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10.24 10:16

[뉴스웍스=조성진 기자] 1985년, 전남 동부 내륙의 중심이었던 승주군 승주읍에는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 상점과 관공서, 학교로 북적였던 거리엔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지금은 2300명 수준으로 줄었고 적막함마저 감돈다. 40년 만에 인구의 80%가 사라졌다.
승주읍의 중심지인 승평마을은 1995년 승주군이 순천시와 통합되기 전 승주군청이 있던 곳이다. 순천시청으로 이전 후 비어 있던 승주군청은 순천제일대학교가 매입해 승주캠퍼스로 활용했으나, 2024년 폐교됐다. 현재 마을에는 수십 명 정도가 살고 있다. 거리는 낮에도 인적이 드물고, 그나마 대부분 고령층이다. 폐허를 연상케 하는 연립주택이 즐비하고, 70% 이상이 비어 있다. 승평마을은 승주읍 중에서도 가장 급격한 소멸세를 보이는 지역이다. 승주초등학교 학생 수는 도농통합 당시 220명에서 현재 31명으로 줄었다. 승주중학교도 270명에서 18명으로 급감했다.

순천은 도농통합도시다. 1994~1995년 정부 주도 하에 농어촌 발전과 균형 성장을 위해 통합됐고, 도시의 동과 농촌 읍면이 한데 묶어졌다. 그러나, 현재 순천시 11개 읍면이 된 승주군 인구는 동으로 옮겨갔고 도농격차는 더 커졌다. 1995년 통합 당시 승주군 인구는 약 7만7000명이었지만 9월 말 현재 신대지구를 제외한 읍면(이하 승주군) 전체 인구는 4만1000명으로 47% 감소했다.
승주군에 편성하는 예산도 감소했다. 전남에서 가장 많은 농가인구가 있는 순천시에 전남도가 지원하는 순농업생산기반시설 예산은 연평균 80억원에 그쳐 전남 22개 시군 평균인 119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올해 순천시 농업 분야 예산은 전체 예산의 14.9%인 1934억원이지만 이 중 승주군에 직접 지원되는 예산은 500억~600억원 수준이다.
승주군의 인구와 재정지원은 줄었지만 순천시 전체 인구가 크게 감소하지 않아, 순천시는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되지 않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지 못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매년 1조원을 출연하여 지자체에 지원하는 재정지원 제도다. 현재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시군 단위'로만 적용된다. 그래서 순천시의 일부인 승주군은, 아무리 인구가 줄고 마을이 텅 비어도 지원받을 수 없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국정감사에서 승주군 예를 들면서 "도농통합시의 읍면은 인구감소지역 기준에서 배제돼 있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읍면 지역이 급속히 사라지는데도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건 제도적 불합리"라고 지적했다.

신 의원의 말처럼, 승주군은 지방소멸대응기금뿐 아니라 인구 감소지역의 행정 특례인 각종 특별교부세 지원, 지역사랑상품권제도, 지방세 감면 차등화 혜택을 받지 못한다. 승주군 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순천시의 인구폭이 크게 줄어들지 않아 승주군 주민에게만 불이익이 집중되는 구조다. 다른 군 지역 주민이 1인당 5만원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받는다면, 승주군 주민은 3만원만 받는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여전히 도농통합도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군 단위 기준'만 고수하고 있다. 승주군 읍면은 도시의 일부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소멸 위험이 가장 큰 농촌이다. 신정훈 의원은 "읍면 단위로도 인구감소지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이어서 "지난해에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행안부는 1년 반째 용역만 반복하며 개선안을 내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늦장대응을 비판했다.
순천은 여전히 전남의 대표 도시다. 하지만 그 이름 아래 묻힌 승주군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도농통합은 행정 효율을 높였을지 모르지만, 사람의 삶을 통합하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도농통합도시 농촌지역을 별도 재정지원 대상으로 분리하거나 소멸 위기 마을을 생활권 단위로 행정통합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한편 서선란 순천시의원은 이번 달 말까지 열리는 순천시의회 임시회에서 '순천시 지역균형발전 지원 조례'를 발의할 예정이다. 서 의원은 "조례가 제정되면 순천시 지역균형발전위원회를 설치해 행정 및 재정지원을 하게 되고, 도농간 건전한 발전과 순천시민의 균등한 삶의 질 향상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