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진형 기자
  • 입력 2024.11.22 15:00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소장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소장.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소장.

부가 발행하는 지역화폐, 다른 나라에 없는 이색적인 정책

우리나라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매년 예산을 들여 상품권을 발행‧보급하는 매우 독특한 정책이 있다. 2009년 발행을 시작한 온누리상품권과 1996년 도입된 지역화폐로 불리는 지역사랑상품권(원래 명칭은 고향사랑상품권)이 그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정부가 상품권을 발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가적 경제위기, 대규모 자연재해, 사회경제적 재난 사태 등 비일상적인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으로 한시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나라처럼 상시적인 정책사업으로 할인소비쿠폰을 전 국민을 상대로 유상판매하는 사례는 적어도 선진국에는 없다. 매우 이색적인 상품권 사업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비인기 정책이었다.

판매가 부진해 무용론이 우세했다. 그런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문재인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지역화폐 시장을 키우기로 작정하면서부터다.

중앙정부 예산이 불쏘시개가 되어 모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역화폐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전국적 현상이 되었고 기존의 무용론은 무시되었다.

높은 할인율에 명운이 달린 정부 상품권 시장

문재인 정부의 상품권 정책사업이 인기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할인율 덕분이다. 

소상공인 지원, 지역경제 활성화, 전통시장 및 골목 상권 소비 진작 등 "착한" 명분을 뭐라 할 수 없지만, 착한 명분만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범용성이 낮은 상품권은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불편한 지급수단이다.

그 불편함을 감내할 만한 충분한 유인을 제공해야 상품권 소비를 늘릴 수 있다. 즉, 할인율 수준이 정부 상품권 판매량을 좌우한다. 문제는 웬만한 할인율로는 "착한" 소비를 유인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소비자의 구매 의사를 결정하는 할인율의 최저 마지노선은 7%로 알려졌는데 판매량을 늘리려면 할인율을 더 높여야 한다. 2015년 892억원, 2016년 1087억원에 불과했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가 2022년 28.4조원까지 폭증하자 할인율 20% 특판이 등장했다.

눈먼 나랏돈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어 가능한 일이지 만약 민간업체였다면 머지포인트 사태처럼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게다가 편의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카드형과 모바일형까지 출시하면서 운영비용이 급증하고 종이상품권과는 달리 민간 대행사가 필요해졌다.

지역화폐 운영사로 선정된 업체는 수조원 대에 달하는 선수금 수입으로 막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횡재를 얻었다. 가장 먼저 지역화폐 시장에 뛰어든 코나아이가 상장폐지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