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강석호 기자
  • 입력 2025.06.04 18:15
KT&G 강남 사옥 전경. (사진제공=KT&G)
KT&G 강남 사옥 전경. (사진제공=KT&G)

[뉴스웍스=강석호 기자] KT&G가 북유럽의 '니코틴 파우치(잇몸담배)' 기업 인수를 검토 중이다. 궐련형 전자담배부터 액상형 전자담배 등 담배 시장의 대대적인 지형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특히 건강보험공단과 수백억원의 민사소송을 12년째 진행 중이며, 연초(궐련) 담배의 판매 감소도 이러한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T&G는 현재 복수의 북유럽 니코틴 파우치 회사와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가는 약 2000억~3000억원 수준이다. 만약 KT&G가 시장의 예상대로 인수합병(M&A)에 나선다면 지난 2011년 인도네시아 트리스탁티 이후 14년 만의 해외 담배회사 인수다. 다만, KT&G 측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니코틴 파우치는 잇몸과 입술 사이에 끼워 니코틴을 흡수하는 방식의 비연소 담배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글로벌 담배제조사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의 'ZYN(진)'은 미국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니코틴 파우치의 성장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다. 진은 2030 젊은 층의 구매가 쇄도해 지난해 미국에서 약 6억캔 가까이 팔렸다. 

최근 KT&G가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과 을지로타워 등 비핵심 부동산 자산을 처분하며 대규모 유동성 확보에도 나선 점도 이번 M&A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이에 KT&G 관계자는 "부동산 처분은 본업 중심 사업 확장과 주주 환원의 방향"이라며 "비유동자산 처분이 M&A만을 염두에 둔 취지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시장에서는 연초와 관련한 법적 부담이 해소되지 않는 점도 KT&G가 담배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힘쓰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앞서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14년 KT&G·필립모리스·BAT로스만스 등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약 53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1심에서는 패소했고, 항소심이 올해까지 4년째 진행 중이다. 

공단은 흡연과 폐암·후두암 등 특정 질환 간 인과관계를 인정해 담배회사의 제조물 책임과 불법행위를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올해 1월 열린 2심 11차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담배는 발암물질이며 흡연은 명백한 폐암 발병의 원인"이라며 "사회 전체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담배회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단은 소송 대상자 중 흡연 외에 다른 질병 요인이 없는 1400여 명의 데이터를 정리해 제출한 상태다.

지난해 연초 판매량이 28억7000만갑으로 1년 전보다 4.3% 감소하는 등 연초 판매가 2021년부터 4년 연속 내리막길을 타는 점도 눈여겨볼 요인이다.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6억6000만갑으로 전년보다 8.3% 증가했다. 전체 시장에서 궐련형 전자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8.4%까지 올라 2017년 2.2%와 비교할 때 8년 동안 9배 가까이 성장했다. 

일각에서는 KT&G의 이번 인수 검토를 두고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는 평가다. 김도환 전자담배총연합회 부회장은 "전자담배를 판매하던 소상공인들이 과거 잇몸담배를 수입해 판매하려고 시도했지만 세율이 너무 높아 좌초된 적이 있었다"며 "KT&G가 해외 잇몸담배 회사 인수는 국내보다 해외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니코틴 파우치 제품에 대한 규제 정책이 명확하지 않아 향후 관련 규제를 두고 정부당국와 시장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잇몸담배가 확산되면 청소년 사용을 부추길 수 있다"며 "연초와 전자담배, 잇몸담배까지 중복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날 수 있어 적합한 규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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