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윤정 기자
  • 입력 2025.11.17 11:40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정부 및 삼성전자·SK그룹·현대자동차그룹·네이버에 총 26만장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GB200)'을 공급한다고 밝히면서 '피지컬 인공지능(AI)'이 주목받고 있다. 뉴스웍스는 피지컬 AI의 정의와 구현 분야, 국내외 사례 등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더불어 제대로 된 피지컬 AI 구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AI 전문가들의 조언도 담는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출처=테슬라 홈페이지)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출처=테슬라 홈페이지)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싱가포르에 세운 전기차 공장에는 로봇이 부품을 나르고 조립한다. 전체 공정은 '디지털 트윈'으로 제어된다. 관제하는 직원들이 로봇의 작업을 지켜보며, 사람과 로봇이 같이 전기차 제조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싱가포르 공장은 로봇과 AI 기술이 융합된 '피지컬 AI'의 한 사례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의 '피지컬 AI' 수준은 중국보다 뒤져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뛰어난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피지컬 AI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단연 '소프트웨어 강자'이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제조 역량은 크게 떨어져 있다. 때문에 피지컬 AI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는 다소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국내 기업·정부에 26만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효창 두원공대 교수는 "중국은 피지컬 AI 환경이 가장 잘 갖춰져 있고 적극 준비하고 있지만, 미국은 규모가 큰 공장이나 로봇을 활용한 사례가 많지 않아 환경 면으로 볼 때 적합하지 않다"면서 "반면, 우리나라는 제조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 제조가 잘 발달한 독일보다 가능성이 더 크다. 한국이 피지컬 AI 국가 2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이어 "문제는 중국이 워낙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제조 환경이 뛰어나다는 것"이라며 향후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중국 샤오펑이 발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언'. AI 학습과 구동계로 사람과 가장 유사한 움직임을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샤오펑 유튜브 채널)

중국은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점유율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현재 피지컬 AI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약점도 있다. 개인정보 보호나 국가 안보 차원에서 서구 시장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데 각국이 경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인 샤오펑은 2020년부터 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들어, 지난해 11월 '아이언' 로봇을 내놓았다. 이어 1년 만에 2세대 제품을 공개했다. 아이언은 키 178㎝, 몸무게 70㎏으로, 인체와 비슷한 크기를 지닌다. 82개 관절을 갖춰 인간과 유사한 동작이 가능하다. 

대만 폭스콘은 엔비디아와 공동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 왔다. 폭스콘은 텍사스에 위치한 AI 서버 생산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배치할 계획이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출처=테슬라 유튜브 채널)​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출처=테슬라 유튜브 채널)​

미국은 테슬라, 피규어AI를 통해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현재 프리몬트 공장에서 파일럿 생산을 진행 중이며, 내년 3세대 생산 라인을 가동할 계획이다. 양산 시 제조 원가 목표는 2만달러(약 2800만원)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프로토타입은 상자 쌓기, 테이블 닦기 등 동작을 모션 캡처로 학습하는 수준에 머문다는 한계가 있다. 

피규어AI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테슬라 출신 엔지니어가 설립한 로봇 스타트업 기업이다. 휴머노이드인 '피규어 02'를 개발한 데 이어 이달에 세 번째 제품인 '피규어 03'을 공개했다. 피규어 03은 산업·가정용 등 여러 환경에서 작동 가능하며, 피규어 AI 비전·언어·행동 통합 시스템 '헬릭스' 중심으로 재설계된 모델이다. 

독일 및 일본 정부가 피지컬 AI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은 2011년 수립한 국가 산업 발전 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피지컬 AI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생산 기계·공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고 데이터를 교환해 최적화한 것이다. 특히 산업 자동화를 위한 통신 프로토콜을 적용해 로봇 연결 장벽을 낮춘다. 또 설계-생산-검사-물류 데이터 표준화로 학습용 데이터 세트 품질을 높이면서 '로봇과 AI 산업 발전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2015년 1월 로봇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로봇 신전략을 수립한 후 첨단기술을 활용한 제조 고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6년 AI 국가 프로젝트 범부처 콘트롤타워 인공지능 전략회의를 발족하고, 2019년 로봇을 활용한 사회 변화 추진위원회를 운영하며 디지털전환·AI 전환 중심으로 확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일본 스마트 제조 혁신 정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스마트 제조시장이 2019∼2024년 연평균 10.2%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SPOT)'이 공장을 자율 순찰하며 다양한 센서로 설비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SPOT)'이 공장을 자율 순찰하며 다양한 센서로 설비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세계 IT 강국들이 피지컬 AI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부치는 상황에서 한국이 부상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방효창 교수는 "한국의 피지컬 AI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술보다는 규제를 주목해야 한다"며 "통신업체만 참가해야 한다든지, 특정 통신망을 이용해야 한다든지 이런 규정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피지컬 AI 투자는 초기에 큰 비용이 필요한 만큼 제도적으로 이를 고려해야 한다. 금융지원도 받고, 선제적으로 투자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이번에 AI 예산을 10조원 가까이 책정한 것을 두고도 피지컬 AI 관련 기업들이 수혜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NPU 기술 고도화에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최근 스마트폰에 탑재돼 활용되는 온디바이스 AI만을 보면 전력 효율이 크고 가볍고 싼 NPU가 적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NPU는 엣지 단에서 컴퓨팅이 이뤄지도록 하는 작은 두뇌로, GPU가 토큰을 생산하는 거대 컴퓨팅 두뇌라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에지 서버에서 데이터를 처리해야만 초지연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리벨리온·퓨리오사AI 등이 대표 NPU 개발 업체들이다. 

GPU는 제품을 학습하고 추론하는 기능에 전부 사용이 가능하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고 주문량이 많아 엔비디아에서 제품을 공급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에는 추론 환경에서는 NPU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는 "정부는 5년간 AI 예산으로 50조원을 쓸 것으로 보이며, 민간도 동일한 금액을 쓴다면 총투자 규모가 100조원에 이른다"며 "피지컬 AI 기업, 신경망처리장치(NPU) 기업들이 그 혜택을 받아야 한다. GPU 개발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학습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현실에서의 데이터 확보가 아닌, 디지털 트윈 공간에서 실사와 유사하게 만들어 빠르게 구현해 내야 한다. 관련 예산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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