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10.24 13:32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기초적 이론 수업 머물면 인력 부족 해소 어려워"

[뉴스웍스=신예은 기자] 반도체 산업은 정부가 지난 2022년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한 데 이어,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추가 지정하면서 성장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를 이끌 맞춤형 인재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오는 2031년 국내 반도체 시장에는 30만4000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2021년 기준 반도체 인력 규모는 17만7000명에 불과하다. 이 규모가 지속되면 2031년에는 약 5만4000명의 반도체 인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산업 성장이 일어나면서 최근 해외 인재 유출이 빈번해지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는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나간다는 집계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9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핵심 기술인 20나노급 D램 공정 자료를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 등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임원 출신 2명이 검찰로 송치되는 등 기술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은 신입·경력 채용 등을 통해 우수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당장 문제되고 있는 핵심 인재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뉴스웍스는 반도체 분야 인재 찾기에 혈안이 된 국내 업계의 ▲인재 양성 ▲기술 및 인재 유출 ▲현황에 대해 안승언 한국공학대학교(이하 한국공대) 나노반도체공학과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현 정부가 진행하는 반도체 특성화대학에 지정됐다고 들었다.
"한국공대가 수주한 특성화대학 지원사업의 세부 주제는 '반도체 계측 및 검사 분야'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는 소자 및 제품이 고도화됨에 따라 기존 8대 공정에서 MI 분야가 제9대 공정으로 취급되며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기존 8대 공정이 제조 단계라면 MI는 소자의 성능평가, 제품의 불량, 신뢰성 검증 등 소위 '관찰'을 통해 소자 성능을 궁극적으로 향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을 위해서는 기존 반도체 산업에서 강조하던 재료공학, 전자공학적인 소자 제조에서 더 나아가 광학·물리적인 특성 계측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중요성에 착안해 학과 차원에서 설립 초기부터 ▲기초 광학 ▲광학 기구, 시스템 설계 ▲광학 특성 계측 등의 교과목을 구성했다. 관찰을 위한 MI 분야의 기초적인 교육 및 실습 교과목이 교과목 구성 체계의 우수성을 더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분야 교육의 난제는 실습을 충분히 경험한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평균적으로 반도체 학과 수업은 적게는 20명, 많게는 40명 정도로 구성된다. 하지만 반도체 실습용 기자재는 그 특성상 매우 고가여서 동일한 장비를 여러 대 구비해 모든 학생이 실습을 체험하는 것이 현 학부 환경에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국공학대학교는 반도체 공정, 소자, 측정 수업을 위해 동일한 장비를 여러 대 구비해 수업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이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장비 부족 외 국내 반도체 인재 양성에 미진한 점이 있다면.
"정부의 정책에 의해 상당수의 대학이 반도체 관련 학과를 만들고,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인력 양성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충분한 전공 분야 전임교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진행해 커리큘럼 운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경우 배출된 인력들이 산업계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시설을 구축하고 기업의 우수인력이 인재 양성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 교육의 중요성 중 체험형 실습 교과목의 운영은 반도체 교육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학 교육에서 학부 과정의 반도체 교육은 기초적인 이론 수업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습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대부분 고가의 전문적인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소수의 대학원 연구실에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반도체 분야의 인재 양성을 체계적으로 심화하고, 모든 참여 학생이 공정, 소자, 측정, 설계 분야의 수업을 이론뿐 아니라 실습까지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반도체 인재 양성에서 특히 중요하게 키워야 할 부문이 있다면.
"반도체는 장비, 소재, 패키징 등 관련 산업 분야가 매우 넓게 분포돼 있다. 때문에 분야별로 요구되는 인재들이 다르다. 특히 그동안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여온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제외한 시스템 반도체, 반도체 장비 및 소재 분야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국가경쟁력 측면에서 인력 양성 분야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인력 부족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석박사로 이뤄진 고급 인력보다 고졸, 초대졸, 학부 수준의 기초 인력군이 업계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분야별, 난이도별 균형 있는 반도체 인력의 배출과 체계적인 학습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가 향후 10년간 반도체 석박사 3만명 양성하겠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여러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양적인 성장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실무 능력을 갖춘 고급 인력들을 제대로 배출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반도체 인력 양성 사업은 학부에 상당 부분 집중됐다. 특히, 6개월에서 1년의 단기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단기적인 배출 실적을 현 정부에서 중요시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다."
-반도체 불황으로 학생들의 반도체 학과 기피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특정 분야의 호황과 불황은 일반적으로 정치, 경제적인 관점에서 분석되고 판단되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복잡한 판단 근거가 요구된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 분야에 대한 견제와 협력 정책을 복잡하게 전개하며 다양한 경제적 영향을 끼치는 반면, 반도체의 응용 분야는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최근 AI, 사물인터넷, 자동차 등에서의 응용 확장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 대한 판단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해야 하기에 그 어느 업계보다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반도체 업계의 불황을 예상하고는 있지만, 엔비디아, 마이크론의 깜짝 실적 발표로 인해 예상이 틀렸다는 시장의 반응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반도체 분야가 경기 사이클이 명확한 분야이기는 해도 기업들의 매출 실적만 보자면 지속적으로 우상향이기 때문에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정부에서 반도체 업계를 다각도 지원하고 있다. 향후 성장성을 어떻게 보나.
"반도체 분야는 최근 용인, 평택, 구미 지역이 특화단지로 지정돼 2042년까지 대규모 투자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화단지 지정은 그동안 복잡한 행정적인 인허가 절차 때문에 산업기반시설 구축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단행됐다. 아직은 시작 단계로, 여전히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데 정부와 자치단체 간 논의 중인 사안이 많다. 또 관련 제도 개선을 진행하는 단계라 업계 성장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중국 등 해외로 기술 및 인재가 유출되는 것에 대한 시각은.
"중국은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기술과 인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게 현실이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국가로도 고급인재가 유출되고 있다.
인재들이 우리나라에 남지 못하는 원인을 들여다보면 연구원 및 엔지니어의 처우와 보상 체계가 배경에 깔려 있다. 따라서 우리의 처우와 보상이 유출 국가와 비교할 때 과연 얼마만큼 이점이 있는지 점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첨단 기술과 관련해 미국의 중국 견제가 심화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보다 미국의 정책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의 대중 반도체 수출이 많이 감소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실적이 위축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 안보와 직결된 첨단 기술의 경우 미국과의 협력을 우선해야겠지만, 중간 수준 이하의 기술을 적용한 제품 수출은 중국 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대응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반도체 분야의 정책이 세워지는 시기다. 정부에서도 정치적인 해석을 통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보호하고 성장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세우기 위해 좀 더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