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4.25 15:09

구조조정은 적어도 10년 앞은 내다봐야 한다. 근시안적인 대책만 나열할 경우 결국 부실 업종이 다른 부실을 낳는 풍선효과만 키울 뿐이다. 이 과정에서 공적자금으로 포장된 국민의 세금과 나라의 곶간인 은행 창고가 허물어진다면 '대한민국호'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지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체제는 글로벌 경제가 안정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대한민국의 위기였기에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약세)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수출 대한민국호가 고환율 덕분으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2008년에는 세계 금융위기가 있었으나 넉넉한 외환보유고와 고환율로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2016년 봉착한 상황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글로벌 경기 침체 ▲세계 교역량 감소 ▲세계의 공장 '중국' 성장률 둔화 ▲국제유가 하락과 중동경제 붕괴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며 나타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선봉에 서 있던 조선과 해운이 외부의 개입없이 자생적으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대외 변수로 인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은행 자금만을 동원한 근시안적 구조조정은 자칫 국민 혈세 낭비와 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원칙을 세우고 장기적인 안목(眼目)에서 구조조정에 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컨대 불과 4개월여전인 지난해 12월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6200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투입했다. 수출입은행은 자본잠식상태인 성동조선해양 지분율을 70%나 보유하며 살리려 안간힘을 썼다.
결과는 무엇인가. 최근까지 국책은행 자금이 투입된 조선업은 오는 26일 제1차 구조조정 대상업종으로 이름을 올렸다. 돈만 쏟아 붙고 결과는 달라진게 없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M&A(인수합병)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규모 인력 감축도 뒤따를 것이다. 이러한 ▲출구 전략없는 막대한 자금 투입 ▲무리한 M&A추진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실업자 대책 강구 등이 임시 방편식으로 주먹구구로 이뤄진다면 2차, 3차 구조조정 시점에 모든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구조조정의 원칙이 분명하지 않으면 더 큰 손실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신속‧공평‧손실분담 그리고 국민혈세 투입 최소화
예를 들어 보자. 부실기업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 문제를 구조조정 기업 대상자에 한해 특별한 조치가 만들어지는 순간 의미가 없어진다.
주진형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은 25일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에서 “실업대책이 없다고 구조조정이 늦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실업대책은 전 산업분야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지 구조조정 대상기업별로 만들어서는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조조정이 다른 업종에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 신속하고 공평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 2009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시절 한 언론매체 칼럼을 통해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힌바 있다.
안 수석은 당시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신속▲공평 ▲손실분담 ▲국민혈세 투입 최소화 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런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고 난 후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재정지원 ▲M&A 등의 처방이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한진해운의 경우를 보자. 재정지원을 요청하는 자율협약신청전 오너 일가가 보유주식을 처분했다. 구조조정의 손실분담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해서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한다. 이런 원칙이 없을 경우 구조조정은 국민의 혈세만 퍼붓는 과거의 전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규제개혁 병행돼야
구조조정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계획도 없이 신속해선 안된다. 충분히 검토한 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과 해운에 대한 구조조정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4‧13 총선 후 갑자기 불거진 것도 아니다. 이달 안에 끝마치지 않으면 당장 국가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당국이 26일 발표할 1차 구조조정 방안이 너무 섣부른 판단에 따라 재정지원이나 M&A 방안이 쏟아져 나와서는 안된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이날 한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구조조정은 규제개혁과 함께 이뤄야 한다”며 “구조조정기업간 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력감축으로 대규모 실업자 발생에 대한 대책 등 구조조정에 대한 그림을 먼저 그리고 신속하게 진행해야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이어 “만약 정부가 돈을 푸는 것이 구조조정을 저해한다면 하지말아야 할 것 아니냐”며 “구조조정은 반드시 하되 이로인한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제까지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된 이유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정치권은 제멋대로 입김을 넣고, 소유주는 전방위로 저항을 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구조조정을 어떻해든 소유주에게 유리하게 진행하는 관행이 정착되서는 제대로된 구조조정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조조정=대량해고'라는 공식을 뛰어넘기 위해선 시의 적절한 규제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미국의 디트로이트가 자동차산업 침체로 텅비어 갈때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영원한 산업이 없다면 시대에 맞춰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 구조조정 당한 실업자들이 새로운 직군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김 원장은 "직장을 잃더라도 미래에 희망이 있으면 고통이 덜한 것”이라며 “새로운 업종으로 취업을 유도할 수 있는 전직 교육 프로그램 가동 등 정부의 종합적인 프로그램이 제시돼야 하고, 이 과정에서 소위 소유주들의 책임 문제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을 아무런 대책 없이 서둘러 강행한다고 국가 경제가 살아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구조조정은 당장 눈앞의 부실을 덮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0년후 경제를 이끌 산업의 지형을 보고 실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금융과 주식‧채권 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해 시장에서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부실기업이 발생했을 때마다 정부가 나서는 것은 아직도 후진 경제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먼저 판단하고 부실 징후가 보이는 기업을 퇴출시킬 수 있는 금융시스템을 정비해야한다.
김 원장은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에 대해서도 개혁 수준의 구조조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에 제대로 해야 앞으로 제2의 조선‧해운 업종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수 있는 신수종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