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조성진 기자
  • 입력 2025.10.23 17:22
지난 22일 흑두루미 73마리가 순천만에 도착했다.  (사진제공=순천시청)
지난 22일 흑두루미 73마리가 순천만에 도착했다. (사진제공=순천시청)

[뉴스웍스=조성진 기자] 10월의 햇살이 순천만의 갈대밭을 부드럽게 감싸던 22일 오후 3시, 검은빛 날개가 하늘을 갈랐다. 천연기념물 제228호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취약종으로 지정된 흑두루미 73마리가 한 해의 첫 선발대로 순천만을 찾은 것이다.

순천시는 지난해보다 하루 늦은 귀환이라며 "이들은 러시아 남동부와 중국 동북부에서 번식하고, 해마다 이맘때 순천만으로 날아와 겨울을 난다"고 전했다.

흑두루미는 전 세계 개체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7600마리가 순천만에서 월동한다. 그만큼 순천만은 단순한 철새의 쉼터가 아니라, 지구 생태의 균형을 상징하는 국제적 서식지다.

특히 지난해엔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예전엔 사람의 발소리에도 날아오르던 흑두루미가 20m 거리에서도 유유히 서 있었다. 사람과 새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순간의 신뢰가 아니라, 30년 넘게 이어진 보호와 공존의 결과다.

흑두루미 73마리가 순천만 갯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순천시청)
흑두루미 73마리가 순천만 갯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순천시청)

흑두루미는 이름처럼 머리와 목 일부가 흰색, 몸통은 회색빛 검정으로 덮여 있다. 붉은 피부가 드러난 눈가와 머리 위는 마치 두건을 두른 듯해 '두건 두루미'라 불린다. 길이 1m, 무게 3~5kg의 새는 시베리아의 혹한을 넘어 수천km를 날아온다. 순천만은 그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보내는 마지막 목적지다.

순천시는 2009년부터 흑두루미의 안식처를 지켜왔다. 62ha 규모의 '흑두루미 희망농업단지'를 조성해 논과 갯벌을 만들었다. 내년까지 안풍들 일대의 전봇대 49본을 철거하고 환경저해시설 없는 서식지 50ha를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12월에는 흑두루미의 이동 경로를 연구하기 위한 위치추적기 부착 프로젝트도 시작된다.

순천시 관계자는 "흑두루미의 도래는 매년 시민들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이라며 "순천만이 철새에게는 안전한 쉼터, 시민에게는 자연과 공존하는 희망의 상징이 되도록 끝까지 지켜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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