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10.16 11:00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사진제공=신세계그룹)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사진제공=신세계그룹)

#한꼬집: 꼬집는 행위를 연상케 하는 ‘꼬집’은 소금과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일컫습니다. 손가락 끝의 양념이 음식 맛을 돋우는 것처럼, 유통업계의 관심 있는 현상을 한꼬집 양념을 넣어 집중 조명합니다.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지난달 대대적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신세계그룹이 업계 안팎에서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이 신임한 임원들이 모두 경질돼 경영실적 부진에 대한 ‘신상필벌’ 메시지를 확실히 던졌습니다.

하지만 파격 인사 이후에도 신세계그룹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룹 핵심인 이마트는 최근 시가총액이 2조원 아래로 추락해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올해 3월 시총 3조원이 무너진 뒤 약 7개월 만에 2조원까지 추락한 것이죠.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2년 전(2021년 10월) 시총인 4조5000억원대와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 공중에 날아갔는데요.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정용진‧정유경 남매에 대한 이 회장의 남은 지분이 요동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마트, 영업익 7000억대 ‘영광의 시절’ 어디로?

이마트의 시총 하락 요인은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단편적으로 시장 기대감이 싸늘하게 식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최근 10년 동안 주가 최고치인 32만원대(2017년 3월)와 비교하면 이달 12일 기준으로 7만1600원을 기록해 약 77% 주저앉았는데요. 코로나 사태 당시 반등세를 보이나 싶었지만, 올해 4월 10만원대가 깨진 이후 역대 최저치를 연달아 경신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이마트를 외면하는 이유는 경영실적이 가장 크게 작용합니다. 이마트는 올해 2분기 연결기준 53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357억원이며, 2021년은 3168억원입니다. 최근 2년여 사이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씩 깎여나간 것이죠. 2017년 5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챙겼고, 그 이전에는 7000억원대라는 ‘대풍년’을 맛봤던 터입니다.

문제는 다수 투자자가 이마트의 이러한 실적 추이를 단순 하락세로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보통 하락세를 타면 다시 상승세로 돌아갈 것이란 투자 사이클 심리가 작용하지만, 이러한 기대감마저 거둬들이는 등 ‘잿빛 미래’를 예단한 투자자들이 불어나고 있는 것이죠.

특히 정용진 부회장이 주도한 초대형 투자를 놓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인데요. 아직은 투자 평가를 내리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시너지 창출 방안에 고민을 더하는 모양새입니다.

잘 알다시피 정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는 지난 2020년부터 신성장동력 확보를 명분으로 막대한 지출을 감행했습니다. 약 3조5000억원을 들여 이베이코리아 지분을 인수했고, 스타벅스코리아 지분 17.5% 추가 인수로 약 4700억원을 지불했습니다. 여기에 SK와이번스 야구단 인수에 약 1300억원을 들였고, 더블유컨셉코리아 인수에도 약 2700억원을 쏟아붓는 등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초대형 거래들을 줄줄이 성사시켰습니다.

이러한 투자는 이마트의 재무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18년 부채비율 89.1%에 차입금의존도 22.8% 수준이었던 이마트는 올해 상반기 기준 각각 143.6%, 34.3%로 재무지표가 악화됐습니다. 이자비용만 따지면 2018년 815억원대에서 지난해 3175억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이자 비용이 영업이익보다 두 배나 높아지면서 수익성 증대가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죠.

지난해 성수동 이마트 본점을 약 2조2000억원대, 2021년 가양점을 6800억원대에 각각 매각하며 현금유동성을 확보한 것도 이러한 경영지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제공=신세계그룹)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제공=신세계그룹)

◆지분 증여 ‘저울추’ 흔들릴까

관련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의 경영 성적표가 결국 어머니의 ‘인사 칼날’을 불러왔고, 이 회장의 재등장은 ‘과거로의 회귀’ 혹은 3세 경영에 대한 특단의 조치라는 해석입니다. 향후 정 부회장이 주도한 사업들의 방향 전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회장의 최종 지분 승계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남은 지분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제기됩니다.

앞서 이 회장은 2020년 보유 중이던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의 각각 8.22%를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에게 증여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의 이마트 지분은 10.33%에서 18.56%로, 정 총괄사장의 신세계 지분은 10.34%에서 18.56%로 각각 증가했는데요.

증여를 통해 그룹 양대 계열사의 최대주주가 변경됐지만, 이번 인사와 같이 이 회장의 경영 지배력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회장은 증여 이후에도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10%씩 보유한 2대 주주로 그룹의 주요 사안을 쥐락펴락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당시 이 회장의 지분 증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공평한 증여였다는 겁니다. 남매의 ‘투톱 체제’를 공고히 다지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경쟁 심리를 유도하려는 목적도 깔려있다는 시각이 나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재벌가들이 장자승계를 원칙으로 딸보다 아들에게 지분을 우선하지만, 신세계그룹은 이 회장이 남매에게 지분을 똑같이 나눠줬다”며 “그룹을 이끌 수장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음을 은연중 내비치면서 이들의 경쟁 구도를 통한 경영 시너지를 기대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정 총괄사장이 오빠인 정 부회장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표를 받은 것도 주목할 점입니다. 신세계는 2020년 884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코로나 사태에 직격타를 맞았지만, 이듬해 517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창사 최대 실적이라는 마법을 부렸습니다. 지난해는 645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신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우기까지 했죠.

정 총괄사장은 정 부회장보다 대외적 활동이 많지 않습니다. 정 부회장은 다른 대기업 오너들과 달리 80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정 부회장과 비교하면 대외 활동에 소극적이라는 시선이지만, 조용히 실속을 차리는 ‘은둔의 경영’이 긍정적 이미지로 바뀔 태세입니다.

올해 4월 폐점한 이마트 성수동 본점 전경. (사진제공=이마트)
올해 4월 폐점한 이마트 성수동 본점 전경. (사진제공=이마트)

◆대형마트의 미래, 온‧오프라인 시너지는 ‘미완성’

위기를 겪고 있는 이마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창사 이래 가장 혹독한 시기를 맞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도약을 위한 ‘바닥 다지기’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정 부회장은 이마트가 가지고 있는 오프라인 강점에 온라인을 융합시키겠다는 전략으로 이베이코리아를 사들였습니다. 이베이코리아를 사들이자마자 적자를 냈고, 지금도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기엔 검증 시간이 짧은 건 분명합니다. 쿠팡이 8년 동안 적자를 이어오다 작년 4분기부터 흑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라 봐도 무방하겠죠.

대형마트의 효시인 미국 시장에서는 월마트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월마트는 이커머스 공룡인 아마존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있는데요. 지속 성장 비결에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시장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한몫했으나, 당일배송 매장을 확대하고 아마존에 밀리지 않는 상품 구색을 갖춘 점,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식료품의 가격을 크게 낮춘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입니다. 오프라인 채널의 강점과 함께 월마트만의 차별성을 온라인 채널에 불어넣은 결과죠.

혹자는 미국 시장이라는 거대 유통시장이 월마트의 ‘옴니채널’ 성공을 견인했다고 분석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상황 자체가 달라 이마트가 벤치마킹하기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분석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인 옴니채널에서 이마트가 ‘한국판’ 얼개를 제대로 짜냈냐는 겁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처음에 말도 안 되는 서비스라고 질타를 받았던 쿠팡의 ‘새벽배송’이 큰 성공을 거뒀고, MZ세대를 공략한 현대백화점의 ‘더 서울’이 흥행한 점은 국내 유통업계에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며 “초유의 저출산과 1인 가구 확대라는 국내 유통 환경의 특수성에서 이마트가 어떠한 차별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레이더스가 창고형 할인점의 대명사인 코스트코코리아에 맞불을 놓았지만, 소비자들에게 트레이더스만의 브랜드 차별성은 애매모호하다는 평가가 많다”며 “대형마트의 강점인 가격 경쟁력에서도 이마트가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만큼, 이마트만의 브랜드 정체성과 경쟁력이 무엇인지 원점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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