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5.07.12 07:00
김희성 법무법인 청목 변호사.
김희성 법무법인 청목 변호사.

유언대용신탁(遺言代用信託)은 말 그대로 유언을 대신해 활용하는 신탁이다. 유언은 법에서 정한 엄격한 요건과 형식을 갖추지 않으면 무효가 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해 생전과 사후에 재산을 사용·수익하거나 처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상속, 유증, 증여 등 전통적 재산 승계 방식을 대신할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유언대용신탁에서 수탁자가 유일한 사후 수익자인 경우 그 효력에 대해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사안은 이렇다. A는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녀 중 한 명인 B를 수탁자로 지정했다. A는 생전 수익자는 자신으로, 사후 수익자는 수탁자인 B로 설정했으며, 잔여재산의 귀속자 역시 B로 지정했다. 이후 A가 사망하자 신탁계약에 따라 B 명의로 소유권이전 등기가 이뤄졌고, 다른 자녀들이 상속 지분을 주장하며 진정 명의 회복을 이유로 소유권이전 등기를 청구했다.

대법원은 수탁자를 유일한 사후 수익자로 지정한 부분은 신탁법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다만 신탁계약 전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며, 해당 조항만 분리해 무효로 보고 나머지 계약은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그 이유는 신탁이 본래 수익자의 이익을 위해 수탁자가 재산을 관리·운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탁자가 자신을 수익자로 지정하면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탁을 운용하게 돼, 사실상 증여와 다르지 않다. 이는 신탁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으로, 신탁법상 '수탁자의 이익향수 금지 원칙'과 '목적 제한' 조항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전 위탁자를 위한 신탁 계약 부분은 분리 가능하고, 위탁자의 본래 의사에도 어긋나지 않으므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위탁자가 사망하면서 신탁 목적은 달성되고 신탁은 종료되며, 계약상 정해진 잔여재산 귀속자에게 재산이 이전된다. 대법원은 수탁자를 귀속 권리자로 정한 것도 허용된다고 보았고, 파기환송심 역시 해당 재산은 상속재산이 아닌 B에게 귀속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위탁자의 생전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증여는 생전에 재산이 완전히 수증자에게 이전돼 증여자가 더 이상 사용·수익할 수 없고, 유증은 법이 정한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 수탁자에게 재산이 이전되더라도 위탁자가 계속해서 그 재산을 실질적으로 사용·수익할 수 있고, 사후에는 재산 분배나 운용을 보다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리하면, 수탁자인 B는 A 사망 후 유일한 사후 수익자가 될 수는 없지만, 신탁 종료 후 잔여재산의 귀속자로 지정돼 재산을 넘겨받는 것은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A가 의도한 바와 유사하게 재산이 B에게 돌아가게 된다. 다만 유류분 청구나 상속재산 분할 등 별도의 분쟁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의 의사에 맞춰 재산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유류분, 세금, 등기 등 다양한 법적 쟁점이 수반되며, 아직 판례와 실무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다만 초고령사회와 초핵가족화가 가속화되면서 유언대용신탁뿐 아니라 장애인 신탁, 후견 신탁 등 다양한 형태의 신탁 활용이 늘고 있다. 재산 관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도 신탁 계약을 통해 수탁자가 재산을 적절히 관리하고, 위탁자의 의사에 따라 자산을 보호·활용할 수 있다.

신탁은 계약 내용에 따라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만큼,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계약 조항이 중요하다. 따라서 신탁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반드시 변호사 등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해, 의뢰인의 상속·재산 처분 의사를 반영하고 법적 분쟁을 최소화하는 맞춤형 계약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희성 상속 전문 변호사/법무법인 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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