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윤정 기자
  • 입력 2025.11.12 21:00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정부 및 삼성전자·SK그룹·현대자동차그룹·네이버에 총 26만장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GB200)'을 공급한다고 밝히면서 '피지컬 인공지능(AI)'이 주목받고 있다. 뉴스웍스는 피지컬 AI의 정의와 구현 분야, 국내외 사례 등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더불어 제대로 된 피지컬 AI 구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AI 전문가들의 조언도 담는다.   

젠슨 황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관람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채윤정 기자)
젠슨 황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관람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채윤정 기자)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6만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제공을 통한 '피지컬 인공지능(AI)'의 거점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인 '블랙웰'은 국내 업체 및 정부에 공급돼, 피지컬 AI를 구동하기 위한 심장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기업들의 기술 구현 속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황 CEO는 AI 기술이 초기에는 '인식형'을 거쳐 '생성형' 단계를 거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후 사람 대신 작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를 거쳐 결국 '피지컬 AI'로 발전한다고 강조해 왔다. 

피지컬 AI는 현실(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AI를 일컫는다. 관성, 운동량 등 물리법칙을 이해하고,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AI로 정의할 수 있다.

황 CEO는 피지컬 AI가 적용될 산업 분야로 ▲자율주행차 ▲로보틱스(휴머노이드 로봇) ▲스마트 팩토리 3대 분야를 꼽았다. 향후 피지컬 AI가 제조, 자동차,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에서 인간 역량을 확장하는 새로운 산업 혁신 시대를 열 것이라는 청사진이다.

◆에이전틱 AI에서 피지컬 AI로…제조·물류·헬스케어 혁신 앞당긴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는 "피지컬 AI를 이해하려면 로봇을 떠올리면 된다. 바로 로봇에 지능이 들어가는 것이 피지컬 AI"라며 "로봇이 사람처럼 잘 움직일 수 있고, 기계적으로도 부드러움을 갖추고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세계적인 IT리서치 기관인 가트너는 피지컬 AI를 '로봇이 AI 에이전트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쉽게 말해 'AI 두뇌를 탑재하고 현실 세계에서 직접 행동하는 로봇'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존 로봇은 프로그래밍이 된 '단순 반복' 작업만을 수행하지만, 피지컬 AI 로봇은 스스로 보고, 듣고 판단하며 예측 불가능한 현실 환경에 적응하고 관련된 작업을 수행한다. 

피지컬 AI 구현을 위해서는 소프트웨어는 물론, 자동차나 로봇과 같은 기구 분야의 제조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의 강자지만 제조 역량은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상태다. 반대로, 독일 등 유럽은 제조 역량은 뛰어나나, 소프트웨어가 부실한 상황이다. 이와 비교할 때 한국은 자동차·조선 등 다양한 사업이 잘 발달해 있어, 피지컬 AI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가장 매력적인 곳으로 꼽힌다. 

엔비디아의 GPU는 수요가 공급을 훌쩍 넘어서며 국가마다 치열한 확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엔비디아가 대규모 공급 국가로 한국을 택한 것은 한국이 피지컬 AI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인프라를 갖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황 CEO는 "한국은 제조 AI에서 글로벌 리더가 될만한 최적의 역량을 갖췄다"며 "가장 많은 AI 인프라를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지금이 기회가 될 수 있는 시기”라며 "전 세계적으로 AI에 필요한 세 가지 기본적인 핵심 기술을 가진 나라 몇이나 되겠나. 첫 번째로 소프트웨어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인데, 한국은 엄청 많이 가지고 있다. 다음은 제조 역량이다. 소프트웨어와 제조 역량을 결합하면 로보틱스 활용 기회가 많아지고, 이것이 피지컬 AI의 차세대 모델”이라고 역설했다. 

디지털 트윈의 구조. (자료제공=국토교통부)
디지털 트윈의 구조. (자료제공=국토교통부)

피지컬 AI 구현을 위해 실제 상황을 디지털 영역으로 바꿔놓은 '디지털 트윈'은 매우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호 교수는 "피지컬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3차원 세계에서 로봇에 필요한 데이터를 만들어 AI로 학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실제 상황과 동일한 '디지털 트윈' 구축이 필수적"이라며 "디지털 트윈으로 로봇을 학습시키면 실제 환경에서 학습할 필요 없이 가상의 공간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각 부위를 제어할지 학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에서는 설계·제조·검사 등을 묶고 고정 노선 운송 로봇 등에 대한 통합 시뮬레이션을 돌리게 된다.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신규 설비 시험 기간을 30∼50% 단축할 수 있으며, 설비 간 병목도 제거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물류업에서는 AI 시뮬레이션으로 창고 지도를 디지털 트윈으로 재현한 뒤 자율주행 운송 로봇, 파킹 스테이션을 최적화할 수 있다.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요 패턴, 피크타임, 충돌회피 등을 가상으로 테스트할 수 있다.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AI 시뮬레이션으로 수술 시나리오를 영상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디지털 트윈 상에서 시험해 보고 로봇 보조 동작 등을 검증할 수 있다.

우주·항공 산업에서는 AI 시뮬레이션 도입으로 위성정보 빅데이터를 학습해 최적의 항공기·위성 설계안을 마련하는 게 가능해진다.

지난 2020년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올해 생산현장 투입을 앞두고 조립되고 있다. (사진제공=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난 2020년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올해 생산현장 투입을 앞두고 조립되고 있다. (사진제공=보스턴 다이내믹스)

◆한국, 피지컬 AI 가능성은 충분…초기 단계 빨리 벗어나야 

황 CEO가 약속한 물량이 국내 공급되면 한국은 미국(약 2000만장)과 중국(약 150만장)에 이어 세계 3위 GPU 보유 국가가 된다. 한국은 기존 4만5000장의 GPU를 포함해 약 30만장을 보유하게 된다. 

현재 피지컬 AI 분야는 중국이 가장 앞서 있으며, 미국이 이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미국 현지 매체들은 중국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도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앤 뉴버거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을 통해 “AI 패권의 진짜 승부처는 로봇”이라며 “중국은 데이터와 하드웨어, 인재를 결합해 피지컬 AI 전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10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표한 ‘중국이 주도하는 AI+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현황’ 보고서에서도 중국 정부는 ‘AI+로봇’을 자율주행과 배터리에 이은 차세대 핵심 산업으로 지정하고 국가 차원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딥시크' 성공에 따른 AI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하드웨어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본체를 개발하거나 프로토타입을 발표한 기업은 약 110개 이상으로, 글로벌 시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특히 중국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하드웨어(HW)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중국은 로봇 부품의 90% 수준을 제조할 수 있어서 기업의 신규 진입이 용이하다. 미국 제조사들은 주요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해야 하지만, 중국 로봇 기업은 현지 조달이 가능해 비용 면에서도 유리하다. 

데이터 확보 면에서도 중국은 방대한 데이터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 주도로 데이터 활용이 가속화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AI를 개발·이용하는 기업 수는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또 고품질 데이터셋 수는 27.4% 증가하는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트레이닝과 응용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까지 'AI 로봇 10만기 배치'를 목표로 제조·물류·공공안전 분야에 AI 에이전트를 탑재한 로봇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유비테크의 산업용 로봇인 '워커S2'. (출처=유비테크 유튜브 채널)

미국의 저력도 인정할 만 하다. 오한석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생성형 AI의 선두 주자인 미국은 산업·국방 등 이제 피지컬 AI에서도 글로벌 기술 헤게모니를 선도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의 피지컬 AI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 및 산업현장 적용 전략은 아직 초기 단계"라고 의견을 밝혔다.

엔비디아로부터 GPU 5만대를 구입하는 우리 정부는 '피지컬 AI 1등 국가로 도약'을 목표로 집중 투자에 나서고 있다. 내년에 AI 3대 강국 달성과 피지컬 AI 선도국 지위 확보를 목표로 10조원이 넘는 예산안을 편성했다. 

지난 9월 공개된 ‘새 정부 경제성장 전략’에서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피지컬 AI 선도국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 피지컬 AI 관련 예산 4862억원을 반영했다. 프로젝트 별로는 ▲AI 로봇(5510억원) ▲온디바이스 반도체(9973억원) ▲자율주행차(6000억원) ▲자율운항 선박(6135억원) ▲제조 데이터 기반 AI 팩토리(약 2조원) 등 제조·물류 현장에 디지털 트윈·로봇·엣지 AI를 확산한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AI 시대 경쟁력을 가지려면 '챗GPT'와 같은 챗봇보다는 제조업이 연결된 피지컬 AI로 AI 전략을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간 한국 산업을 이끌어온 강력한 제조 능력에 AI를 결합한 피지컬 AI가 전 세계적인 AI 경쟁 속에서 한국이 승리할 수 있는 '키 포인트'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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