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0.16 10:00

[뉴스웍스=박광하 기자] 서울 은평뉴타운 입주자들이 홈네트워크 장비 교체 사업에서 수십만원씩 손해를 보게 될 판이다.
아파트 건립 당시 한국산업표준(KS)을 준수하지 않은 '호환성 없는 장비'가 설치된 까닭에 최대 수억원의 교체 장비용 시스템을 추가 구매,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홈네트워크 장비 제조사들의 표준 준수 위반과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소홀로 입주자들의 부담만 가중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은평뉴타운은 지난 2010년 전후로 건립됐다. 현재 여러 아파트 단지에서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교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각 세대 내에 설치된 세대단말기(월패드)가 고장 나기 시작하면서, 30% 가량 입주 세대가 월패드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단지 관리소장은 "우리 아파트는 전체 세대 중 40% 정도에서 월패드가 고장 난 것으로 안다"면서 "민원이 점점 늘고 있어서 (홈네트워크 교체)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월패드는 세대 내에 설치돼 조명·난방·가스·환기 등 다양한 홈네트워크 설비를 모니터링, 조작할 수 있다. 개별·공동 현관 도어폰과 연동돼 방문자 확인과 현관 개문이 가능하다. 엘리베이터 호출, 택배 알림, 관리비 조회 등의 기능도 제공한다. 최근에는 AI 스피커, 사물인터넷(IoT) 기기와 연결돼 스마트홈 허브 역할을 한다. 월패드가 고장 나면 이런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므로 해당 세대는 갖가지 불편을 겪는다.
일반적으로 특정 장비가 고장나면 대체품을 구입해서 교체한다. 하지만 은평뉴타운의 홈네트워크 교체 사업은 그런 방식으로 추진하는 게 불가능하다. 설치된 월패드나 홈네트워크 시스템과 교체할 장비 간 호환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체할 월패드가 홈네트워크 설비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하려면 별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해당 시스템의 가격은 수천만~수억원에 이른다는 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이야기다. 부담은 고스란히 입주자들의 몫이 된다.
문제는 더 있다. 여러 아파트 단지에서 홈네트워크 장비 교체 사업을 경쟁 입찰 방식으로 발주하고 있지만, 특정사만 입찰하는 기이한 모습이 잇따라 발견된다.
기존 시스템과의 연동이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입찰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게 업계와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경쟁 입찰 실종은 응찰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단독 응찰 업체가 높은 가격으로 응찰하는 '배짱 입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입주자들의 부담으로이어진다.
정부는 2011년 지능형 홈네트워크의 이종 제어 미들웨어간 상호연동 프로토콜 안내서(KS X 4501-1) 등 관련 KS를 제정했다. 그러면서 2011~2016년에는 정부 고시인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설치 및 기술기준'에서 홈네트워크 장치들이 KS를 준수하도록 하는 의무화 규정을 뒀다.
하지만 제조사들은 KS를 준수하지 않고 저마다 독자적인 비표준 기술 규격으로 장비를 제조했고, 정부는 이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 지자체는 기술기준을 위반한 제품이 설치된 아파트에 준공 허가를 내줬다.
업계는 제조사, 정부, 지자체의 이런 행태가 지금의 사태로 이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월패드 등 홈네트워크 장비의 호환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 문제는 해결을 보지 못했다. 한 입주자는 "나는 망가진 장비만 다른 걸로 바꾸면 되는 줄 알았다"면서 "장비가 표준을 지키지 않아서 입주민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면 표준을 위반한 제조사,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나 서울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따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