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5.09 07:00

윤석열정부 대형 프로젝트 수주 과정 실책 거듭
신정부, 알래스카 LNG 참여 섣부른 판단 말아야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조선·방산·원전 같이 사이클이 긴 수주산업군에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최종계약서 사인 전까지는 절대 샴페인 터트리는 것 아니다"는 게 대표적이다.

최종계약 체결 하루 전 거짓말처럼 연기된 체코 원전 건이 생생한 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24년 7월 체코 정부가 두코바니 지역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여기까지면 좋았는데, 그로부터 두 달 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현지를 방문해 수십조원에 달하는 원전과 배터리 관련 계약들을 체결했다고 2차로 발표했다. 겨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건으로 사업은 문외한에다,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생색을 낸다고?

심정적으로는 이해는 갔다. 사업 규모만 26조원에 달하는 데다, 원전 본고장이라는 유럽에 역수출하는 격이니 한국으로 추가 일감이 밀려와 쌓일 대통령 업적을 상상하면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겠는가.

그러나 당시 관련 업계는 물론 기자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는 했지만, 아직 법적효력이 없는 LOI 및 MOU 교환 단계였다. 우선협상대상자도 말 그대로 그 대상과 먼저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지, 반드시 최종계약을 체결하겠다는 개런티가 아니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수주계약 과정에서는 무수한 변수와 오해가 켭켭이 쌓인다. 다 된 일이라고 샴페인을 터트렸는데 일이 틀어지면 막상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이미 파티장을 떠나고 없고, 애꿎은 사람들이 뒷정리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모든 수주계약은 전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언론에서는 윤 전 대통령 업적을 치하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관련 주들은 하늘을 찌를 기세로 올랐다. 전 정부의 설레발이 도화선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체코 원전건은 예기치 않은 변수를 맞았고, 관련 주식들은 일제히 하락했다. 추후 수주 전망이나마 나쁘지 않아 망정이지, 백지화라도 됐으면 개미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했을까?

비슷한 시기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 및 가스를 캔다는 내용의 '대왕고래 프로젝트'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사업성 검증조차 안 된 상태에서 윤석열 정부는 국정브리핑을 통해 이를 국민에 알렸고, 역시나 관련 주식들은 춤을 췄다.

이후 탄핵 사태를 거치고 한국석유공사가 최근 다시 손을 대기는 했지만, 대왕고래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은 20% 안팎이다. 실패 가능성은 80% 안팎이라는 의미도 된다. 결국 당사자도 없고 한참 시간이 흐른 지난 2월에야 산업통상자원부는 1차 시추 결과 해당 프로젝트는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국민에 사과했다.

이제 와서 이미 끝난 윤석열 정부의 과오를 들춰내겠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앞으로 정부의 역할이다. 당면한 한국 수주산업 현안은 미국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다. 미국의 압박이 작용하기는 했어도 한국에서는 나름 기대감이 팽배한 상태다. 총사업비만 해도 60조원대인 데다, 만성 LNG 부족 국가인 한국으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도 많은 법이다. 해당 사업 역시 한반도 크기 7배인 데다, 척박한 기후의 땅에서 실시하는 사업인 만큼 실패 위험도 무수히 도사리고 있다.(본지 4월 12일자 제하 '계륵' 알래스카 LNG…철강·조선업계 '신중 모드' 보도 참조)

그런데 현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가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관세협상과 패키지로 해당 사업을 덥석 물고, 관련 주가들이 꿈틀거리는 모양새가 나왔을 때는 탄식부터 흘러나왔다.

물론 한 후보가 떠난 이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판단에 시간이 한참 걸리는 작업"이라며 외교의 정석을 보여줬다. 그래도 치적 쌓기에 연연했던 역대 정부 과오가 반복될 뻔했던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불분명하고 확정되지도 않은 대규모 사업을 성급한 마음에 정부가 판을 흔드는 등 정치권과 엮인 대형 프로젝트의 말로는 항상 좋지 않았다. 6·3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신정부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수주 물꼬를 트는 것이지, 앞뒤 없이 파티 테이블부터 세팅하고 숟가락 놓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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