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광석 기자
  • 입력 2025.09.26 11:26

[뉴스웍스=안광석 기자] 한때 유럽의 기둥 역할을 했던 프랑스가 어수선하다. 평소에도 크고 작은 시위가 빈번한 나라지만, 이번에는 전국적으로 수백만명이 들고 일어났다. 마크롱 정부도 어떻게 대처할지 갈피를 못 잡는 듯하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고 강렬하다. 마크롱 정부가 추진 중인 정년 연장을 철회하고, 기존 62세 정년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나이 먹으면 그만 쉬게 해 달라”다. 전형적인 '고부담-고복지' 구조에서 알 수 있듯 업무보다는 여가를 중시하는 나라답다.

어떻게 해서든 직장에서 오래 버티길 원하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문화충격도 잠시, 프랑스 대규모 시위가 대한민국 미래의 편린 아닐까라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프랑스인들의 시위구호나 가치관과는 별도로, 연금정책에 대한 사회적 파급 효과를 새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결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프랑스 또한 한국처럼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겪는 나라다. 상기했듯 고부담-고복지는 저출산이 심화될수록 엄청난 재정 적자를 초래하는 구조다. 마크롱 정부도 만성적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는 것을 넘어, 국민이 더 오래 일하고 소득을 창출하도록 해 재정 부담을 완화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편하고 익숙해진 혜택을 다시 거둬들이는 것처럼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다. 한국의 일정연령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제도와 마찬가지다.

한국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저출산 및 고령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인구 구조 변화는 현재 20~30대로 대표되는 젊은층의 연금·의료·복지 등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나아가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잠재 성장률을 둔화시키고 경제 활력 저하를 초래한다.

고령층이 갈수록 늘어 복지 수요는 증가하는데 세수 기반은 취약하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오는 2050년대 초반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분석했다.

20~30대들에게 왜 결혼을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경제적 부담을 꼽는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 낳을 생각도 없으니 저출산 구조는 심화하고 뒷세대들의 재정부담은 늘어나는 악순환의 무한 반복이다. 아무리 내가 싫다 해도 나라 곳간과 뒷세대들을 위한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의미다.

한국도 이미 윤석열 전 정부 시절부터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세 가지 방향으로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정년연장 문제도 자연 병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두 사안 모두 프랑스 만큼 격하지는 않아도 사회 각 주체들의 반발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앞으로도 진통을 겪을 것이다.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다. 연금문제의 경우 연금 재정의 근본적인 문제는 내는 돈에 비해 받는 돈이 많다는 데 있다. 따라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 재정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숫자 조정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가 더 많이 부담하는 현재의 부과 방식에서 벗어나 적립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년연장도 현재 60세인 법정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맞춰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법제화해야 한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정년 사이의 소득 공백기를 해소해 노인 빈곤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다만 정년연장은 연공서열 기반 현재의 임금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고령층의 고용이 늘어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청년층의 고용 기회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년연장과 함께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사회적 대화와 논의를 통해 세대 간의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사회 주체들과의 대화 물꼬를 트는 노력은 합격점을 줄만하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이 없다. 프랑스의 사례는 연금제도가 한 번 무너지면 사회 전체에 큰 부담을 준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방향의 연금 및 정년 제도 개혁은 어차피 피할 수 없다. 자식 세대가 짊어질 부담을 한 번 더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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