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15.10.22 14:02

미술계 큰 별이 지다... 미인도 위작 미스터리만 남기고 떠나

고 천경자 화백. 천 화백의  이혜선씨는 미국 뉴욕에서 지난 8월6일 천 화백이 세상을 떠났다고 22일 밝혔다.

우리나라 미술의 큰 별이 졌다. 여류 미술작가 천경자(91·사진) 화백이 두 달 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숨을 거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91세. 

천 화백의 맏딸 이혜선씨(70)는 "지난 8월 6일 새벽 5시께 어머니의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편안하게 돌아가셨다"며 "어머니의 장례는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치른 후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한 종합일간매체를 통해 22일 전했다.  다만 이씨는 천경자 화백의 유골이 안치된 장소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천 화백은 지난해 2월에도 생사 논란에 오른 바 있다. 당시 대한민국 예술원은 천경자 화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예술원 관계자는 당시 "미국 뉴욕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천씨의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예술원 회원에게 주는 매달 180만원의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씨는 "어머니는 살아계시다"면서도 천화백의 모습을 공개하지 않았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祖父)가 입선했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老婦)가 입선하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천 화백은 1952년 피란지인 부산서 연 개인전에 출품한 뱀 그림 '생태'(生態)를 통해 일약 스타 작가로 뛰어올랐다. 이 작품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되어 있다.
지난 1991년 천경자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절필을 선언했다. 당시 그는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내 그림이 아니다"는 말을 남긴 채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그는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웠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천 화백의 부고가 두달이나 지나 세상에 알려진 것이 '미인도 위작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작가가 본인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여도 상업성과 미술관의 권위유지를 위해 오해를 해소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에 천 화백은 물론 가족들마져 연을 끊고 싶었을 것"이라며 이로인해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의 부고를 두달이나 늦게 우린 접하게 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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