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1.18 15:36

서울고법 "박 전 대통령 요구 편승해 뇌물 적극 제공…준법감시위, 실효성 충족했다고 보기 어려워 양형 반영 부적절"

재수감 207일 만에 가석방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3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nbsp;<b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4년여 만에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부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18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의 파고환송심 선고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후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던 이 부회장은 이날 선고 이후 법정 구속됐다.

이 부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에게도 각각 징역 2년 6개월씩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고 청탁하며 뇌물 86억여원을 넘긴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지난 2019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취지를 그대로 따른 셈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이나마 승계 작업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사용해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거절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는 점을 참작할 때 실형을 선고하더라도 양형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양형에 반영되어 이 부회장 측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던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에 대해서는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는 피고인의 진정성과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지만, 실효성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려워 양형에 반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준법감시위의 활동이 앞으로 발생할 새로운 유형의 위험에 대한 예방 및 감시 활동에까지 이르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재판부의 준법감시위 설치 권고를 수용하고 지난해 5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무노조 경영 포기, 자녀의 경영권 승계 불가, 준법감시위 독립적인 활동 보장 등을 선언한 바 있다.

왼쪽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진=뉴스웍스DB)
왼쪽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스웍스DB)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에게 298억원 상당의 뇌물을 건네고 213억을 건네기로 약속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 2017년 2월 이 부회장을 구속기소했다.

1심은 특검이 주장한 액수 중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 지원 72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16억원 등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는 승마 지원 일부(34억원)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전체(16억원)가 무죄로 판단되면서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이 무죄로 판단한 정씨의 말 구입액 34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을 뇌물로 봐야 한다며 사건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부회장의 유무죄에 관한 판단은 이미 대법원에서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어 이날 공판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양형'이 주요 쟁점이 됐다. 이 부회장은 특히 실형을 피하고 집행유예 선고를 받기 위해 총력을 다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최후 진술에서 "과거의 잘못은 모두 제 책임이며, 최고 수준의 도덕·투명성을 갖춘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나겠다. 존경하는 아버님께 효도하고 싶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같은 날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이날 선고 공판에 앞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재계 인사들은 이 부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이 부회장에게 끝내 실형이 선고되면서 재계는 유감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선고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는 취지의 논평을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입장문을 통해 "삼성그룹의 경영 공백이 현실화된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나 특검 측은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재상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과 비슷한 시기 기소됐던 박 전 대통령과 최 씨 모두 대법원 재상고심까지 거쳤으나 원심이 그대로 확정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 역시 재상고심에서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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