 있다. 내년도 경기 불확실성을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이유도 크다. 여기에 실적도 부진하면서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 해소에 나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업으로서는 고용으로 인한 고정비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다. 신입 채용도 줄여 몸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며 "특히 대기업들의 사업 구조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다. 구조 고도화를 위해 나이가 있는 직원들을 내보내 조직을 젊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미국 관세와 중국의 물량 공세로 경기가 극심하게 어렵다"며 "AI·디지털 트윈 등 발전된 기술이 사용되면서 전체 인력 수요가 줄었다. 사업 구조도 많이 바뀌고 있다. 신입 사원 채용을 줄이고 바로 쓸 수 있는 경력직들을 수시 채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LG전자는 만 50세 이상이거나 수년간 성과가 낮은 직원을 대상으로 자율적 희망퇴직을 신청받기 시작했다. 적자를 내는 부서뿐 아니라 흑자를 내는 부서까지 희망퇴직을 확대한 것이다.
희망퇴직을 원하는 직원에게는 법정 퇴직금 외 근속 및 정년까지 남은 기간에 따라 최대 3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위로금과 최대 2년 치 자녀 학자금 등을 지급하게 된다.
대상은 HS 사업본부(생활가전), MS 사업본부(TV), VS사업본부(전장), ES 사업본부(B2B) 등 전체 사업본부다. 먼저 실적이 부진한 MS 사업본부에서 희망퇴직을 먼저 시행한 후, 타 조직에서도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전사로 확대했다.
LG전자가 TV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와 함께 미국에서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철강 가격에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철강 관세 부과로 10% 정도 비용 부담이 증가했다"며 "하지만 판매단가를 올리면 시청자들의 구매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제품 가격을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LG전자 측은 이는 올해 경기가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희망퇴직을 진행해 온 만큼 정례적 절차라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전 사업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것은 지난 2023년 이후 2년 만이다.
LG화학은 지난 8월부터 정년을 앞둔 58세 이상 임금피크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작했다. 석유화학 부문 생산·사무직 구분 없이 전체 인력을 대상으로 퇴직 의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는 석유화학의 장기 침체에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은 58세부터로, 정년까지 남은 잔여 기간에 해당하는 급여 보전과 자녀의 등록금 지원을 진행하는 조건이다. 이번 희망퇴직은 공식적인 공지 없이 개별 제안과 협의를 통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공장 중심으로 희망퇴직 관련한 팀장급 이상 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LG유플러스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7월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22년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시행한 바 있다. 올해 말 기준 만 50세 이상·10년 이상 근속 직원을 대상으로 지난 8월 1일부터 19일까지 진행한 희망퇴직 신청자를 집계한 결과, 신청자 수는 650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높은 퇴직금 때문에 희망퇴직 신청자가 몰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LG디스플레이도 올해 생산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또 지난해 12월에도 사무직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앞서 LG생활건강도 지난해 말 코카콜라음료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특히 코카콜라음료의 희망퇴직은 지난 2007년 LG생활건강에 인수된 후 17년 만에 처음 이뤄진 것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LG그룹은 그동안 '인화의 LG'를 내세워 사람을 아끼고 화합하는 '사람 중심 경영'으로 조직문화를 이끌어왔다. 인재도 내부 인력을 내보내기보다 타 계열사로 보내는 인력 재비치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경기 침체에 따라 2022년부터 희망퇴직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는 부장급 이상이었던 희망퇴직 제안 인원을 확대했다. 또 더 이상 사업부 내에 신규 인력을 받지 않기로 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도 전 사업부 직원을 대상으로 이달 22일부터 10월 중순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유석진 코오롱인더스트리 대표는 지난 22일 임직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회사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고심 끝에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했다”며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지만, 회사를 지켜내고 다시 도약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코오롱 FnC는 지난 2분기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9.2%, 53.4% 줄어든 2964억원, 75억원을 기록했다.

SK스퀘어의 자회사 11번가도 6월부터 9월까지 매달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말 희망퇴직을 처음 실시한 이후 올해에만 4차례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것이다.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입사 1년 이상 직원에게 최대 6개월 치 급여와 커리어 전환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11번가 측은 '수익성 중심 경영 체제로 전환하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회사 매각을 염두에 둔 구조조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KT도 지난해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인력 재배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연간 3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