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5.10 19:43
백화점 등 유통업계, 한우·과수·화훼농가, 호텔·외식업계 소비 위축 우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공직자, 교직원 등에게 할 수 있는 선물 가격이 5만원으로 제한되면서 선물이나 접대와 관련한 내수 소비재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명절 선물 수요가 높은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물론 화훼업계, 식사·주류 등 접대와 관련한 외식·호텔·골프장·주류업계 등은 매출 악화의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며 충격에 휩싸여 있다.
일단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가는 명절 특수가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벌써부터 일부 업체에서는 대체할만한 상품을 찾아야 한다며 협력업체와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김영란법은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올해 추석(9월 14∼16일) 기간에는 적용이 되지 않지만 당장 올해부터 분위기상 명절 선물세트 매출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백화점의 경우 5만원이 넘는 선물세트 비중이 95%에 이를 정도로 고가 선물 수요가 많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사과, 배 등 과일의 경우 품질에 맞추려면 2~3개 소포장으로 선물세트를 만드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 식품매장을 벤치마킹해 아기자기하면서 고급스러운 소포장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최소 가격대가 10만원대인 한우나 굴비세트다. 백화점의 한우나 굴비세트는 고품질이 기본인데다 공산품과 달리 신선식품의 특성상 날씨나 수급상황 등에 따라 가격 변동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한우나 국내산 과일의 경우 5만원 이하로 선물세트를 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번 시행령은 국내 과수원이나 축산농가에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형마트는 5만원 미만 선물세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 백화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형마트 역시 정육·수산·과일 같은 신선식품 선물세트는 5만원 이상 제품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대응책이 필요하다.
이마트의 경우 올해 설 선물세트 가운데 5만원 미만 세트 비중은 67%에 달했지만 신선식품 선물세트는 5만원 미만 제품이 33.8%에 불과했다.
송인호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 사무총장은 "국내 농가들은 매출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농가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향후 법안에서 농·축·수산물을 배제시켜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한우는 명절이 최대 성수기인데다 선물 가격이 보통 20만~30만원대인데 명절에 한우는 팔지 말고 수입산만 선물하라는 얘기”라며 “부정부패 잡으려다 농민 다 죽게 생겼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이 높은 국내 농수산물 수요가 줄고 그 자리를 저가 중국 제품이 대체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 화훼시장은 대략 1조원 규모이며 이 가운데 경조사 화환이나 조화 등이 70~8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화훼협회장은 “현재 거래되는 경조사용 화환 값은 10만원 이상이 대부분인데 이마저도 화분값, 개발료, 중간상인 유통마진 등을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며 “경조사 조화·화환만큼은 예외 조항으로 묶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인당 식사비용이 대부분 3만원 이상인 호텔업계는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용률이 확 떨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일반 음식점들도 한숨짓기는 마찬가지다. 고기구이집이나 일식집 등의 경우 기본 단가가 제법 비싼데다 술이라도 한두병 곁들이면 상한선 3만원은 훌쩍 넘는다. 한 한우식당 관계자는 “비즈니스 접대 고객은 물론 기업 등에서 단체로 와 법인카드로 회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손님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김영란법으로 비즈니스 식사 자리에 술을 곁들이는 게 거의 불가능해지게 되면 주류업계, 특히 위스키업계는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주요 수요처인 룸살롱, 단란주점, 고급바 등 유흥업소 판매는 물론이고 선물 수요가 높은 고급 위스키 시장이 더욱 움츠러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영수증 쪼개기 등 탈법이 무성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