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12.10 16:40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식품업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 '고환율 악몽'에 직면하고 있다. 고환율 추세가 이어지면 원재료 매입액 부담이 천정부지 치솟기 때문이다.
수익성 방어를 위한 가장 손쉬운 길인 '가격 인상'은 올해 대다수 식품기업이 시행했기에 다시 꺼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원달러 리스크 헷지(Hedge) 수단인 '통화선도계약'이 지금 상황에서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롯데웰푸드 등 국내 주요 식음료 기업은 시행하지 않거나 거래 규모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1437.0원보다 10.1원 내린 1426.9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최고 1442원까지 급등하며 등락을 반복하는 추세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론 1450원대 돌파는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다음 달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시장 불안정성이 고조되면 1500원대 진입이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야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계엄령 사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며 "지금 환율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고,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는 전언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시각이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 적정성 비율은 국제통화기금(IMF) 모델 기준으로 평균 93%로 낮은 편"이라며 "올해 상반기에만 94억달러를 순매도했기에 원화 약세를 억제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내년 5월 말까지 1500원대도 예상돼 달러 매수를 추천한다"고 예측했다.
고환율 추세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식품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대다수 식품기업은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실정이기에 원가 부담을 피할 수 없다. 기업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부 식품기업은 원재료 비용이 제품 판매가의 50%에 이르는 실정이다. 여기에 물류비와 운송비도 동반 상승하는 이중고도 겹쳤다.
문제는 고환율 악재가 현실로 다가왔음에도 국내 식음료 기업 다수가 통화선도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다. 통화선도거래란 환율 변동에 따른 외화 수익의 가치 방어를 목적으로 고정된 환율에 계약을 미리 체결하는 파생상품이다. 예컨대 A기업이 1년 동안 원달러 환율 1200원대에 원자재 수입 계약을 체결했다면 지금의 고환율 추세를 비껴갈 수 있다. 수출 물량이 많은 기업일수록 통화선도거래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가 두드러진다.

CJ제일제당은 통화선도거래로 소기의 환율 방어를 이뤄내고 있다. 올해 9월 말 기준 만기 도래의 통화선도거래는 742억원의 이익으로 파악된다. 같은 기간 만기 미도래 통화선도거래는 359억원의 평가이익 실현이 예상된다.
반면, 롯데웰푸드와 롯데칠성음료는 통화선도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다. 통화선도거래가 환율 방어의 목적도 있지만, 환율이 떨어질 때 계약을 체결하면 손해를 볼 수 있어 거래하지 않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해석이다. 여기에 롯데웰푸드가 다수 해외법인을 두면서 현지 원재료 매입으로 환율 방어가 가능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현 시점에서 이러한 보수적 환율 방어가 손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농심 역시 통화선도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다. 롯데웰푸드와 마찬가지로 해외법인을 통한 환율 위험성 상쇄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리온과 풀무원도 통화선도거래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뚜기는 통화선도거래로 인해 3분기 기준 관련 부채가 18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27억원보다 부채가 줄어들었다. 부채가 준 이유는 매입 시 선물환 계약환율보다 환율이 오르면서 거래이익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라면 수출 1위인 삼양식품은 이번 고환율로 인해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삼양식품은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이 80%에 육박하고 있으며, 해외 법인 없이 국내에서만 생산한 물량만으로 해외 판매에 나서고 있다. 삼양식품의 3분기 기준 통화선도거래로 인한 이익은 19억원으로 나타나 거래액이 미미한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추정된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통화선도거래 규모에 대해서 언급하기 어렵다"며 관련 사항을 함구했다.

한편,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한 올해 세계식량가격지수는 하락세에서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1월 117.7로 시작했지만 10월 127.4로 급등했다. 곡물과 유지류, 유제품, 설탕 등의 가격 상승이 식량 가격 전반의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탄핵 정국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 치솟는다면 식품업계가 또다시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을 막을만한 명분도 없고 통제도 쉽지 않아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국내 식음료 기업들에게 환율 리스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소수 기업만 적극적인 환율 방어 정책에 나서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가격 인상과 같이 쉬운 방법으로만 수익성을 방어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