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5.23 18:10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호텔신라와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상대로 임차료 조정신청을 제기했다.
이런 움직임은 면세점 업황이 최악인 상황이고, 최근 대법원이 롯데면세점과 한국공항공사의 임차료 소송에서 롯데면세점의 손을 들어준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올해 1분기 롯데면세점이 고정비를 줄여 '나홀로 흑자'를 낸 것도 주된 요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와 호텔신라는 각각 지난달 29일과 이달 8일에 인천공항 임차료 조정신청을 인천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조정 기일은 내달 2일이다.
양사가 조정신청을 제기한 이유는 공항면세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인천공항 여객 수는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했지만, 면세점 이용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시작된 고환율은 면세점들의 상품 매입 손실을 키우고 있다.
양사는 인천공항 임차료 산정 방식의 부당함을 제기하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 구역은 지난 2023년 전까지 업체별로 고정 임차료를 내는 방식이었지만, 이후 공항 이용객 수에 연동해 임차료가 산출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즉, 면세점 이용자 수가 1명에 불과하더라도 공항 이용객 수에 따라서 임차료를 강제 지불하는 것이다.
면세 특허권 입찰 당시 호텔신라와 신세계면세점은 여객 1인당 수수료 약 1만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인천공항 여객 수는 582만명으로 파악돼 양사의 월 임차료는 582억원이 책정된 셈이다. 연간으로 확대한다면 6984억원이다. 지난해 호텔신라의 연매출 3조2819억원의 21.2%, 신세계면세점 연매출 2조60억원의 34.8%로 회사 존립을 흔드는 수준이다.
양사의 주된 요구는 제1·2 여객터미널 면세점 중 화장품·향수·주류·담배 매장 임차료 40% 인하다. 이미 양사는 인천공항공사에 여러 번 임차료 인하를 요청했으나, 이를 번번이 거절당하면서 법적 수단을 강구하고 나섰다.
보통은 공항면세점 사업권 입찰경쟁이 있기 때문에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법적분쟁을 벌이는 것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불문율까지 깨뜨린 것은 공항면세점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고, 고정 임차료를 바꿔버린 '공항 갑질'이 묵과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의사 표시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 건물주도 입점 매장들이 장사가 안 되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임차료를 일시 인하해 고통을 분담한다"며 "면세점 사업자들이 존폐에 내몰린 상황에서 임차료 인하를 거부한 것은 인지상정을 벗어나 공항의 이익만 노골적으로 추구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해 당기순이익 4805억원 중 46% 수준인 2210억원을 정부 배당금으로 돌렸다. 정부는 인천공항 지분 100% 소유자다. 공항공사의 지난해 매출은 2조5481억원, 영업이익은 7317억원이다.

이달 1일 대법원이 롯데면세점 손을 들어준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시각이다. 대법원은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낸 롯데면세점의 임차료 반환청구 소송에서 해당 기간(2020년 4~8월) 반환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단이 법리적 오해가 있었다며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롯데면세점은 코로나19 사태로 공항 면세점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만큼, 임차료 지불이 부당하다며 전액 면제 소송에 나섰다.
앞서 1심과 2심은 일부 감액만 인정하고 롯데면세점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전액 반환 취지로 판단을 달리했다. 전액 감면이 이뤄지면 롯데면세점은 약 150억원을 돌려받는다.
한편에서는 롯데면세점이 올해 1분기 흑자를 낸 것도 호텔신라와 신세계를 자극했다는 판단이다. 롯데면세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53억원으로 2023년 2분기(58억원) 이래 7개 분기 만에 흑자전환이다. 표면적으로 중국인 보따리상과의 거래 중단 등 수익성 중심 경영이 효과를 봤다고 밝혔지만, 국내 시내면세점부터 해외면세점까지 잇따른 점포 폐쇄와 인력 구조조정 등 줄일 수 있는 고정비를 모두 줄인 극단적 절감이 흑자전환의 비결로 작용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항공사와 법적 다툼도 불사할 정도로 면세점들이 낭떠러지에 내몰린 상황"이라며 "정부당국은 면세한도 증액부터 입국할 때 면세품을 찾을 수 있는 입국장 인도장 확대 설치, 이중과세와 마찬가지인 특허수수료 해소 등 업계 공멸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을 지금이라도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