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2.05 16:51
노조 "법정수당 계산 시 '기본급+통상수당+정기상여' 지급해야"
법조계 "향후 협상 카드로 활용 전망…노사 간 조정 가능성 높아"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기아 노동조합이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례 변경을 근거로 통상임금 소급분 반환 소송에 나선다. 이번 소송이 현대차그룹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될 지 관심이 쏠린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아 노조는 이달 28일 통상임금 소급분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노조는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현대차 및 한화생명 전·현직 근로자들이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고정성' 요건을 삭제하며 기존 판례를 변경한 점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은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재직 여부나 근무 일수 등을 지급 조건으로 설정한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초과근무수당, 연차수당 등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각종 수당이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추가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다만 대법원은 법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임금 재산정을 요구하는 소급 적용은 제한하고, 판결 당시 진행 중이던 병행 소송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기아 노조는 지난 3일 소식지를 통해 "주휴수당과 근로자의 날 휴일수당은 법정휴일이고, 연차휴가는 법정 휴가인 만큼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통상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사측은 이를 기본 일급 기준으로만 계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장·휴일근로수당, 연월차수당, 심야수당, 주휴수당, 법정휴일 수당 등을 '기본급+통상수당+정기상여금' 기준으로 정상화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아 노조는 지난달 9~24일 소하, 화성, 광주, 정비 등 전 지부 조합원을 대상으로 소송 위임 신청을 받아 현재까지 2만여 명이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평균적으로 조합원 1인당 1000만원 이상의 미지급 수당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2022년부터 3년 치에 대한 소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조합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노동에 대한 보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정당한 몫이 조합원들에게 돌아가게 하려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이번 소송을 통해 통상임금 기준이 확립되어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서 기아는 2019년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노조와 법적 분쟁을 벌인 바 있다. 당시 1조원 이상의 미지급 임금 청구가 제기됐으며, 이후 1심에서 패소한 사측이 노조와 특별합의를 맺고 소송이 종결됐다.
당시 양측은 '상여금 통상임금 적용 및 임금제도 개선 관련 특별합의'를 통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대신 평균 월급을 3만1000원 인상하고 조합원 1인당 평균 1900만원의 미지급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기아뿐 아니라 현대차 노조도 통상임금을 둘러싼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대차 노조는 매년 기본급의 750%를 받는 상여금 전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 중 150%는 통상임금에 추가 포함하기로 지난달 노사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가 이번 사안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향후 소송 진행 상황과 1심 판결 결과에 따라 과거처럼 조합원들과 특별합의를 맺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장기화하기보다는 조정을 통해 해결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동현 법무법인 신진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 당시 진행 중이던 사건에만 적용되면서 판결 이후 기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조합원들이 배제될 경우 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노조가 단순히 과거 미지급된 임금을 모두 받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 사측과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통상임금을 지급할 때 대법원 판례에 맞춰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조와 근로자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며 "결국 이번 소송도 임금체계 개편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조정 절차를 통해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기존 하급심 판결에서 통상임금으로 인정된 사례도 있고, 반대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는데, 법원이 이제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좀 더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이러한 기대감 속에서 노조들이 소송을 제기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기아 노조의 소송이 현대차그룹을 넘어 국내 제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속노조 측은 전체 5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대응 지침을 마련하고 있으며, 현대차 계열사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들도 통상임금 기준을 검토해 재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금속노조는 단일한 산별 노조인 만큼, 동일한 기준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각 사업장에서 통상임금 기준을 재검토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달 22일 비슷한 쟁점으로 세아베스틸 전·현직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도 "조건부 정기상여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