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5.06.02 12:04
전민재 법무법인 트리니티 공정거래 전문변호사·가맹거래사
전민재 법무법인 트리니티 공정거래 전문변호사·가맹거래사

만약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주방설비, 카드단말기, POS, 금전함, 영수증, 프린터, 전자서명패드 등을 특정업체에게 구매하라며 강제할 때, 이를 부당하다고 느낀 가맹점주는 가맹본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정답은 '쉽지 않다'이다. 위와 같은 품목 강제가 가맹사업법 위반이라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여러 심결례로 확인되지만, 법원은 ‘손해액’에 대한 객관적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부분 가맹본부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카드단말기와 영수증 용지, 프린터 등 외식 브랜드의 통일성과 상관성이 없는 물품을 비롯해 메뉴 맛과 품질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물품의 구입강제를 제재한 바 있다. 가맹본부가 지정한 자에게만 구매하게 한 행위를 가맹사업법 위반으로 인정한 것이다.

다만, 가맹점주가 해당 사안이 위법하다며 손해배상청구에 나서 승소한 사례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법원은 가맹점주가 입은 손해액을 정확히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릴 때가 많다. 예컨대, 가맹점주가 입은 손해(C)는 '가맹본부가 지정한 대로 구매한 가격(A)'과 '같은 조건으로 외부에서 구매한 경우의 가격(B)'의 차액이 된다. 즉, C=A-B의 개념을 바탕으로 손해액을 확정되는데, 결국 소송 실무상 'B'를 정확히 입증하기가 어렵다.

일례로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9. 27. 선고 2022가합516802 판결에서 가맹본부의 필수품목 지정행위가 위법함을 인정했지만,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들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이로 인한 원고들의 손해 발생 이유로 부족하고, 이를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들(가맹점주들)의 관련 청구를 기각했다.

위 소송에서 원고들은 구입강제품목인 주방기물과 주방설비 등에 대한 납품단가가 시장 가격보다 비싸다는 취지의 견적 비교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시장 가격이 훨씬 저렴하므로 그 차액이 손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법원은 원고들이 제출한 견적 비교표의 기준 시점과 실제 물품 공급 시점 간 물가변동의 가능성, 원고들이 주장하는 주방기물과 주방설비 등이 구체적으로 언제 공급받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손해액 입증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공정위의 제재는 별론으로 하고, 가맹점주는 어차피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을 사안이라 본부의 부당한 필수품목 강제를 감수해야 하는지, 구입강제품목 지정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민사적 제재는 포기해야 하는지 면밀히 따져볼 노릇이다.

가맹본부에게는 긴장할 대목이지만, 대법원은 가맹본부의 가맹사업법 위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서 하급심 법원의 관행적 입장을 지적해 변화의 물꼬를 트고 있다. 과거 허위·과장정보제공으로 인해 가맹점주가 폐업에 이른 경우, 또는 가맹사업 시작 시 지급한 가맹비 및 인테리어 비용 외 영업기간 동안의 영업손실까지 손해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하급심 법원은 일관되게 '영업손실은 허위·과장정보제공으로 인해 가맹점주가 입은 통상손해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21다300791 판결에서 영업손실은 허위·과장정보제공으로 인한 통상손해로 봤으며, 구체적인 입증이 부족하더라도 변론 전체의 취지 등에 비춰볼 때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법원 실무는 허위·과장정보제공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에서 영업손실도 통상손해로 인정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다만, 가맹점사업자가 입은 영업손실 전액을 손해로 인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기 상황 또는 상권의 변동, 가맹점사업자의 운영 능력으로 인한 영업손실까지 과다 배상되지 않도록 책임제한의 법리를 적용하면서 손해액을 조정하고 있다. 손해액의 적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가맹사업법에서 준용하는 공정거래법은 손해액 인정이 어려울 경우 법원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가맹사업법 제37조의2 제4항, 공정거래법 제115조). 구체적으로 ​제115조(손해액의 인정)에서 "법원은 이 법을 위반한 행위로 손해가 발생한 것은 인정되나 그 손해액을 입증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해당 사실의 성질상 매우 곤란한 경우에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에 기초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구입강제품목 지정으로 인한 손해액으로 구입강제품목과 동종 상품의 시중 가격과의 차액 상당의 손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위법행위가 있다면 사회일반의 거래관념 또는 사회일반의 경험치에 비춰 통상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범위의 손해"에 해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맹점주가 필수품목 내지 구입강제품목의 구입기간 동안 동일 또는 유사한 조건으로 시중에서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는 점과 물가상승률 정도만 입증하면, 그 정확한 시점이나 물가상승률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법원은 가맹사업법 제37조의2 제4항 및 공정거래법 제115조를 근거로 그 손해액을 적정 수준에서 인정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사실상 특정 품목의 거래조건이나 가격 책정 방식 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운 가맹점주에게 완벽한 입증은 지나친 요구일 수 있다. 위 공정거래법(제115조)을 적용해 법원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하는 것은 법리상 불가능하지 않다. 가맹점사업자에 대한 과다 배상의 가능성이 있다면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책임제한 법리로 손해액을 적정 수준으로 제한하면 될 일이다.

​공정위는 최근 필수품목 내지 구입강제품목 지정이 국내 가맹사업의 고질적인 병폐라 보고 관련 제도 개선과 법 집행에 집중하고 있다. 법원은 이미 피자헛 차액가맹금 판결에서 공정위보다 앞서 가맹본부의 물류마진 수취 관행에 대해 제동을 걸었던 경험이 있다. 허위·과장광고에 의한 가맹점주의 영업손실도 통상손해로 인정함으로써 가맹점주의 권익 신장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기존 법원 실무를 변경한 사례도 있다.

종합하면, 허위·과장정보제공 시 손해배상에 대한 법원의 입장 변화와 손해액 인정 관련 법리 등에 비춰볼 때, 위법한 필수품목 내지 구입강제품목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대하여 법원의 입장 변화를 끌어낼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더욱이 가맹점주의 권익 보호와 공정한 가맹사업거래 질서를 위해서도 법원의 입장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당사자의 변론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수동적 구조의 법원이 스스로 입장을 변경하기만을 기다릴 수 없는 일이다. 여러 증거와 법리 주장을 통해 법원의 전향적 판결을 끌어내려는 행동들, 결과적으로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가맹점주들이 적극적 행동에 나서야만 변화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전민재 법무법인 트리니티 공정거래 전문변호사·가맹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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