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5.06.25 19:00

상여금 850% 통상임금 포함…소정근로시간 226→209시간 단축
산업계 확산 가능성 대두…법조계 "협상엔 영향, 판결에는 제한적"

서울시 공항동 대한항공 사옥. (사진제공=대한항공)
서울시 공항동 대한항공 사옥. (사진제공=대한항공)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대한항공 노사가 20년 만에 통상임금 체계를 전면 개편하기로 합의하면서 산업계 전반에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완성차 업계인 현대자동차와 기아, 한국지엠의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노동조합은 지난 20~24일 조합원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률 59.5%로 임금 교섭 잠정 합의안을 가결했다. 해당 합의안에는 ▲총액 2.7% 범위에서 기본급 조정 ▲상여금 850%의 통상임금 포함 ▲시간 외 수당(연장·야간·휴일)과 연차휴가 수당 지급 등이 포함됐다. 노사는 26일 최종 조인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 서초구 소재 대법원.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서울 서초구 소재 대법원.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이번 개편은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내린 통상임금 판결을 반영한 조치다. 대법원은 당시 현대차와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통상임금 요건에서 '고정성'을 폐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비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한항공 노조는 "판결 직후 교섭을 요구해 정기·비정기 상여금의 전액 통상임금 포함을 관철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사는 통상임금 산정 기준이 되는 '소정근로시간'을 기존 226시간에서 209시간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20년 만의 조정이다. 소정근로시간이 줄면서 단위 시간당 통상임금이 상승해 대한항공 입장으로서는 인건비 부담이 커지게 됐다.

업계는 이번 합의로 대한항공 객실·정비 등 현장 근무자의 실질임금이 약 7% 인상될 것으로 추산한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직원 1만8214명 중 정규직은 1만6899명이며, 평균 임금은 1억1300만원이다. 단순 계산 시 한 사람당 평균 800만원가량 인상되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 항공기와 대한항공 항공기가 김포공항 계류장에서 대기 중이다. (사진=정민서 기자)
아시아나항공 항공기와 대한항공 항공기가 김포공항 계류장에서 대기 중이다. (사진=정민서 기자)

이번 조치는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업계 전반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226시간의 소정근로시간을 적용 중이지만, 대한항공과의 통합을 앞둔 만큼 209시간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른 인건비 증가와 퇴직급여 충당금 확대 등 재무적 부담도 불가피하다.

이 같은 변화는 다른 산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조합원 1인당 2000만원의 '통상임금 위로금'을 요구 중이다. 이는 2022~2024년 3년 치 미지급 통상임금에 대한 보상으로, 대상 조합원은 약 4만1000명, 총액은 8200억원에 달한다.

현대차 노조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조합원에게도 대법원판결 취지에 따라 위로금 또는 격려금 형태의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을 원고인 조합원 2명 등 소송 당사자에게만 소급 적용하도록 했지만, 노조는 "소송을 걸었더라면 승소했을 조합원들"이라며 일괄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기아 노조도 지난 2월부터 비슷한 취지의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조합원 1인당 1000만원 이상의 미지급 수당이 발생했다고 보고, 2022년부터 3년 치 소급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기아는 2019년에도 유사한 소송에서 1심 패소 후, 조합원 1인당 평균 1900만원의 미지급금을 지급하는 특별합의로 사태를 마무리한 바 있다.

한국지엠 노조도 올해 임단협에서 통상임금 500%에 해당하는 격려금을 사측에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018년 이후 회사 정상화를 위해 양보했던 임금 수준을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 양재동 본사 사옥.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 양재동 본사 사옥.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한항공 사례가 향후 기업과 노조 간 협상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판결 단계에서는 직접적인 법적 효력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동현 법무법인 신진 변호사는 "소송보다는 협상 또는 화해 과정에서 대한항공 사례가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며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판결로 가게 될 경우, 법리적으로 대한항공 사례는 판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전체 기업 중 약 26.7%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이로 인한 추가 인건비는 연간 6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경총은 특히 초과근로가 많은 대기업일수록 인건비 상승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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