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현준 기자
  • 입력 2024.12.19 16:29

2013년 판결 뒤집고 통상임금 요건에서 '고정성' 기준 제외
연장·야간·휴일수당 상승…미지급 수당도 3년 소급 청구 가능

서울 서초구 소재 대법원.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서울 서초구 소재 대법원.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19일 재직 여부나 특정 일수 이상 근무 조건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조건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국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연간 약 6조8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이날 오후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대자동차 전·현직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한화생명보험의 경우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상여금이, 현대차의 경우 기준 기간 내 15일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가 여부였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조건의 존재 여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며, 이를 전원일치로 결정했다.

앞서 2013년 대법원은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나,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재직자 조건은 통상임금의 성립 요건인 '고정성'(추가 조건과 관계없이 지급이 확정된 것)을 결여한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그러나 2018년 이후 하급심에서는 엇갈린 판단이 이어졌다. 그해 서울고등법원이 제강업체인 세아베스틸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는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며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근로자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은 2020년에도 한화생명보험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며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이미 근로의 대가로 발생한 임금을 재직자 조건이 붙었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반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근로자들이 "기준 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 시 정기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건은 무효"라고 제기한 소송에선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기존 입장을 11년 만에 뒤집으며, 재직자 조건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기업들이 막대한 추가 인건비 부담에 직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과 휴업수당, 연차수당 등이 일제히 상승하며, 과거 미지급 수당도 최대 3년 치까지 소급 청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과거 미지급된 수당과 이자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번 판결로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반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급격히 증가하며 경영 여건이 악화할 가능성도 높아 산업계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경총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신뢰해 재직자 조건 등이 부가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하지 않기로 한 노사 간 합의를 무효로 만들었다"며 "이에 따라 현장의 법적 안정성이 훼손되고, 향후 소송 제기 등 현장의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최근의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내수 부진과 수출 증가세 감소 등으로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돼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총이 지난달 발표한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시 경제적 비용과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판결로 영향을 받을 기업이 전체의 26.7%에 달하며, 이들 기업의 추가 인건비 부담은 연간 6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정기상여금 비중이 높고 초과근로가 많은 대기업 근로자에게 임금 증가 혜택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비슷한 쟁점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사건은 아직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았으나, 이번 판결과 유사한 법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향후 판결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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